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마요리아누스 (문단 편집) === 초기 생애 === 마요리아누스가 언제 어디서 태어났는지는 전혀 알 수 없지만, 역사학계는 420년 이후에 태어났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458년 '''젊은이'''[* [[라틴어]]: iuvenis]로 그가 지칭되는 것이 그 증거인데, 458년을 기준으로 30세 이전의 20대 나이였던 것은 확실하다고 한다. 서기 5세기 당시의 대표적인 갈리아 일대의 로마 귀족 가문 태생으로, 조부 대부터 서로마 제국의 대표적인 군인 귀족이었다. 같은 이름을 가진 할아버지는 대제 [[테오도시우스 1세]] 휘하의 기병대장으로, 일리리아 주둔군의 총사령관으로 재임할 당시인 379년 시르미움에서 테오도시우스 1세의 대관식에 참석했다. 이후 '''마요리아누스'''라는 이름은 후손들에게 대대로 전해지는 영광스러운 명칭으로 각광받았다. 마요리아누스 역시 할아버지처럼 군대에 입대해 명장 [[플라비우스 아에티우스]]의 부하로서 갈리아에서 복무했다. 이때 그는 훗날 서로마 제국의 권신이 된 플라비우스 리키메르와 친구가 되었다. 이후 마요리아누스는 아에티우스의 휘하에서 여러 게르만족에 맞서 싸웠고, [[훈족]]과의 전쟁에서도 활약했다. 몇몇 사료에 따르면 450년 무렵, [[테오도시우스 왕조]]의 서로마 제국 황제였던 [[발렌티니아누스 3세]]는 딸인 플라다키아와 마요리아누스의 결혼을 고려했다고 한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마요리아누스는 발렌티니아누스 3세의 후계자로서 그의 사후 곧바로 황제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에티우스는 이를 반대했고 자신의 아들과 플라다키아를 결혼시키려고 했다. 결국 마요리아누스는 아에티우스로부터 군문에서 쫓겨나 고향에 은거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