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리츠메이칸대학 (문단 편집) === 교수 특징 === 리츠메이칸의 교수들은 일본 내에서도 특히 개방적인 생각을 가진 편이다. 예컨대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 정부에 비판적인 견해를 가지기도 하고, [[평화헌법]] 개정을 반대하는 교수들이 적잖이 많다. 이는 리츠메이칸은 "평화학"을 교양과목으로 두고 "평화 박물관"을 운영하는 등 반전에 관심이 많은 학교이기 때문이다. 이중 [[https://www.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1606111631011|서승 교수]]는 일본 내에서도 진보적인 목소리를 많이 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재일교포로 서울대학교 대학원에 입학였다. 그는 당시(1970년대) 공안정국에 의한 조작된 간첩혐의로 대공분실로 납치되었는데, 고문을 받다 자살을 기도하여 얼굴 등 전신에 화상을 입은 사고를 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학풍은 다키가와 사건(滝川事件)[* 1933년 일본 문부성이 교토대학 법학부의 다키가와 교수에게 강제 휴직처분을 내려, 교토대학의 법학부 교수, 조교 등 법학자 12명을 포함하여 학문의 자유 침해에 대한 반발로 교수진들이 대거 사임한 사건. 참고로 다키가와 교수가 징계에 처해진 이유는 천황의 법적 지위에 대한 고찰을 논했기 때문이었다. 천황을 비판한 것도 아니고 단지 헌법적 지위에 대해 연구만 했는데도 이런 처분이 내려진 것이다. 그래서 현재 일본 헌법 제1조 제1항에는 천황제는 국민의 총의(總意)에 의한다고 명시되어 있다.]으로 말미암은 영향이 큰데, 이 사건이 일어났을 때 교토대학을 나온 일류 학자들을 리츠메이칸대학에서 대거 영입한 것. 특히 이 사건으로 교토대학을 나왔던 스에가와 교수를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총장으로 영입. 당시 국가주의 성향이 강했던 리츠메이칸대학을 스에가와 총장은 재직한 20년 동안 일본에서 가장 진보적인 학교로 바꿔 놓았다. 이후 학교 운영진의 노력에 말미암아 현재는 국제적인 이미지를 가진 학교로 탈바꿈했고, 이러한 역사 덕분에 리츠메이칸대학은 현재도 상당히 자유로운 학풍을 가지게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