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리지선 (문단 편집) === 국공내전과 중공 합류 === 1947년 11월 12일부터 1948년 1월 1일까지 홍콩에서 열린 중국 국민당 민주파 제1차 연합대표대회에 참여, [[중국국민당 혁명위원회]] 수립에 참여하여 혁명위원회 주석으로 선출되었다. 1949년 1월 22일, [[궈모뤄]], [[선쥔루]], 담평산 등과 함께 연명으로 <시국에 대한 의견>을 발표하여 [[마오쩌둥]] 지지를 선언했으며 "[[인민민주주의]] 진영에는 반대파들이 발붙일 한 치의 여지도 없으며 중간노선의 존재도 절대 허용하지 않는다. (...) 중국 공산당의 지도 아래 중국 혁명을 밀고 나가며 신중국을 건설하기 위해 모든 힘을 다 바칠 것이다."라고 선언했다. 1월에 장제스가 하야하고 [[리쭝런]]이 대리총통이 되자 리쭝런은 리지선에게 서한을 보내 평화협상을 도와달라고 부탁했지만 황샤오훙과 내통하여 정부에 압력을 가할 뿐이었다. ||[[파일:정치협상회의.jpg]]|| || 1949년, 신정치협상회의에 참가한 리지선 || 1949년 2월 25일, 심균유, 마서륜, 곽말약, 담평산 등과 함께 베이핑으로 이동하여 신정치협상회의 소집문제를 논했고 4월 1일, 국민정부 대표단 자으중, 샤오리쯔, 황샤오훙, 장사조, 이증 등이 도착하자 이들과 평화담판을 벌였다. 1949년 6월 15일부터 6월 19일까지 개최된 신정치협상회의 준비위원회 1차 전원회의에 중국국민당 혁명위원회 대표로 참여, 상무위원회 부주임에 선출되었으며 다음과 같이 발언하였다. >"신민주주의 국가는 민의를 진정으로 반영하고 광범위한 인민을 위해 효과적으로 복무하며 인민민주주의 독재를 공고히 하고 신민주주의 정치적, 경제적, 국방적, 문화교육적 대대적인 건설을 전개하는 데 필요한 것이기에 민주주의 중앙집권제의 원칙에 기초를 둔 정치제도는 우리가 마땅히 취해야 할 훌륭한 제도이다." 1949년 9월 21일에서 30일까지 열린 중국 인민정치협상회의 제1기 전원회의 결과, [[주더]], [[류사오치]], [[쑹칭링]], [[장란]], [[가오강]]과 함께 중화인민공화국 부주석 겸 중앙인민정부 정부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