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만주 (문단 편집) === [[일본인]] === 일본 열도의 지배적 민족. 일본은 19세기부터 러시아의 남하에 맞서 사할린 및 만주 지역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태양신의 후예를 자처하며 단 한번도 외세의 지배를 받지 않았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가졌던 일본인들은 [[미국]]과 [[영국]], [[프랑스]]가 대포 몇 방으로 손쉽게 막부와 각 번들을 굴복시키는 모습을 보곤 역사상 처음으로 외세에 대한 안보 위협을 절실히 깨닫게 된다. 특히 영토를 맞대고 슬금슬금 남하하는 [[러시아 제국]]이 가장 큰 공포의 대상이었다. 그러자 일본은 제국의 방위를 위해 만주, 적어도 한반도만큼은 일본으로 편입하고자 했다. 이러한 안보적 불안감은 일본 제국주의의 시발점이 되어, 여타 식민제국들과 달리 경제적인 발전이 뒷받침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한반도, 만주, 시베리아를 잇달아 침략하는 정신적인 동력원으로 작용했다. 이때 처음으로 시작된 것이 그 유명한 [[야마가타 아리토모]]의 주권선-이익선 개념이었고, 그 대상은 한반도와 오키나와, 대만, 사할린, 그리고 남만주였다. '만주'라는 지역을 최초로 규정지은 것도 일본인들이었다. 당시 떠오르던 비교언어학적 언어연구들은 각 민족의 뿌리를 밝히는 중요한 방식으로 각광받았으나 이는 곧 제국주의 침략에 이용되고는 했다. 예를 들어, [[영국]]은 인도인들이 자신들과 같은 뿌리를 가진 [[인도유럽어족]]이라는 사실을 밝혀냈지만, 가장 발전되고 고대 아리아인의 순수성을 가장 잘 보존한 자신들이 뒤처진 친척인 인도를 계몽, 발전시켜주어야 한다는 논리로 인도 식민지배를 정당화했다. 일본 동양사학자들은 이러한 영국의 방식을 그대로 받아들여 조선과 만주에 적용했고, 독립된 지역으로써의 의미가 부족하던 동북 지역을 일본의 영향권으로 편입하기 위해 만선사관을 도입했다. 이로 인해 새로 규정된 '만주' 지역은 중국 및 유럽과 분리된 [[우랄알타이어족]]의 고유 영역이었으며, 알타이어족의 맹주이자 중국과 유럽의 장점을 모두 흡수한 선도문명인 일본이 이끌어 계몽하고 개발해야 하는 지역으로 선포됐다. [[내선일체]], [[오족협화]], [[만주국]] 등이 이러한 논리의 산물이었다. 그리고 2차 세계대전에 이르면 서남태평양 일대에도 이러한 시각이 확장되어 [[남양]]은 서구가 아니라 새로운 선도문명 일본이 주도하는 [[대동아공영권]]의 영역으로 선포됐다. 물론 이러한 허울 좋은 간판을 걸어놓은 만주 지배의 실상은 여느 식민제국들이 그렇듯 한국인 및 퉁구스계 민족들의 독립된 권리를 전부 부정하고 일본 제국의 독점적인 발전에 강제로 동원하는 것이었다. 일본 제국령 만주와 조선에서 '형제' 민족들의 권리는 없었고, 큰형님 일본이 모든 것을 결정하며 그것은 항상 옳았다. 여하튼, 이러한 서구 세력에 대한 안보적 불안감에서 시작한 일본의 제국주의적 확장은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그리고 [[경술국치|대한제국 강제 합병]]으로 한반도와 남만주 및 남사할린에 영향력을 구축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한편 1920년대에는 러시아의 혼란을 틈타 [[일본의 시베리아 침공|시베리아로 출병]]하여 백군을 후원하며 러시아령 외만주를 일시적으로 점령했으나, 명분과 역량 부족 및 소비에트 러시아의 반격으로 인해 철수했다. 그러나 1930년대 [[만주사변]]을 일으키며 내만주 [[봉천군벌]]의 근거지를 전부 흡수하곤 식민지인 [[만주국]]을 수립하면서 본격적으로 정착했다. 이 당시에는 만주 일대에 가장 강력한 정치적, 군사적, 경제적 영향력을 구축했으며, 만주를 중원 진출을 위한 전진 기지로 삼아 대대적인 산업화를 추진했다. 이 시절 일본인들이 건설한 대규모의 산업시설은 동아시아 최대 규모였고, 훗날 중화인민공화국 시절에도 [[덩샤오핑]]의 개혁개방으로 동남 연해가 개발되기 전까지 가장 중요한 산업지대였다. 가령 1930년대 후반 일제가 [[안산시(중국)|안산시]]의 철광맥 및 [[푸순시]]의 탄광을 바탕으로 건립한 '쇼와 제철소(昭和製鋼所)'는 당대 세계에서 손에 꼽히는 규모의 [[제철소]]였다. [[만철]]에서 1910년대에 세운 안산제철소를[* 현 중국 영토 내에 세워진 최초의 제철시설이었다.] 기반으로 독일 [[크루프]]의 기술지원을 받아 본격적인 거대 일관제철소로 재탄생시킨 것인데, 세계대전 당시 일본의 가장 중요한 제철소 중 하나이기도 했다. 일본 패망 이후에는 중국에 소유권이 넘어가 오늘날까지도 [[중앙 관리 기업(중국)|중국 정부 소유의]] '안산강철집단(안강)'으로 남아 있다. 현재도 세계 7위의 거대한 규모를 자랑한다. 하지만 1945년 8월 소련의 만주 전략 공세 작전으로 인해 만주국과 북한 지역의 일본 세력은 일주일만에 축출되어 버렸다. 그리고 곧 일본이 일본 제국이 항복하면서, 만주와 한반도, 중원의 일본인들은 본국으로 탈출해야만 했다. 이들을 [[히키아게샤]]라 한다. 한편 관동군의 군인들은 소련군에 잡혀 [[굴라그|시베리아 강제 수용소]]에서 10년간 노역에 시달리고 나서야 본국 땅을 밟을 수 있었고, 일부는 중국 국민당과 공산당 간 내전에 자의반 타의반 가담하기도 했다. 그리고 일본이 남긴 군사, 산업 인프라를 장악하기 위해 공산당과 국민당의 만주를 향한 경주가 펼쳐지면서 [[국공내전|2차 국공내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한때 만주의 패권을 잡았던 이들 일본인들은 현재는 만주에 거의 남아있지 않다. 극히 일부 남은 이들도 출신을 숨기고 살아가거나 동화된 상태이다. 민족 종교는 [[대승불교]]와 [[신토]], 그 중에서도 일본 제국 시절에는 [[국가신토]]였으며 민족 언어는 [[일본어족]]의 [[일본어]]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