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마사다 (문단 편집) == 제1차 유대-로마 전쟁 전 == 마사다가 처음 군사적 요지로 사용된 것은 [[하스몬 왕조]](마카비 왕조)의 [[대제사장]](사실상 국왕)인 [[요나단(하스몬)|요나단]] 시기이다. 이후 [[헤로데 대왕]] 시절, 안티고누스가 [[파르티아]]를 등에 업고 공격해오자 대왕은 가족과 8백 명의 군대를 이끌고 마사다로 피신해 목숨을 부지했고 그 뒤 로마로 건너가 원로원으로부터 '''유대왕'''으로 인정받은 다음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지원을 받아 전쟁에서 승리했다. 하지만 로마의 지원을 받은 만큼 대왕의 치세는 안밖으로 다소 불안정했고, 그래서 유사시 피난해 농성할 곳이 필요했다. 그래서 마사다를 [[우주방어|본격적으로 요새화하기 시작]]했다. 우선 성곽을 구성하고 요새와 무기고를 지었는데 여기에 잠시 피난할 장소 이상으로 오랜 기간 버틸 수 있게 수십 년치 양식을 보관할 창고에 대량의 물을 저장할 수 있는 저장고, 로마의 영향을 받은 수로와 목욕탕까지 조성해 말 그대로 [[난공불락]]의 요새를 만들어 놨다. 그러나 정작 헤로데 대왕 시절 마사다를 본격적으로 쓸 사건은 없었고 대왕 사후 유대가 로마의 속주가 되며 마사다도 로마군의 손에 넘어가 로마군 수비대가 주둔하게 되고 만다. 로마를 사악한 이교도라고 증오했던 유대인들은 결국 로마에 맞선 반란을 일으키기로 결심하고 소요를 벌였는데, 이때 친로마파인 유대 왕족이 군중들을 찾아가서 "'''너희가 [[게르만족]]보다 용감한가? 그리스인보다 지혜로운가? 이집트인보다 인구가 많은가? 갈리아인보다 부유한가? 도대체 무엇을 믿고 로마에 맞서 싸우기로 하겠다는 것이냐?'''"라고 말하며 전쟁을 일으키지 말라고 제지했으나, 이미 전쟁을 일으키기로 결심한 군중들의 마음을 돌리지는 못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