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마초 (문단 편집) ==== [[유비]]의 입촉 ==== 이회전에 따르면 유비는 [[이회(삼국지)|이회]]를 한중으로 파견하여 마초와 우호를 맺도록 했다. 마초는 그래서 유비를 따랐다. 마초는 장로와 더불어 일을 도모하기에 부족한 인물이라 생각하여 내심 근심하고 번민했는데 유비가 성도에서 [[유장(삼국지)|유장]]을 포위했다는 말을 듣고 은밀히 서신을 보내 항복을 청했다. 유비가 사람을 보내 마초를 영접하자 마초는 군사를 거느리고 곧바로 성 아래에 도착했다. 유비는 유장과의 전쟁 와중에도 각지의 소식을 접하는 데 게으르지 않았던 듯싶다. 양주에서 용명을 떨쳤던 마초가 갈 곳 없는 신세가 되어 저족 사이에 몸을 숨기고 있다는 말을 들은 그는 즉시 이회를 보내 자신과 함께 하지 않겠느냐고 설득했다. 기왕 누군가에게 몸을 의탁해야 할 신세라면 실력과 인망을 겸비한 유비가 낫겠다 싶어진 그는 마침내 그때까지도 자신을 따라주던 군사들을 대동하여 몸을 돌려 성도로 향했다. 마초가 자신의 장수가 되기로 결심했다는 소식을 들은 유비는 기뻐하며 말했다. >이제 내가 익주를 얻었구나! 이는 결코 빈 말이 아니었다. 비록 모든 가족과 심복, 양주를 잃고 처량한 신세가 된 마초지만 그 명성과 영향력은 관서는 물론이고 그에 인접한 익주에까지 상당한 효력을 발휘한 것이다. 유비는 사람을 시켜 마초를 멈추게 하고 은밀히 군사를 대어 주었다. 마초가 도착하자 군을 이끌고 성 북쪽에 주둔하게 했는데, 마초가 도착한 후 열흘이 지나기 전에 [[성도]]가 무너졌다. 당시 성도의 성벽을 사이에 두고 수십 일 동안 대치하던 유비군과 유장군의 전쟁은 마초의 전향이라는 사태를 맞아 비로소 종지부를 찍게 된 것이다. 성안 사람들이 두려움에 떨며 [[유장(삼국지)|유장]]이 이내 머리를 조아려 절하니 마초를 평서장군, 독임저로 임명하고는 예전대로 도정후로 삼았다. 이 해가 건안 214년이다. 관우는 [[마초]]가 항복해 왔다는 말을 듣고는 예전부터 친분, 내왕이 있는 이가 아니기에 제갈량에게 서신을 보내 마초의 사람됨과 재주가 누구에 비교될 수 있는지 물었다. 제갈량은 관우의 호승심이 강함을 알았으므로 이에 다음과 같이 답했다. >맹기(마초)는 문무를 겸비하고 웅렬이 남보다 뛰어난 일세의 호걸로 응당 익덕(장비)과 말머리를 나란히 해 달리며 선두를 다툴 수는 있으나 염(髥) 그대의 절륜 일군함에는 미치지 못합니다. 관우는 수염이 아름다웠으니 이 때문에 제갈량이 관우를 일컬어 염(髥)이라 한 것이다. 관우는 이 서신을 읽어보고 크게 기뻐하며 빈객들에게 보여주었다.[* 삼국지 촉서 관우전] 마초는 유비가 후대하는 것을 보고 유비와 더불어 말하며 늘 유비의 자(字)를 부르니 관우가 노하여 그를 죽일 것을 청했다.[* 자를 부르는 것은 상대방과 신분이 동등하거나 높을 때 가능하며, 하급자가 상관의 자를 부르는 건 불경하다 여긴다. 부하가 상관을 부를 땐, 직책으로 부르는게 일반적이다.] 유비가 말했다. >다른 사람이 궁박해져 내게로 귀의했소. 그런데 경 등이 분노하며 내 자(字)를 불렀다하여 죽이자 하니, 천하 사람들에게 무엇을 보이겠소! 장비가 말했다. >그렇다면 응당 예(禮)를 보여야지요. 다음 날, 크게 모이며 마초를 청했는데, 관우, 장비가 함께 칼을 쥐고 곧게 서 있었다. 마초는 좌석을 둘러보았을 때 관우, 장비를 보지 못했다가 그들이 서 있는 것을 보고 크게 놀라니 마침내 다시는 유비의 자(字)를 부르지 않았다. 다음 날 탄식하며 말했다. >내가 이제야 패망한 이유를 알게 되었다. 주인의 자(字)를 부르다 하마터면 관우, 장비에게 죽임을 당할 뻔 했구나. 이후로 유비를 존중하며 섬겼다.[* 마초전 주석 산양공재기] [[배송지]]는 당시 관우는 형주에 있었는데 왜 유비, 장비랑 같이 익주에 있냐고 주석을 달아 이 기록의 신빙성을 부정하였다. 다만 이 시점에서 마초의 지위가 명목상으론 형주를 진수하는 관우의 관할 구역인 임저독이었기 때문에 마초가 잠시 본인의 임지가 속한 형주로 와서 형식상 직속 상관인 관우와 대면했을 공산은 크다. 거기에 유비는 익양대치 때 형주에 군을 이끌고 온 적이 있었고 마초 역시 여기에 종군했을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유비, 관우, 마초가 어떤 방식으로든 함께 만났을 가능성은 높고 잠시나마 모두 같이 형주에 머물렀을 확률 역시 높지만, 파서태수로서 조조가 공격한 한중의 움직임을 감시하고 방어해야 하는 장비가 형주에 왔을 가능성은 그다지 높지 않다. 사실 관계가 좀 틀렸다고 해도 이 기록은 많은 걸 시사한다. 유비, 관우, 장비의 성격적인 묘사, 유비의 포용력 있는 이미지, 마초는 충분히 유비의 자를 부를 만한 강력한 명망을 지닌 제후급 객장으로 여겨졌다는 것. 그리고 위기를 알아채고 주공을 존중하는 마초의 성격 등을 보여주는 셈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마초가 객장이나 유비에게 완전히 복속되었다'''고 외부에서 보고 있었다는 증거가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