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마초 (문단 편집) === 초기 생애 === 마초의 할아버지는 천수 난간현의 현위 출신으로, 그는 낙향한 후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고 강족 여인과 결혼해 [[마등]]을 낳았다. 마등은 [[후한]]의 [[명장]]이자 개국공신 [[마원(후한)|마원]]의 후손이다. 마원의 조상은 [[조(전국시대)|조나라]] 명장 [[조사(전국시대)|조사]]였다. 본래 조씨 성을 가졌지만, 조사가 마복군이란 호를 받은 후 성을 고쳐 마씨라고 칭했다. 마등이 어릴 때는 집안이 가난했는데 [[영제#s-7|영제]] 말 양주에서 일어난 반란을 진압할 때 자원해 공을 세웠으나 영제(168년 ~ 189년) 말, [[변장(삼국지)|변장]], [[한수(삼국지)|한수]] 등과 함께 양주에서 군사를 일으켰다. 192년, 한수, 마등이 무리를 이끌고 장안으로 나아가니 한나라 조정에서는 한수를 진서장군으로 삼아 금성으로 되돌려 보내고 마등을 정서장군으로 삼아 사례 부풍군 미현으로 보내 주둔하게 했는데 마초는 뒤에 남아 본거지를 지켰다. 이후 차근차근 성장해 양주의 유력한 군벌로 자리잡았다. 이런 배경 때문에 마초는 자연스래 [[강족]]과 [[저족]] 등 서북지역의 이민족들과 가까워졌고, 이로써 그는 그들의 지지를 얻을 수 있었다. 애초에, 한수와 마등이 관중에서 난을 일으켜 자주 [[유장(삼국지)|유장]]의 아버지 [[유언(삼국지)|유언]]과 교류하여 믿었다. 그 뒤 마등이 장안을 습격했으나 패주하고 양주로 되돌아갔다. 이때 마등은 [[이각]]과 [[곽사]]에게 식량을 요청했다가 거절당하자 다시 반란을 일으켰으나 패배, 장안에서 마등과 호응하려던 세력들이 모두 숙청당했다.[* 삼국지 촉서 [[허정]]전 주석 익주기구전] 마등은 진서장군 한수와 결탁해 의형제가 되었는데, 처음에는 서로 매우 친했으나 뒤에 부곡(部曲)이 서로 침입하게 되자 원수 사이가 되었다. 마등이 한수를 공격하자 한수가 달아났는데 무리를 합쳐 돌아와 마등을 공격해 마등의 처자식을 죽였고 싸움이 연이어 풀리지 않았다.[* 배송지 주 전략] 또 건안(196년 ~ 220년) 초, 국가의 기강이 위태롭고 느슨해지니 사례교위 [[종요]], 양주목 [[위단]]을 시켜 그들을 화해하게 했다. 단 이 싸움이 끝난 뒤에도 마등은 한수를 비롯한 관중의 군벌들과 산발적으로 계속 대립했고 관중 군벌들은 이합집산을 거듭했다. 196년 마등과 한수가 반목하여 싸웠고 마등의 처자식이 한수에게 살해당하였다. 마등의 아들 마초 또한 건장하다고 칭해졌다. [[염행]]은 일찍이 마초를 찔렀는데, [[모(무기)|모]]가 부러지자, 부러진 모로 마초의 목을 쳐서 거의 죽임에 이르렀다.[* 삼국지 위서 [[장기(삼국지)|장기]]전 주석 위략]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