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마요리아누스 (문단 편집) === 황제에 즉위하다 === 454년, 발렌티니아누스 3세는 자신의 손으로 아에티우스를 살해했다. 그는 아에티우스를 따르던 군대가 반란을 일으킬 것을 우려해 아에티우스에게 축출되었던 마요리아누스를 군대에 재복무시켰다. 하지만 이듬해 발렌티니아누스 3세는 [[페트로니우스 막시무스]]의 사주를 받은 병사 2명에게 살해되었다. 이에 마요리아누스는 제위 계승을 놓고 페트로니우스와 경합을 벌였지만 페트로니우스에게 뇌물을 받은 원로원과 군대가 페트로니우스를 지지하는 바람에 실패했다. 그로부터 2개월 후, 페트로니우스는 반달 왕국의 국왕 [[가이세리크]]가 수도 로마에 쳐들어오자 이를 피하려고 도망치던 중 성난 군중에게 붙들려 살해되었다. 이후 가이세리크는 로마를 약탈한 후 수많은 포로들을 끌고 북아프리카의 카르타고로 돌아갔다. 한편 갈리아에서 황제로 추대된 [[아비투스(로마)|아비투스]]가 455년 9월에 로마로 귀환하여 정식 황제로 등극했다. 그러나 아비투스는 가이세리크와 전쟁을 치르면서 민심을 잃었고, 결국 반달 해군을 격파해 민심을 얻은 [[플라비우스 리키메르]]에게 폐위되었다. 이때 마요리아누스가 친구 리키메르의 쿠데타에 가담했는지는 불확실하다.[* 일부 기록에는 그가 아비투스를 굶겨 죽이거나 목매달아 죽였다고 한다.] 이후 리키메르는 친구인 마요리아누스를 새 황제로 옹립했다. 리키메르가 아비투스의 사망 후 1년 가까이 밍기적거리며 새 황제를 뽑지 않다가, 원로원과 군대가 반발하자 억지로 마요리아누스를 제위에 앉혔다. 본인이 황제가 될 수는 없었던 리키메르는[* 리키메르는 순수한 게르만족인데다가 이단인 아리우스파 기독교인이었기 때문이다.] 로마군이 이탈리아에 침공해온 [[알레만니|알레마니족]]을 격퇴하고 돌아오던 마요리아누스를 방패에 올려서 황제로 추대하자 어쩔 수 없이 받아들였다. 마요리아누스는 동로마 황제 [[레오 1세(황제)|레오 1세]]에게도 인정받아 서로마 제국의 정식 황제가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