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마니풀라 (문단 편집) == 구조 == 마니풀라 시기, 로마군에 갓 입대한 장병은 10명의 로마 병사와 2명의 종군 하인 또는 노예로 구성된 콘투베르니움(Contubernium)에 소속되었다. 이들은 전투 중에 서로를 의지하고 경비 임무를함께 수행하며, 한 사람이 죽으면 다른 이들이 가족에게 연락해 장례를 치렀다. 이들의 리더는 데카누스(Decanus)로, 여덟 장병 중에서 전투 경험이 가장 많거나 통솔력이 뛰어나다는 인정을 받은 이가 동료들의 추천을 통해 선출되었다. 데카누스는 동료 장병들이 행군 시 대열을 유지하도록 감독했고, 대열을 이탈한 자에게 징계를 내렸다. 켄투리아(Centuria)는 10개의 콘투베르니움을 묶은 집단으로, 로마군에서 가장 기본적인 전술 부대였다. 이들은 각자만의 군기을 지니고 나름의 전통을 유지했으며, 다른 켄투리아들과 경쟁했다. 각 켄투리아의 지휘권은 군단장의 지명으로 선임된 [[켄투리오]]가 맡았다. 이들은 켄투리아 내 병사들의 생사 여부를 자의로 결정할 수 있을 정도로 막강한 권위를 가졌고, 이를 바탕으로 켄투리아의 훈련과 규율을 책임졌고 전투 시 켄투리아의 작전을 총지휘했다. 또한 오프티오(Optio, 부 켄투리오)는 전투 시 켄투리아의 후미에 서서 누구도 도망가지 못하도록 막았고, 켄투리오가 전사할 경우 지휘권을 대신 맡았다. 마니풀라 시기, 켄투리아는 '소규모 집단'이라는 의미의 마니플(Maniple)로도 일컬어졌으며, 비슷한 재산을 가진 마니풀끼리 뭉쳐서 [[벨리테스]], [[하스타티]], [[프린키페스]], [[트리아리]]를 결성했다. 벨리테스는 로마군 내에서 가장 가난한 이들이 모인 켄투리아 10개 부대 1200명으로 편성된 부대로, 갑옷은 전혀 입지 않았지만 여러 개의 [[필룸]][* [[티투스 리비우스 파타비누스]]는 벨레스 한 명 당 7개의 필룸을 가졌다고 밝혔고, 풍자 시인 가이우스 루킬리우스는 5개의 필룸을 갖췄다고 서술했다.]과 직경 약 90cm(3피트)의 원형 방패 파르마(Parma)를 갖췄으며, 허리에 [[글라디우스]]를 찼고, 종종 늑대, 곰 등 용맹과 힘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짐승의 가죽을 입었다. 하스타티는 벨리테스보다는 부유하지만 프린키페스, 트리아리보다 가난한 이들이 모인 켄투리아 10개 부대 1200명으로 편성된 부대였다. 이들은 본래 약 2.4m(8피트)의 [[창]]인 하스타(hasta)로 무장했지만, 나중에 주무기를 [[글라디우스]]로 변경했다. 이들은 한 손에 길이 1~1.2m, 폭 60~80cm의 큰 사각형 방패인 [[스쿠툼]]을 한 손에 붙잡고 다른 손으로 글라디우스를 잡고 적군에 맞서 근접전을 벌였다. 또한 2~3개의 [[필룸]]을 별도로 챙겼으며, 위쪽으로 갈수록 가늘어지는 반구형 모양의 몬테포르티노(Montefortino) 또는 둥근 형태의 카시스(Cassis) 투구를 착용했다. 이들은 가벼운 갑옷을 착용했는데, 가장 일반적인 형태는 "심장 보호대"로 일컬어지는 사각형 모양의 작은 흉갑이었다. 프린키페스는 로마군에서 두 번째로 부유한 병사들끼리 뭉친 켄투리아 10개 부대 1200명으로 편성된 부대였다. 이들은 하스타티처럼 글라디우스와 스쿠툼을 갖췄지만, 가슴을 보호하는 작은 흉갑만 챙겨입은 하스타티와는 달리 상반신 전체를 보호할 수 있는 [[로리카]](로리카 하마타(Lorica Hamata): [[사슬 갑옷]]의 일종)를 주로 착용했다. 트리아리는 최소 15년을 복무한 고참병들이 배속된 부대로, 켄투리아 60명이 10개씩 모인 600명으로 구성되었다. 이들은 하스타티, 프린키페스와는 달리 하스타를 계속 사용했으며, 기본 무장 수준은 프린키페스와 비슷했지만 좀더 화려한 장식의 깃털을 투구 상단에 꽂고 보다 질이 좋은 방패와 갑옷을 착용했다. 일부 학자들은 이들 중 막대한 재산을 가지고 있었거나 그동안 받은 급료를 잘 쌓아둔 이들은 그리스 [[호플리테스]]가 입은 전신 청동 갑옷을 입었고 방패 역시 프린키페스가 [[스쿠툼]]을 사용한 것과는 달리 그리스식 둥근 방패인 [[라운드 실드]]를 사용했을 거라고 추정한다. 가장 부유한 시민은 [[에퀴테스]]로 명명된 기병대에 배속되었다. 30명의 켄투리아 10개 부대가 뭉친 300명으로 구성되었다. 이들은 초창기엔 갑옷을 입지 않았지만 포에니 전쟁 무렵에는 사슬 갑옷과 투구를 착용했고, 긴 창과 작은 방패를 갖췄으며, 허리에는 글라디우스를 차고 다녔다. 3명의 데쿠리오네(Decurione)가 이 기병대의 지휘관 역할을 맡았다. 로마군은 그들과 같은 라틴족 도시들로 이루어진 라틴 동맹의 동맹시 또는 속국들에게서 보조병을 징집하여 동원했다. 로마 군단병의 좌우 측면에 배치되어 날개(Alae)라고 불린 이 동맹시 보병들은 로마군 보병과 비슷하거나 약간 더 많았고, 기병대 규모는 로마 시민 기병대의 3배에 달했다. 동맹시 보병의 1/5, 기병의 1/3은 정예 부대(Extraordinarii)로 따로 편성되어 선봉이나 집정관의 호위 등 중책을 맡기도 했다. 로마는 보조병을 제공받는 대가로 동맹시에게는 외교권을 제외한 완전한 정치적 자치를 부여하였으며, 세금 역시 강요하지 않았다. 그리고 로마는 그들에게 군사적인 보호를 제공하였다. 한 개 군단은 벨리테스 1,200명, 하스타티 1,200명, 프린키페스 1,200명, 트리아리 600명, 에퀴테스 300명에 비슷하거나 약간 더 많은 동맹군 보병과 900명의 동맹군 기병을 합친 9,000 ~ 10,000명으로 구성되었으며, 집정관 한 명이 2개 군단을 이끌었고 6명의 [[트리부누스 밀리툼]]이 한 군단의 지휘권을 2개월 당 2명씩 돌아가면서 맡았다. 두 집정관은 각자 작전 지역을 배정받고 별도로 작전을 수행했다. 두 집정관이 힘을 합쳐 외적을 상대할 경우, 전투가 끝날 때까지 전체 군대의 지휘권을 매일 돌아가면서 맡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