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마초 (문단 편집) ==== [[한중 공방전]] ==== 218년, 유비가 제장들을 이끌고 한중으로 진군했다.[* 삼국지 촉서 선주전] 유비는 장비와 마초 등을 파견하여 저(沮) 길로부터 나와 하변을 취하도록 하였으므로, 저, 뇌정 등 일곱 부족 1만여 부락이 모반하여 유비에게 호응했다.[* 삼국지 위서 양부전] 유비가 [[장비]], 마초, [[오란(삼국지)|오란]] 등을 보내 하변에 주둔하게 하니, 조홍을 보내 이에 맞서게 했다.[* 삼국지 위서 무제기] 유비는 장수 [[오란(삼국지)|오란]]을 보내 하변에 주둔하게 했다. 유비가 장비를 보내 고산에 주둔케 하여 군의 배후를 끊으려 했다. 의논하던 많은 사람들이 이를 의심하자 [[조휴]]가 말했다. >적이 실제로 길을 끊고자 하면 응당 복병으로 몰래 행군해야 하는데, 지금은 오히려 먼저 성세를 과장하니 이는 실제로는 그들이 이를 실행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마땅히 적군이 아직 집결하지 못했을 때 급히 오란을 공격해야 할 것이고 오란이 격파되면 장비는 달아날 것입니다. 조홍이 이를 좇아 진병했고, 오란을 공격해 대파하니 과연 장비는 달아났다.[* 삼국지 위서 조휴전] 3월, 장비, 마초는 한중으로 달아났고, 음평의 저족 [[강단]]이 [[오란(삼국지)|오란]]을 참수해 그 수급을 보내왔다.[* 삼국지 위서 무제기] 이후 마초의 기록은 보이지 않는데 한중으로 후퇴했다는 무제기의 기록도 그러하거니와 정황상 유비가 전군을 한중으로 이끌고 들어가서 싸웠으므로 마초도 이동하여 싸웠을 것으로 보인다. 한중 공방전의 승리 이후, 유비가 한중왕이 되고 유비가 마초를 좌장군, 가절로 임명했다. 마초 본인의 명성도 있었겠지만 그만큼 들어가서 공을 세운 것도 있었을 것이다. 조조와의 전면전이 예상되는 싸움에 조조에 대한 복수심이 강하고, 싸워본 경험도 있는 마초급의 지휘관을 유비가 무슨 여유가 있다고 놀게 놔뒀겠는가.[* 그럼 왜 기록이 없는가 의문을 던지는 경우가 있을 텐데 촉이 멸망하고 강유가 종회와 손을 잡아 난을 일으켰을 때 영향으로 촉의 기록 대다수를 유실했으니 마초가 종군했을 때 기록도 상당수 유실됐거나, 따로 일군을 지휘하여 싸운 것이 아니라 본대에서 유비에게 직접 지시를 받는 휘하 장수 중 한명으로 참전했을 것이다.] 이렇게 유비가 한중왕이 되어 [[황충]]을 후장군으로 임명하려 하니 제갈량이 유비를 설득하며 말했다. >황충의 명망은 본래 관우, 마초와 동등하지 않았는데 이제 곧바로 동렬에 두려 하십니다. 마초, 장비는 가까이에서 그의 공을 직접 보았으므로 그 뜻을 이해할 수 있으나 관우는 멀리서 이를 들으면 필시 달가워하지 않을 것이니 이는 불가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유비가 말했다. >내가 직접 이해시키겠소. 그리고는 마침내 관우 등과 더불어 나란한 지위에 두고 관내후의 작위를 내렸다.[* 삼국지 촉서 황충전, 이를 통해 마초가 유비군 내에서 관우만은 못해도 장비나 황충보다는 높은 대우를 받았던 것을 짐작할 수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