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리승기 (문단 편집) == 여담 == 저서로 자서전인 《어느 조선 과학자의 수기》가 있다. [[전두환 정부]]에서 [[국무총리]] [[서리]]를 지낸 [[이한기]] 전 [[서울대학교]] 교수와 6촌형제이다. 그의 아내 황의분은 오빠가 이남에 있는 [[이산가족]]으로 [[2000년]] [[8월 15일]] [[이산가족 상봉]] 때 올케와 만나서 약간이나 한을 풀었다. 납북된 신상옥과 만난 적이 있는데, 신상옥이 북한 정권 수립 기념일에 끌려가서 웬 테이블에 앉으라고 해서 앉았는데, 맞은편에 앉은 노신사가 대체 신상옥이 누군가 싶어서 호기심 어린 눈으로 쳐다봤다고 한다. 나중에 연회가 끝난 후에 신상옥의 안내인인 김주영 부부장이 그 노신사가 다름아닌 리승기고 리승기와 얘기를 나누던 것이 [[홍기문]]이라고 귀뜸해주었다고 한다. 월북자이지만 [[한민족]] 최초의 공학박사 타이틀을 가진 사람이고 본인이 사상적이나 정치적인 면을 크게 내비치지 않고 본연의 업무인 과학연구에 몰두했으며 과학자들을 제대로 챙겨줄 여력이 없었던 [[8.15 광복]] 직후 [[한국]]의 열악한 사정이 참작되어 [[한국]]에서도 평가가 크게 나쁘진 않다. [[이태규]] 박사와 함께 [[1930년대]] 당시 양대 교토제국대학 [[조선인]] 석학이었는데, 명성도 명성이지만 두 사람 모두 유학생들의 대부격인 인물이었던 듯하다. [[장경학]] 교수라든가 당시 교토제대에 유학하던 [[일제강점기 조선|조선]] 학생들이 '리승기 박사의 집에 놀러가서 그 집 사모님(위에 기재되어 있는 황의분)께 [[불고기]]를 얻어먹었다'는 증언들이 남아 있다. [[양택식]] [[서울시장]] 등 나중에 거물급 인사가 된 사람들도 리승기의 덕을 보았다고.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