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마크리누스 (문단 편집) === 출신과 제위 전까지의 생애 === 164년에 마우레타니아 해안의 항구 도시 [[카이사레아]][* 현 [[셰르셸]]]에서 마르쿠스 오펠리우스 마크리누스라는 이름으로 태어났다. 마크리누스는 대개의 [[베르베르]] 혈통 무어인답게 귀 한쪽에 [[귀걸이]]를 뚫었던 것으로 유명했다. 당대 [[디오 카시우스]]로 대표되는 고대 역사가들은 마크리누스가 비천한 태생의 마우레타니아 현지 로마인이라고 말하지만, 그는 고대의 역사가들이 제시하듯이 그렇게 비천한 집안 출신은 아니었을 가능성이 높다. 오히려 근현대 이후 학자들은 마크리누스가 즉위 당시 원로원 의석도 가지지 않은 마우레타니아 태생의 로마인이었던 만큼, 그 누구보다 귀족적이었던 세습 원로원 의원 디오의 눈에는 매우 비천했다고 까일 수 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마크리누스의 부모는 노동 빈민이 아니라 중산층에 속하는 에퀴테스[* 고대 로마의 기사 계급.]였고, 마크리누스는 어린 시절부터 수년간 변호사 수업을 받아 능력있는 변호사로 이름을 일찍이 날렸다. 하지만 그가 처음 출세의 기회를 잡은 것은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아래에서 근위대장을 지낸 막강한 [[가이우스 풀비우스 플라우티아누스]]의 재산 관리인이 되었을 때였다. 플라우티아누스 밑에서 당시 로마 지도층과 인연을 맺게 되어,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황제 아래에서 행정관료 자리를 임명받아 출세를 시작했다. 그런데 마크리누스를 신뢰해 그를 이끌어준 이는 아이러니하게도, 플라우티아누스와 [[견원지간]]이었던 공동황제 [[카라칼라]]였다. 따라서 마크리누스는 카라칼라의 신임 아래 승승장구를 계속했고, 212년에는 근위대장에 임명돼 동부에서 군사원정과 여행을 병행하던 카라칼라를 직접 모셨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