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마요리아누스 (문단 편집) === 반달 왕국과의 전쟁과 최후 === 461년, 마요리아누스는 북아프리카를 반달족으로부터 수복하기 위해 해군을 카르타고노바로 집결시켰다.[* 카르타고노바는 오늘날 이베리아 반도 남부의 카르타헤나에 해당된다. 마요리아누스가 함대를 집결시킨 곳은 정확하게는 카르타고노바의 근처에 있는 일리키타누스 항구(Portus Illicitanus)였다.] 그런데 내부의 배신자들이 이 사실을 반달 왕국의 왕 가이세리크에게 알려줬고[* 애초에 리키메르가 이 배신을 사주했다는 의혹이 있다.] 이에 가이세리크는 함대를 이끌고 기습해 [[화공#s-2|화공]]으로 서로마 함대를 궤멸시켰다. 피해가 막심하자 결국 원정을 단념한 마요리아누스는 이탈리아로 쓸쓸히 귀환했다. 이때 마요리아누스의 친구이자 권신이었던 리키메르는 자신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입지를 다지고 있었던 마요리아누스에게 불안과 불만을 동시에 갖고 있었기 때문에 마요리아누스의 북아프리카 원정이 실패로 끝난 틈을 타 그를 제거하기로 결심했다. 리키메르의 속내를 모르고 있었던 마요리아누스는 로마의 원로원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자신이 이끌던 군대를 해산하고 소수의 병력만 이끌며 이탈리아로 향하고 있었는데 이것이 중요한 패착이었다. 461년 8월 2일 리키메르는 무장해제 상태였던 마요리아누스를 토르토나 인근에서 기습적으로 체포한 후 그의 보라색 의복과 황관을 빼앗고 구타와 고문을 가했다. 5일 후인 8월 7일 마요리아누스는 참수당했고, 그의 시신은 일리아 강에 던져졌다. 마요리아누스를 살해한 후 리키메르는 3개월 동안 뜸을 들이다가 [[리비우스 세베루스]]를 새 황제로 옹립했다. 이 과정에서 마요리아누스 황제의 충신이자 친우였던 갈리아 총독 [[아에기디우스]][* 서로마 제국 최후의 마기스테르 밀리툼 가운데 한 명으로 이른바 [[수아송 왕국]]이라고 불리는 갈리아의 서로마령 속주를 이끌었다.]가 격하게 반발하자 리키메르는 어이없게도 마요리아누스 황제가 굴복시킨 서고트군으로 아에기디우스를 막았고, 이 과정에서 '''마요리아누스가 힘겹게 수복한 서로마 제국의 영토를 서고트와 부르군트에 팔아 넘겼다.''' 거기에다가 아에기디우스가 서고트 군대를 박살내면서 서로마군은 더욱 암담한 상태로 전락하게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