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마초 (문단 편집) === 중기 생애 === 조조는 형주를 징벌하려고 했지만, 마등 등이 관중에서 할거하고 있었으므로 또 [[장기(삼국지)|장기]]를 보내 마등 등을 설득하여 부하들을 해산시키고 조정에 돌아오도록 하자 마등은 이것을 허락하였지만 여전히 다시 미적미적 하고 이전과 같은 행동을 하였으므로 장기는 그가 변란을 일으킬것을 두려워해서 여러 현에 문서를 보내 식량 등을 비축하도록 준비하도록 하고, 군수에게 교외까지 나가 맞이하도록 했다. 2천석 관리가 교외까지 마중을 나가니 마등은 어쩔수 없이 동쪽으로 출발했다.[* 삼국지 위서 장기전, 자치통감] 그 뒤 조조가 표문을 올려 마등을 위위로 임명하고, 마초를 편장군으로 삼고 도정후에 봉해 마등의 부곡(部曲)을 거느리게 했다. 마등이 받은 위위라는 직책은 삼공 바로 아래로 매우 높은 직책이다. 그러나 마초가 받은 편장군 벼슬은 명예직에 불과하다. 마등이 입조하게 되자 마초를 편장군으로 임명해 마등의 진영을 거느리게 했다. 또 마초의 동생 [[마휴]]를 봉거도위, 마휴의 동생 [[마철]]을 기도위로 삼고 그 가속들을 모두 업으로 이주시키니 오직 마초만이 홀로 남게 되었다.[* 배송지 주 전략] 그러나 이것은 마등의 실수라고 밖에 할 수 없다. 마등은 업에 이주함으로서 조조 체제에 순응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양주에 남겨둔 자신의 기반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이는데 어차피 조조가 언젠가는 이 지역을 차지하려 들테고 관중제장들이 이에 반발할 것은 필연적이었으며 관중제장 중 하나인 마초도 어쩔수 없이 주변 제장들에게 공격받지 않으려면 조조와 싸우지 않을수가 없게 된다. 즉 마초만 양주에 남겨둔 건 사실상 마초를 조조와 싸우도록 놔둔 셈이 되어 마초의 인생이 꼬이는 계기를 제공했으며 본인 일족의 명을 재촉한 셈이 되었다. 업에 이주할거면 깔끔하게 양주의 본거지를 포기하고 확실히 장남 마초까지 이주를 시켜서 장로처럼 한 자리를 얻게하거나 아니면 걍 계속 양주에 있는것이 차라리 나았다. 유장의 경우 마등의 아들 마초에 이르러서는, 관계를 되돌리고 서로 소식을 주고받으며 유장은 촉의 의(意)를 이으려는 뜻이 있었다. [[왕상#s-3|왕상]]이 유장에게 고하여 말했다. >마초는 날래지만 어질지 못하여 얻는 것에 의로운 것을 보지 않으니, 만약에 이와 같이 그(마초)를 끌어들여 가까이 하시면 말미암아 호랑이를 길러 장차 스스로 근심을 남길 뿐입니다. 유장은 그 말을 따라 이에 길을 끊어 마초와 교류하지 않았다.[* 삼국지 촉서 허정전 주석 익주기구전] 한편 주유는 적벽대전에서 조조의 후방 불안 요소로 마초와 한수를 언급했으며, 죽기 직전에 언급한 자신의 대전략인 [[천하이분지계]]에서 유비의 야심을 경계한 주유는 주된 동맹의 상대로 유비가 아닌 관서의 마초를 지목했다.[* 삼국지 오서 주유전] 그만큼 이미 관서의 마초는 당대의 관서군벌의 대표적인 제후로 여겨졌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