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마나과 (문단 편집) == 역사 == 마나과는 1819년 세워졌다. 독립 이후 니카라과는 진보성향의 [[레온(니카라과)|레온]]과 보수성향의 [[그라나다(니카라과)|그라나다]]로 나뉘어 이념대립을 벌였는데, 1852년 두 도시의 중간에 있는 마나과가 니카라과의 수도가 되었다. 1860년대 마나과의 인구는 1만 명이었다. 1931년 대지진으로 마나과는 초토화되었고 이후 대대적으로 재건되었다. 소모사 정권 치하 니카라과(1937~1979)가 점진적으로 공업화되면서 마나과는 제조업의 중심지로 떠올랐다. 소모사 치하에서 인구는 50만 명으로 폭증했고, 현대적인 건축물들이 대거 들어선 화려한 도시로 변모했지만 동시에 그 변두리에는 거대한 슬럼가가 형성되었다. 1972년 발생한 두 차례의 대지진은 마나과를 한번 더 초토화시켰다. 소모사 정권은 대지진에 무능하게 대처하여 계층을 막론한 전국민의 불만을 샀고 따라서 1972년 지진은 [[니카라과 혁명]]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된다. 1978년과 1979년 니카라과 혁명이 막바지에 다다랐을 때, 마나과는 정부측 헌병군(Guardia Nacional)과 [[FSLN]] 반군 사이의 격전이 벌어졌다. FSLN은 1979년 7월 19일 마나과에 입성하여 니카라과 혁명을 승리로 마무리지었다. 그러나 1980년대 마나과는 혁명과 내전으로 도저히 복구를 할 형편이 못 되었다.[* 니카라과의 철도환경도 대지진의 결정타를 받았다. 이미 1960년대부터 쇠퇴하던 철도는 마나과 대지진으로 급속도로 경영이 악화되었고 니카라과의 정세가 급속히 악화되어 보수되지도 못했다. 2001년 마지막 노선이 폐쇄되었으므로 현재 니카라과에는 운용 중인 철도가 '''없다'''. 현재 철도사업의 타당성 조사를 시행하고 있긴 한데 나중에라도 재건될지는 미지수.] 1990년 산디니스타 정권에서 자유주의 중도우파로 정권교체가 된 후에야 비로소 복구가 가능해졌다. 이후 기업이 입주하고 새로운 건설계획이 추진되어 현대적인 도시로 재건되었다. 오늘날 마나과는 정치, 경제, 교육, 문화, 교통의 중심지로 기능하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