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마오쩌둥/생애 (문단 편집) === 한반도 파병에 대한 지도부의 갈등 === 한반도 파병안을 놓고 중국 지도부는 갈라졌다. [[저우언라이]]와 [[린뱌오]]는 참전을 반대했다. 저우언라이는 마오쩌둥의 참전 주장에 동의는 했으나, 한반도 파병을 위해 소집된 중국군의 상태가 전쟁을 치르기에는 영 좋지 않은 상태라서 당장 중국군이 참전한다 해도 미군에 승산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비교적 소극적인 참전 지지를 표명했다. 당시 국공내전이 끝난 지 1년도 안 되어 세계 최강인 미국과 맞붙는다는 것은 커다란 모험이었기 때문이었다. 총사령관인 [[주더]]는 중립을 지켰지만 [[펑더화이]]는 파병안에 찬성했다. 마오쩌둥도 북한이 망하면 미국의 다음 목표는 자신들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걱정했기 때문에 본토에서 [[미군]]과 싸우느니 한반도에서 싸우는 게 낫다고 생각하고 '[[순망치한]]'을 외치며 총 60만 대군을 파병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