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마오리족 (문단 편집) == [[전투민족]] == [youtube(3BoNmpvkavo)] [youtube(Nk2Cwl_flZc)] 뉴질랜드 럭비팀과 호주 럭비팀이 각각 [[마오리 하카]]와 어보리진 전투 함성으로 기싸움을 벌이는 모습이다. 마오리족은 평상시에는 Tangata Whenua라는 이름에 걸맞게 [[고구마]] 농사를 짓고, [[돼지]]를 기르며 살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갈등이 붙으면 그야말로 무자비하게 싸웠다. 보통 싸움이 끝나면 패배한 부족은 이들을 이끄는 상위계급 전사나 족장들은 [[마나]]를 흡수할 요량으로 [[식인|'''먹혔'''기 때문에]], 부족간의 전쟁이 끝나면 이기는 쪽은 규모가 커졌다. 하지만 이 방식으로 세를 불린 부족이 생기면 주변의 다른 부족들에게도 위협이 되기 때문에 결국 전쟁이 반복되고 반복되는 구조가 이어졌다. 섬인 뉴질랜드에서 이런 식으로 싸웠다간 손해도 손해지만, 언젠간 마오리족 전체가 사라질 수도 있었다. 결국 [[마오리 하카|하카]](haka)라는 독특한 풍습이 생겨났다고 한다.[* 비단 뉴질랜드뿐만 아니라 [[폴리네시아]] 문화권 및 고립된 특징이 있는 [[섬나라]] 전반에 해당하는 사항이다. 단적인 예가 일본의 와(和) 사상과 영국의 블랙 유머.] 전투를 벌이기 전에 두 부족은 모든 전사들을 이끌고 평지에 집결해 일정한 대오를 갖추었다. 그리고 서로를 모욕하면서 부족 전체가 똑같은 동작으로 춤을 추었는데, 하카의 동작은 손으로 무릎을 치고, 눈을 부릅뜨고 혀를 빼밀며 상대방을 위협하는 동작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마오리족 특유의 혀를 내미는 동작은 사실 '''너를 잡아먹어버리겠다!'''라는 뜻의 위협이다(!). 전쟁 한번 터지면 한쪽은 다른 한쪽을 잡아먹으니만큼 훌륭한 위협 내지 도발이었을 듯.] 양쪽 모두의 하카가 끝나고, 한쪽 부족의 추장이 자신들의 세가 밀린다고 싶으면 그들은 말없이 물러났으며 전쟁은 그걸로 끝났다. 승리한 부족은 패배한 부족의 [[마나]]를 흡수했다고 여겼으며, 패배한 부족도 자신들의 소중한 인력을 보존할 수 있었기 때문에 서로 이익인 셈이다. 하지만 양쪽 모두 하카를 끝나고도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하고 있다면 그때는 알짤없이 공격에 들어갔다. 마오리족은 전통적으로 파투(patu)라는 나무를 깎아 만든 몽둥이[* 몽둥이 역할로 쓰긴 하는데 생긴 모양새가 한국인들이 보기에는 영락없는 [[주걱|밥주걱]](…)이다. 높은 지위를 가진 사람들은 [[옥]]이나 상아 같은 특별한 재료로 된 걸 소지했다.]와 타이아하(taiaha)라는 기다란 나무막대기를 들고 싸웠다. 이외에도 도끼, 창, 원시적 수준의 칼 등 여러가지가 있지만 이 무기들의 공통점은 하나같이 재료가 [[목재]]다. 날카롭게 깎아서 찌르거나 벨 수도 있었지만 대체로 [[둔기]]다. 이런 무기로 죽을 때까지 싸우려면 힘이 어지간히 세야 할텐데 마오리족의 피지컬을 생각한다면 어째 납득이 가게 된다. 19세기에 들면 유럽 상인들을 통해 [[머스킷]]을 대량으로 들어옴에 따라 전투는 더더욱 처절한 양상을 띠었다(일명 머스킷 전쟁). 1840년 마오리 부족들간의 갈등을 중재한 [[영국]]과 마오리 부족장들 사이에서 체결된 '와이탕이 조약(Treaty of Waitangi)' 이후 부족들의 갈등은 마무리되었지만, 그때까지 마오리족은 '''이미 서로 2만명 이상을 살상한 상태였다. 유럽인들이 진출하기 직전의 인구 추정이 10만명 정도인데, 머스킷 전쟁 이후에는 전쟁과 유럽인들이 옮겨온 전염병으로 5만 이하로 줄어든 것으로 추정된다.''' 머스킷을 갖추지 못한 부족들은 노예가 되었으며 마오리 부족들도 이 시기에 상당히 정리되었다. 이 과정에서 외부 팽창까지 이루어지며 [[제노사이드]]까지 일어났는데, 대표 사례로 1835년에 [[채텀 제도]]에 살고 있는 모리오리족[* 마오리족에서 갈라져나온 민족이다. 원래는 농업과 어업이 활발했는데 서기 1500년경 채텀 제도에 정착한 모리오리족은 전반적으로 춥고 건조한 기후 때문에 다시 수렵채집 사회로 돌아갔다.]에 대한 공격이 꼽힌다. 총과 곤봉과 도끼로 무장한 마오리족 500명이 11월 19일에 침입했고, 12월 5일에 마오리족 400명이 더 왔다. 이들은 모리오리족의 촌락을 돌아다니며 모리오리족을 자신들의 노예라고 선언하고 반대하는 이를 죽여버리기 시작했다. 그 당시에 모리오리족은 분쟁을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전통이 있었기 때문에 대표자 회의를 열어 맞서서 싸우는 대신에 평화와 우정을 제안하며 물자를 나눠주기로 결의했다. 그러나 그 제안을 전달하기 전에 마오리족은 한꺼번에 공격해왔다. 며칠만에 수백명의 모리오리족이 살해되고 [[식인|많은 시체를 먹었으며]] 남은 이들은 노예가 되었다. 그 노예들조차도 몇 년 동안 닥치는대로 죽여서 대부분이 사라졌다.[* 제레미 다이아몬드 <총,균,쇠> 2016, 73~74p] 그 결과 당시 1,700명에 달했던 모리오리족은 35년이 지난 1870년에는 100명만 남았다.][* 종종 똑같이 식인을 했지만 마오리족은 적어도 전투에서 패배한 자들 위주로 잡아먹었고 이마저도 나중에는 서로 싸우고 잡아먹기만 하다간 공멸할 것이라고 여겨 하카라는 특유의 문화를 만들어내 희생자를 줄이는등 나름대로 자성의 노력을 했기에 [[아즈텍]]보다는 낫다는 주장도 있는데 이 사례한정으로는 '''마오리족도 아즈텍 못지 않게 악랄했다.'''] 양차대전, 특히 [[제1차 세계 대전]] 때는 저격수의 총알과 포탄이 난무하는 [[참호전]] 속에서도 [[마오리 하카|하카]]를 추는 대범함으로 용맹을 떨쳤으며, [[제2차 세계 대전]]에도 참전해 [[북아프리카 전역]]에서 노획한 독일제 무기를 애용했다고 한다. 당시 이들을 상대해야 했던 군인들은 "이건 뭐, 총을 갈겨 맞고 쓰러져도 신음소리조차 안내고, 다른 놈들은 동료가 쓰러지든 말든 개돌해서 아군 진지를 피범벅으로 만들더라…"라고 하며 매우 두려워했다고 한다. [[아돌프 히틀러]]가 '만약 마오리족이 독일을 도왔다면 전쟁을 이겼을 것'이라고 한탄했다는 [[소문|카더라]]가 존재할 정도다. [[파일:북아프리카 마오리족 하카.jpg]] [[북아프리카 전역]]에서 [[마오리 하카|하카]]를 추는 마오리 전사들. 또한 [[6.25 전쟁]]이 발발하자 마오리족 역시 참전하였다. 이 당시 뉴질랜드 지상군이었던 Kayforce의 마오리족 비율은 7.5%였지만 전쟁 후반부에는 지원군의 약 1/4 가량이 마오리 전사들이었다. [[http://www.teara.govt.nz/en/nga-pakanga-ki-tawahi-maori-and-overseas-wars/page-6|출처]] "창과 화살을 들고 갔기 때문에 미군에게서 총을 얻어다가 싸웠다"라는 루머가 있으나, 상술했다시피 1, 2차 세계 대전에서 뉴질랜드군으로 현대무기로 싸운 마오리족이 6.25 전쟁에 냉병기를 들고 참전했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이미 마오리족은 그 전부터 서양무기를 들어와서 자체적으로 무장을 해서 타지역 원주민을 정복하고, 유럽인과 맞서 싸우는 등 이에 대한 역사가 깊다.] 이 때 참전용사들에 의해 마오리족 민요인 '''[[Pokarekare ana]]'''가 한국에 전해졌고 이 곡은 '비바람이 치던 바다, 잔잔해져 오면~'이란 가사로 시작되는 '''[[Pokarekare ana|연가]]'''로 번안되어 불렸다. [[https://www.youtube.com/watch?v=DANPs-YjFdk|Pokarekare Ana]], [[https://www.youtube.com/watch?v=X3CNGz0clyc|한국에 알려진 연가 버전]], [[http://kpopedia.com/y8NU|링크]] 그밖에 이탈리아 공수부대 군가 [[당신의 공수부대]], [[하늘의 대담한 전사로서]] 등도 마오리족 민요에서 가져온 것이다. 전자의 경우 한국에선 [[복음성가]] 예수 이름으로 곡조로 쓰인다. [[전투종족]]이지만 [[Deadliest Warrior]]라는 프로그램에서는 소림승에게 패하는 굴욕을 당했다. 다만 이 프로그램은 시즌 2까지 시대상 불평등한 대결이나 편파적인 요소가 많았고, 몽골군이 아파치 전사와 싸우는 장면처럼 한쪽이 어이없을 정도로 멍청하게 나오거나,[* 더할나위 없이 아메리카 원주민은 현명하고, 몽골인은 멍청한 바바리안이라는 스테레오타입이 그대로 적용됐다.] 무기 데이터를 뽑을 때도 비전문가가 나와서 들고 설치는 것도 있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