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마산시 (문단 편집) == 태풍 매미 == [[2003년]] [[추석]] 전후에 불었던 [[태풍]] [[매미(태풍)|매미]]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입은 도시다. 모 여학교 [[기숙사]] 지붕이 뜯겨 나간 것은 사소한 것에 불과하다. 최악이라 할 수 있을 만한 것은 [[만조]]로 인한 엄청난 [[해일]]이 발생, 태풍 대비책도 제대로 되어있지 않은 채 해안 부두에 야적되어 있던 [[통나무]]가 해안도로를 넘어 1.2km 내륙 시가지까지 떠내려왔던 사건. 해일로 인해 바닷물이 매립으로 넓힌 땅 대부분에 들어왔다. 자유무역지역또한 피해를 봤다. 대부분의 공장 및 사무실 건물 1층이 물에 잠겼고 물류창고또한 파도에 휩쓸렸다. 당시 자유무역지역에 당직으로 근무했던 사람의 증언으로는 > "파도가 밀려와서 도망칠려 했는데 다리가 물에 잠겨서 이동할수 없었다. 결국 가장 튼튼한 건물이었던 ○○회사 옥상에 주변 당직근무자들이 모두모여서 가족들에게 전화하기에 바빴다. 3시간쯤 있으니까 물이 빠졌는데 바닥에 하얀 벽돌같은게 굴러다니더라, 내려와서 자세히 보니 휴대폰들이었다."[* 당시 노키아가 무역지역에 입주해 있었다. 노키아 창고가 파도에 휩쓸리면서 떠내려온 물품들이다.] 라고 한다. 당시 당직 근무자들은 노키아 휴대폰이 박스포장 그대로 바닥에 굴러다니는 것이 매우 기억에 남는다고.. 이 태풍으로 인해 몇 명의 사상자도 발생했다.[* 사망자 대부분은 추석 연휴를 맞아 지하 상점이나 [[노래방]] 등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밀려온 바닷물에 익사했다. 특히 '데몰리션 노래방'은 외계 설정이라 노래방 룸이 달걀모양 움집처럼 생겨서 더했다. 게다가 노래방 주인을 비롯, 탈출을 시도한 사람들은 떠내려온 통나무가 출입구를 막는 바람에 안타깝게 변을 당했다.] 이후 대대적으로 국가 지원을 받아 [[방조제]]를 쌓을 듯 했는데, [[국토교통부|국토해양부]]에서 [[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1&no=482821|플랩게이트]]라는 걸 [[마산항]]에 설치하기로 했다. 평소엔 바다 밑에 가라앉혀 놨다가 해일이 오면 공기를 채워 세움으로써 해일을 막는 것이다. 이 피해 이후 마산에 지어지는 아파트들은 터돋움식으로 지어지게 되었는데, 아파트 1층이 다른 아파트 2층 이상의 높이에 필적할 만큼 꽤 높게, 그 아래 공간은 [[주차장]]으로 활용하는 방식이 되었다. --반세기 만에 터돋움집이 부활했다-- 참고로 마산의 만조로 인한 피해는 현대에 들어와서 거의 전무하다시피했기 때문에, 수해[[보험]]을 들지 않은 전자기기 상가들은 그 뒤로 모두 문을 닫아야 했다. 심지어 대동씨코아는 유입된 통나무가 지하 구조물을 몽땅 두들기는 통에 건물 전체 안전까지 위협받아 대대적인 수리를 벌여야 했을 정도. 하지만 인근의 모 아파트는 우연히 외국계 수해보험에 들어두는 통에 대박을 맞았다고 한다. --진짜 세상 사는 건 모르는 일-- 그런데 자료를 찾아보면 아주 드물게 마산에 해일로 인한 수해는 발생한 것으로 여겨진다. 실제로 [[1985년]] 마산시사(史)에 따르면 "산꼭대기 바위에 [[조개]]가 붙어 있는" 민간설화가 동네 나이 많은 어르신들에게 전해지는 경우가 많은데, 채록한 마을을 이어 보면 놀랍게도 현재의 진전-진동면 일대 평지가 몽땅 잠긴 모양을 하고 있다. 과거 해안선이 상당히 침식되어 있었거나 혹은 수해를 입었다는 유력한 증거. 또한 실제로 현재의 산호동 [[MBC경남]] 창원지역본부 사옥 앞까지 배가 수월하게 들어왔다는 옛 기록도 있다. 즉 현재의 이산성터는 옛날에는 "항구"였던 것이다(!)[* 즉 무학여고 뒤 이산성이 인천이라면, 현재의 합성동인 합포성이 서울이었던 셈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