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리용무 (문단 편집) === 말년 === 하지만 나이가 90대가 넘어가는 노인인지라 은퇴단계에 접어들었고 2016년 5월, 7차 당대회에선 중앙위원회 위원으로 물러났다. 2016년 5월, [[강석주(1939)|강석주]] 장의위원을 지냈다. 이후 2016년 6월, 최고인민회의 13기 4차 회의에서 국방위원회가 폐지되면서 국방위원회에서 물러났다. 이후 인민무력성 고문, 토지지휘경리부 고문으로 일하면서 뒷방 늙은이가 되었고 2019년에는 14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도 당선되지 않았다. 2021년 1월, 8차 당대회에서도 중앙위원회에서 물러났다. 물론 고령으로 인하여 8차 당대회 이전에 이미 중앙위원회에서 소환되었을 가능성도 높다. 군 원로로써 이런저런 추모대회, 보고대회에 돌아다녔으며 말년에는 전국로병대회에 많이 다녔다. 2021년 1월 8차 당대회 기념 열병식과 경축 대공연에 나온 것이 마지막 행보였고 [[2022년]] [[1월 27일]], 급성심근경색으로 8시 40분에 97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장의위원회 구성은 되지 않았으나 김정은이 직접 조문을 오는 등 군원로로써 아주 초라하게 죽은 [[김영주(북한)|김영주]]에 비해서는 좋은 대접을 받았다. 당중앙위원회와 국무위원회는 공동명의로 부고를 발표, "리용무동지는 위대한 김일성-김정일주의로 튼튼히 무장하고 생명의 마지막순간까지 우리 당과 국가,혁명무력의 강화발전을 위하여 분투하였으며 투철한 혁명적원칙성과 소탈하고 호방한 성품으로 하여 인민들과 인민군장병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았다. 수령에 대한 절대적인 충실성을 간직하고 혁명임무수행에서의 높은 책임성과 헌신적노력으로 국가의 발전과 인민의 복리에 이바지하는 큰일들을 많이 하여온 리용무동지를 잃은것은 우리 당과 인민에게 있어서 가슴아픈 손실로 된다. 리용무동지는 비록 서거하였으나 당과 혁명을 위하여 자신의 모든것을 다 바친 그의 공적은 인민들과 인민군장병들의 추억속에 길이 남아있을것이다."라고 좋게 말해주었다. 하지만 부고가 로동신문 4면에 실리는 등 애매한 대접을 받았다. 1월 28일, 김정은이 조용원, 김덕훈, 박정천, 리일환, 리영길, 권영진을 거느리고 직접 조문하였다. 로동신문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와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의 충직한 혁명전사이며 우리 당의 혁명사상과 위업을 굳건히 이어나가는데 공헌한 로혁명가''' (...) 인민군대안에 당의 유일적령군체계를 철저히 세우고 주체적군건설사상과 로선을 관철하는데 특출한 기여를 하였으며 우리식 사회주의위업의 승리적전진을 위한 성스러운 투쟁에 자기의 모든것을 다 바친 리용무동지 (...) 조국과 인민에 대한 무한한 충실성과 헌신적복무정신을 지니고 생의 마지막순간까지 우리 당과 국가, 혁명무력의 강화발전을 위하여 분투해온 귀중한 혁명동지."라고 리용무를 아주 좋게 말해주었다. 시신은 [[애국렬사릉]]에 안장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