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마요리아누스 (문단 편집) ==== 갈리아 남부 수복 ==== 458년 여름, 가이세리크의 처남이 이끄는 반달족 군대가 리리 강 또는 가릴리아노 강 하구에 상륙하여 캄파니아 일대를 약탈했다. 마요리아누스는 즉시 군대를 소집하여 그들을 공격해 가이세리크의 처남을 죽였으며 대부분의 반달족 또한 전사하고 일부 병력만이 북아프리카로 도주했다. 이후 마요리아누스는 모든 로마인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무기를 소지할 수 있다는 내용의 법령을 반포하고 훈족, 수에비족, 고트족을 포함한 많은 야만족 출신의 용병대를 모집해 제국군의 역량을 강화했다. 또한 동쪽의 라벤나와 서쪽의 미세눔 항구에 함대를 재건했다. 한편, [[서고트 왕국]]의 국왕 [[테오도리크 2세]]는 자신이 후원했던 아비투스 황제가 살해당했다는 소식에 격노했다. 그는 마요리아누스를 서로마 제국의 황제로 인정하지 않고 마요리아누스를 적대했다. 이에 마요리아누스는 서고트 왕국과 맞서 싸우기로 하고, 458년 말에 군대를 이끌고 갈리아 남부로 진격했다. 이후 그의 군대는 서고트 왕국의 군대를 격파했고, 갈리아 남부를 서로마 제국에 편입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후 테오도리크 2세는 마요리아누스와 새 조약을 맺어 그를 용인하고, 마요리아누스가 확보한 영토를 인정해야 했다. 마요리아누스는 여세를 몰아 부르군트족을 격파하고, 루그두눔([[리옹]])을 점령했다. 로마 제국에 반기를 들었던 도시는 무거운 벌금을 내야 했고, 사로잡힌 부르군트족 전사들은 서로마군에 강제로 편입되었다. 갈리아계 로마 귀족층은 아비투스 황제의 편을 들었던 적이 있었지만, 마요리아누스는 그들을 처벌하기보다는 그들과 화해하기를 원했다. 아비투스의 사위 시도니우스 아폴리나리스는 마요리아누스 황제를 기리는 찬양문을 반포했고, 그 덕분에 측근이 되었다. 이후 마요리아누스는 루그두눔 백성들의 요청을 받은 교황 레오 1세의 설득에 따라 벌금을 감면해주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