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마초 (문단 편집) ==== [[장로(삼국지)|장로]] 휘하 ==== 마초는 다시 농상에서 패했다. 그 뒤 한중으로 달아났는데, 장로는 본래 마초의 용맹과 명성에 반해 마초를 도강좨주로 삼고 자신의 딸 [[장기영(삼국지)|장기영]][* 나중에 조조의 아들인 [[조우#s-4|조우]]와 결혼한다.]과 결혼시켜 그를 자신의 사위로 삼으려 했지만, 어떤이가 말하길 >이처럼 자신의 어버이를 사랑하지 않는 이가 어찌 남을 사랑하겠습니까? 라며 마초의 반란에 의해 그의 가족들이 희생당했음을 상기시키며 만류했다. 과연 듣고 보니 뭔가 껄끄러워지는 데가 있었는지 장로는 혼약을 없던 일로 했다. 이 시점에서 이미 장로는 마초를 믿기 어려운 인물이라고 인식했는지도 모른다.[* 배송지 주 전략의 기록] 그러나 저러나 마초의 생활은 불우했다. 당초 마초가 반란을 일으키기 전 그의 첩의 동생인 동충이 삼보(三輔)에 머물렀는데 마초가 패하게 되자 동충이 먼저 한중으로 들어왔었다. 정월 초하루 아침, 동충이 마초에게 장수를 바라는 뜻으로 술잔을 올리자 마초가 가슴을 치고 피를 토하며 통곡하여 말했다. >온 가문의 근친 일족이 하루아침에 함께 죽었는데 지금 두 사람이 서로 축하한단 말인가?[* 배송지 주 전략의 기록] 그 뒤 수차례 장로에게 군사를 청해 북쪽으로 양주를 탈취하려 하니 장로가 보내 주었으나 이로움이 없었다. 위에도 나왔지만 그를 바라보는 한중 사람들의 시선이 그리 고운 것도 아니었다. 특히 장로의 부장 양백(楊白)은 마초의 재능과 명성을 시기하여 공공연히 그에게 거부감을 표했는데, 결국 장로의 부하들이 모조리 한통속이 되어 자신을 몰아내려 한다는 생각이 든 마초는 여기에서조차 달아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로써 그는 다시 한 번 가족들과 헤어졌고 심복인 [[방덕]]과도 이별하게 되었다. 마초의 첩 [[동씨]]와 아들 [[마추]]는 한중에 남아있다가 훗날 조조가 한중을 차지하고 나자 불행한 최후를 맞게 된다. 마초는 마침내 무도를 따라 달아나 [[저족]] 중으로 들어갔다. 어쨌건 자신에게 호의를 품고 있는 저족의 부락으로 간 마초는 막막한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는데[* 마초는 모든 걸 잃은 시점에서도 유독 이민족들에 대한 영향력은 여전히 강력했다. 한수에게 붙었다 하후연에게 깨진 저족의 [[천만]]도 이 시기 마초에게 도망오기도 하고.], 홀연 익주에서 그를 찾아온 사람이 있었다. 유비가 익주를 평정하면서 새로 얻은 참모 [[이회]](李恢)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