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리첼렌 (문단 편집) ==== 반론 ==== '빠른 산업혁명에 대한 부작용' 비판의 경우 사실과 거리가 멀다. [[대통령 각하 만세]]에서는 아예 '유독하기 그지 없는 한강', '이 시대 조선에서는 맡을 수 없었던 공장냄새' 같이 [[스모그]]와 같은 대기 오염이 있다고 직접적으로 서술했고 노동환경 역시 직접적으로 '대공황 대비 + 2차 대전을 전후로 한 호황기 또는 총력전 대비를 위하여 상당한 수준의 비효율을 감수하고서라도 3교대 8시간을 돌리겠다'라고 작중에서 충분히 설명한 바 있다. 시대적으로 윗 세대인 [[폭군 고종대왕 일대기]]의 경우 아예 공장에서 오랜기간 일한 노동자의 경우 손가락이 몇 개 없다거나 주야간 2교대도 감지덕지라는 식의 한국 1960년대 정도의 작업환경이 꾸준히 서술되었다. 사실 비판에서 나오지 않았다고 지적하는 게 초기 산업혁명 급의 산업환경을 말하는 거라면 오히려 초기 산업혁명기의 영국, 미국의 극단적 노동착취가 특이한 케이스고 이런 식의 착취가 19세기 후반~20세기 초반에 근대화를 추진하는 조선/한국에서 발생하는게 더 말이 안된다. [[8.15 광복]] 이후 나라가 반토막나고 이어진 [[6.25 전쟁]]으로 쑥대밭이 된 [[대한민국]]에서 산업화 할 때도, [[전태일]] 열사를 대표로 하는 민중, 노동자의 희생이 있었음은 분명하지만 영국의 산업혁명과 같이 극단적이지는 않았다. 이는 1960~70년대의 [[대만]], 1990년대의 [[중국]]과 같은 동아시아국가의 산업화 때는 물론 산업중흥기의 [[독일]]만 해도 산업혁명 초창기 영국보다는 산업환경이 훨씬 나았다. 애초에 영국의 초기 산업혁명 시의 노동환경은 혹독한 걸 차치해두고서라도 직원들이 숙련되기도 전에 골병이 들고 죽어나가서 숙련공이라는 게 만들어질 수가 없는 환경이었다. 조금이라도 산업화가 돼서 산업구조가 단순노동에서 벗어나서 기초적인 자동화 공장을 운영하는 단계만 도달해도 지극히 비효율적인 시스템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1802년 영국에서 The Health and Morals of Apprentices Act 같은 아동노동을 어느 정도 제한하는 법률이 만들어지고 1833년에는 8~13세는 주 48시간, 14~18세는 하루 최대 12시간, 18세 미만 야간근무 금지를 골자로 하는 공장법(The Factory Act 1833)이 제정되었고 1847년에는 여성과 13-18세 청소년의 노동시간을 하루 10시간을 줄이는 10시간 법(Ten Hours Act)이 통과되었던 것이다. [[폭군 고종대왕 일대기]]에서 주인공 집권 이후 11년째 될 때인 1875년 영국의 공장법, 교육법 기준 아동/청소년의 근로 조건은 '''만 10세 미만 아동 공장 채용 전면금지, 만 18세 미만 및 여성의 토요일 2시 이후 및 일요일 노동 금지(즉, 일요일 휴일 보장) 및 1일 근로 최대 10시간, 30분 점심시간 보장, 만 14세~18세 및 여성도 주 최대 60시간 근무, 만 10세까지의 아동 교육기관 출석 의무 및 최소 주 10시간 학교 출석 보장''' 이다. '''성인 남성 노동자'''들의 노동시간도 '''하루 최대 12시간, 전체 노동자 평균 근로시간이 주당 58~60시간'''정도였다. 당연히 현대의 노동환경에 비추어 보면 가혹하지만 산업혁명 초기와는 비교할 수 없다. '어느정도'는 휴식을 보장하고 '어느정도'는 교육도 시키고 '어느정도'는 임금을 주게 바뀐 것인데, 미래인이자 국가지도자인 주인공이 시류를 거스르고 굳이 바보 같은 산업혁명 초기 노동착취를 하게 둘 이유가 없다. 노동자 권리 운운 이전에 시대상에 맞지도 않을 뿐더러 지독히 비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정리하면 초기 산업혁명 수준의 극단적인 부작용을 왜 서술 안하냐는 말은 '님 왜 미래 안다는 듯이 노동환경 만듦? 왜 초기 산업혁명기 영국처럼 삽질 안함?'이라고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애초에 작중 배경인 19세기 후반 기준 영국 노동환경과도 맞지 않는 말이며, 이에 더해 주인공이 미래에서 온 회귀자인 시점에서 말이 안되는 말이다. 역사를 아는 미래인 입장에서 정답은 '최소한 초등학교 정도까지는 교육을 받게 하고 노동시간도 일정 수준 제한'하는게 공산주의의 준동을 막기 위해서든, 노동효율 및 숙련공 양성을 위해서든, 공공복리를 위해서든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역사를 전공한 대역 주인공은 당연히 '어느정도'의 가혹한 노동은 허용해도 초기 산업혁명 같은 수준의 노동환경을 허용할 이유가 없다. 또 이러한 노동환경을 허용하지 않을 이유는 '''19세기 후반 아시아 국가의 폭발적인 경제성장'''에 있다. 산업혁명 초기 영국에 경우, 신식 기계를 통해서 이전에 비해 엄청난 양의 공산품을 생산해봐야 주변의 주요 국가가 중상주의 및 보호무역정책을 고수하고 있어서 가져다 팔 곳이 없었다. 그래서 원재료 공급처 및 소비처 겸 수출처를 찾기 위해 식민지를 만들어서 수요를 창출해야 했던 것이다. 이와 달리 19세기 후반의 아시아 국가들은 기술적으로는 후발주자였던 대신 소비재를 먹어치우는 괴물인 미국, 중국 시장이라는 경제성장 특효약을 2개나 들고 시작한다. 여기에 여건이 될 때마다 유럽, 미국의 선진적인 기술과 경영방식을 바로바로 도입할 수 있는 건 덤이다. '''산업혁명기 영국의 연간 실질경제성장률은 약 1.5%정도 였고 이것도 그나마 인구성장에 따른 경제성장이 절반이나 차지했었는데 메이지 유신때 일본의 경제성장률은 약 5%에 달했다.''' 말이 1.5%와 5%지 1.5%는 경제가 2배 성장하는데 48년 걸리지만 5%인 경우 14년 만에 2배로 성장할 수 있다. '''즉, 작중 한반도 국가의 경제는 산업혁명기 영국보다 최소 3~4배, 미래지식+주인공의 활약을 더하면 이보다 더 빨리 성장'''하는 셈이고 작중 초기 면화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는 자기 자식이 청소년이 되면 나라 경제가 2배 성장하고 또 그 자식이 결혼해서 애를 키울 때 쯤이면 2배 성장해 있는 걸 목도하는 셈이다. '왜 처음 산업화 할 때만 이런 묘사가 나오고 이후에는 잘 안나오냐'라고 하려면 이런 급격한 경제적 성장 차이에서 나오는 여유도 고려해야한다. 또한 '황화론'에 대한 비판도 사실과 거리가 먼데 우선 [[관동대지진]] 같은 자연재해가 아니라면 중요하지 않은 사회적, 정치적 이벤트는 그냥 지나가도 이상하지 않은게 [[대체역사물]]에서는 일반적이며, [[1차세계대전]]이나 [[대공황]] 같은 각 강대국의 외교적 모순과 체계적 한계, 시대적 한계에 따라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 밖에 없는 세계적 이벤트와는 달리 [[황화론]]은 일본, 정확히 말하면 일제가 러시아제국을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뒤, 독일 황제 [[빌헬름 2세]]가 내세웠던 프로파간다에 가까웠다. 이는 우선 [[빌헬름 2세]]의 [[일본]]에 대한 증오 때문이었고 두 번째는 독일 제국의 범 게르만주의로부터 유럽 각국(특히, 영국, 프랑스)의 시선을 떼어놓으려는 발버둥이라고 평가받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폭군 고종대왕 일대기]]처럼 [[러일전쟁]]이 아예 일어나지 않고 [[대한제국]]이 아주의 맹국이 되는 경우라면 당연히 이에 따른 [[황화론]]이 한국 입장에 있어서 주요 이슈가 될 수도 있지만 반대로 [[대통령 각하 만세]]의 경우 이미 [[황화론]]의 전성기는 지나 간 이후일 뿐더러 [[일제]]는 고꾸라지고 [[한국]]은 그래봐야 지역열강 수준이라 [[빌헬름 2세]]가 [[황화론]] 운운 해봐야 안먹히는 상황이었다. "지나친 나비효과" 에 대해서도 반론이 있을 수 있다. 역사는 어떤 특정한 정답을 가지고 있지 않다. 역사라는 거대한 흐름의 지향점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는 그 시대를 살아가고, 또한 살아온 무수한 사람들의 상호작용이 모여 낳은 결과물이다. 다시 말해, 역사란 수백억의 톱니바퀴가 정교하게 연결되어 있는것과 같다. 작가가 개입하는 것은 이중 소수의 톱니바퀴에 불과하지만,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모든 톱니바퀴에 영향이 가게 되는것처럼, 역사에 자그마한 변동을 주는 것 역시 이와 같다, 예를 들어 "한국 독립 전쟁"(속칭 폭구)를 예로 들어보겠다. 해당 작품은 이봉창 의사의 의거가 성공함으로서 진행된다, 일본의 천황은 실권이 그리 없어 영향력이 없다 생각할수도 있지만, 메이지유신 이후 일본이라는 국가를 하나로 묶어주는 매우 중요한 부품이었다, 이게 갑작스레, 식민지인의 손에 의해 사라진다면 어떤 광풍이 불겠는가? 바퀴가 빠진 수레는 길을 똑바로 갈수 없듯, 역사는 본래의 흐름에서 벗어날 수밖에 없다. 이 주장이 동의되지 않는다면 인류의 역사를 보라. 나폴레옹이 치질 때문에 마지막 전투에서 패배할 것이라고, 혹은 [[조사온]]이 하늘에서 떨어진 운석을 맞고 죽으리라고 그 누가 상상했겠는가. 아직 누구도 대공황의 이유를 명백히 밝혀내지 못했고, 비행기 테러(9.11)가 극초강대국의 몰락의 단초였음을 예상치 못했다. 역사는 궁극적인 지향점이 있는 단선적인 구조가 아닌, 순간순간이 무한한 주사위를 던짐으로서 이루어진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