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마녀사냥 (문단 편집) ==== 마녀사냥의 희생자들 ==== 고위인사도 드물게 기소되었지만 피고인의 대다수는 유럽 사회의 하층 계층이었다. 주요 타깃은 지위가 낮은 여성이었으며, 여성은 남성보다 우둔하고 변덕스러우며 성적으로 방종하다는 성차별적 사회풍조도 한 몫을 했다. 통계에 의하면 프랑스, 독일 등 서유럽 지역은 희생자의 80%가 여성이었다. 그리고 여자만이 아니라 [[남자]]들도 사탄의 제자 혹은 하수인, 마귀 등으로 불리며 희생된 경우도 적잖게 있었다. 아이슬란드에서는 피고인의 92%가 남성이었고, 에스토니아에서는 60%, 모스크바에서는 피고인의 3분의 2가 남성이었다. 그러므로 '''번역어인 마녀(魔女)는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 어떤 책에서는 여성 마녀, 남성 마귀로 번역하였다. 일단 명목은 마녀사냥이지만 실제 마녀사냥에 희생당한 사람들은 주로 권력싸움에서 밀려난 자들이나, 종교에서 아무런 득을 입지 못하고 민간 신앙에 기댔을 뿐인 못 먹고 못 살던 하층민들이었다. 심지어 유명한 천문학자 [[요하네스 케플러|케플러]]의 모친도 마녀로 몰렸다.[* 케플러가 자기 엄마는 외계인과 결혼한 마녀라는 내용의 소설을 썼는데 그걸 진짜로 믿은 사람이 있었다. 케플러가 변론을 잘 해서 마녀가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했기 때문에 사형까지는 안 가고 어찌저찌 풀려났지만 후유증으로 다음해에 사망한다. 그래도 이 사건 덕분에 그 지역에서 마녀사냥이 주춤해지는 효과가 있기도 했다.] 특히 재산이 많은 [[과부]]들이 타겟이 되기도 하였는데, 가족과 남편이 없으니 '악마와 간통했다' 는 식으로 덮어씌우기 편했던 데다 무엇보다도 당시 [[독일]]법상 마녀재판으로 몰수된 재산의 일부는 마녀로 누군가를 지목한 사람의 몫으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독일]]에서는 마녀의 재산을 가지지 못하게 했더니 신고율이 급감했다는 기록이 있다. 특히 '아름다운' 과부는 어떻게 뜻대로 해보려다 거절당해 앙심을 품은 남성들이나 질투한 여성들이 신고하는 사례가 많았다고 한다. 의학적 지식을 가진 산파나 민간요법에 통달한 자들도 주술을 부린다는 명목으로 희생되었다. 의사들이 이들을 경쟁자로 여겨 고의로 고발하기도 했다고 한다. 평소에 원한을 가지고 있던 자를 제거하기 위해 살인사건이나 질병의 원인으로 고발하기도 했다. 나이가 많은 여성일수록 마녀로 몰려 죽는 경향이 심했다. 젊은 가임기 여성은 인구 수, 즉 세수를 늘리기 위해 필요했으므로 무죄방면한 사례가 있다. 소위 마녀라 하면 떠올리는 '심술궂게 생긴 노파'의 이미지를 여기서 찾는 경우도 많다. 한편 어머니가 마녀인 경우 아이들까지 악마의 자식으로 몰려 함께 처형당하기도 했다. 기록에 의하면 어린아이도 마녀라면 죽여야 하며, 나이를 감안해 목 졸라 죽인 후[* 즉 살아있는 채로 태우지는 않는 것.] 불에 태우라는 내용이 있다. [[동성애자]]나 [[양성애자]] 등 [[성소수자]]들도 함께 몰이당해 처형되기도 했는데, 보통 마녀사냥에서의 [[화형]]은 잘 알려진대로 희생자를 장작 위에 새운 말뚝에다가 묶고 불로 태우는 방법인데 반해, 동성애자들은 아예 사람 취급을 안 해 말뚝에 묶이는 것도 아깝다고 여겨 다른 장작들과 같이 묶어서 그냥 불에 던져졌다고 한다. 영어 욕설 중 [[게이|남자 동성애자]]를 비하하는 말로 "Faggot"이라는 단어가 있는데, 이 단어는 원래 묶어놓은 장작 더미를 일컫는 말이었다가 게이를 향한 욕설로 쓰이게 된 것은 여기에서 출발했다는 가설이 있다. 개신교도들 또한 마녀사냥의 피해자이다. 당시, 마녀사냥은 마녀로 지목된 여성들 뿐 아닌 이단자들을 포함하고 있었고, 종교개혁 당시 개신교도들은 이단자로 취급 받고 있었다. 아이러니 하게도 개신교도들도 마녀사냥을 하여 무고한 피해자를 양성하였다. 이 마녀사냥으로 인해 기독교 전파 이전의 토착 민속 신앙은 말 그대로 박살이 나버리고 일부 기록으로만 남게 되었으며, 마찬가지로 민간에서 전승해 오던 전통 약초학도 일부 기록만 남긴 채 사실상 소멸했다. 실제로 현대 의사들과 약사들은 이 사실을 많이 안타까워하고 있다. 아래 표는 1450~1750년 기간 동안 유럽의 여러 지역에서 마녀재판과 처형에 대한 대략적인 통계이다.[* William Monter: Witch trials in Continental Europe, (in:) Witchcraft and magic in Europe, ed. Bengst Ankarloo & Stuart Clark, University of Pennsylvania Press, Philadelphia 2002, pp 12 ff. ISBN 0-8122-1787-X; and Levack, Brian P. The witch hunt in early modern Europe, Third Edition. London and New York: Longman, 2006.] || 지역 || 재판횟수 || 처형횟수 || || {{{영국}}} || ≈5,000 ||≈1,500–2,000 || || {{{신성 로마 제국 (독일, 네덜란드, 스위스, 로렌, 오스트리아, 체코)}}} || ≈50,000 ||≈25,000–30,000 || || {{{프랑스}}} || ≈3,000 ||≈1,000 || || {{{스칸디나비아}}} || ≈5,000 ||≈1,700–2,000 || || {{{중부 및 동부 유럽 (폴란드-리투아니아, 헝가리 및 러시아)}}} || ≈7,000 ||≈2,000 || || {{{남부 유럽 (스페인, 포르투갈 및 이탈리아)}}} || ≈10,000 ||≈1,000 || || {{{총계}}} || ≈80,000 ||≈35,000 || 학자들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처형된 총 희생자 수는 대체로 약 4만~6만 명 정도로 여겨진다.[[https://journals.equinoxpub.com/index.php/POM/article/view/10684/8082|247페이지]]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