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이동문서 삭제토론 만주 (문단 편집) === 정치적 측면에서의 분석 === 1931년 [[만주사변|선양 사변]]을 일으키고 이듬해 [[만주국]]을 건국한 [[이시와라 간지]] 등 기획자들은 만주와 몽골(만몽)을 중국과 인종적, 종족적 계통이 전혀 다르다고 주장하는 동양사학자들의 영향을 받았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 때문에 국제 학계에서는 지명으로서의 만주는 논란이 되고 있다.[* Norman Smith(2012), 《Intoxicating Manchuria: Alcohol, Opium, and Culture in China's Northeast》, p. 219.] 빌 시웰(Bill Sewell)은 만주가 유럽인들에 의해 사용된 외래지명임을 지적하며, "진정한 지리적 용어가 아니다"라고 했으며,[* David W. Edgington(2003), 《Japan at the Millennium: Joining Past and Future》 p. 114.] 개번 맥코맥(Gavan McCormack)은 만주가 근대적인 창조물에 불과하다는 문제인식에 동의하며, 만주라는 용어는 일본이 중국과의 분리를 촉진하기 위해 장려한, 본질적으로 [[제국주의]]적인 명칭이라고 비판했다.[* Gavan McCormack(1977), 《Chang Tso-lin in Northeast China, 1911-1928》, p. 4.] 만주국사 연구자 마리코 아사노 다마노이(Mariko Asano Tamanoi)는 만주를 거론할 때 따옴표로 그 용어를 써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Mariko Asano Tamanoi(2000), "Knowledge, Power, and Racial Classification: The "Japanese" in "Manchuria" ", 《The Journal of Asian Studies》 Vol. 59, No. 2, p. 249.] 여진사 연구자 채드 D. 가르시아(Chad D. Garcia)는 만주라는 용어의 사용이 "작금의 학구적 실천(current scholarly practice)"에서 적절하지 않다고 주장하며, 만주를 대체하여 특정 지리적 특성이나 '북동부(the northeast)'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Chad D. Garcia(2012), "Horsemen from the Edge of Empire: The Rise of the Jurchen Coalition", [[워싱턴 대학교]] 박사학위논문, p. 15.] 중국 측은 이곳을 "둥베이 (东北, 東北)" 또는 한국어 발음으로 "동북"이라고 부르는데, 이 명칭은 청나라 시기에 만들어진 명칭이다. 명나라 시기에는 이곳은 [[산해관]] 바깥쪽이라고 해서 관외, 내몽고와 구별해서 관동지역이라고 불렸다. 이곳은 청나라의 발원지였기 때문에 봉금지역으로 묶어서 한족의 출입을 금했으며, 만주족들이 대거 관내지역으로 이동한 후 남아 있던 만주족만 거주하는 등, 인구가 희박한 지역이었기 때문에, 행정 기관도 설치되지 않았다. 그래서 청나라는 입관후에도 이 명칭을 계속 썼지만, 19세기 들어 러시아가 이지역을 탐내면서 이곳의 인구를 늘리기 위해 봉금령을 풀었고, 이때부터 한족들이 이 공백지에 대거 밀려들었다. 이 현상을 [[틈관동]] (闖關東)이라고 하며, 이 때 이곳을 지칭하는 명칭으로 "관동"이 쓰였음을 알 수 있다. 청나라는 이곳에 인구가 늘어나자, 멸망 직전인 1907년 이곳을 [[헤이룽장성]], [[랴오닝성|봉천성]][* "봉천성"이라는 명칭은 중화민국때도 쓰이다가, 만주국이 [[심양]]의 이름을 봉천이라고 바꾸고 수도로 삼으면서, 금기시 됐고, 랴오닝(요녕)성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지린성]] 3성으로 개편하면서 '''동북3성'''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즉, 동북이라는 말의 유래는 만주족이 다스리던 청나라 자신이 쓰던 말이다. 일본이 [[만주사변]] 이후 [[괴뢰국]] [[만주국]]을 세운 이래 일본은 이곳을 "만주"라고 칭했기 때문에, [[중국]]은 1930년대 이래로 이 지역을 '만주'[* 다만 이는 심지어 만주족들에게도 만주가 본래 지역명이 아니었던 탓도 있다. 만주는 본래 지명보다 종족명으로서 먼저 쓰인 명칭이다.]라고 부르는 걸 굉장히 꺼린다. 그렇다고 본래 지명이 아니라 종족명이었던 '만주'라고 부르자니, 그곳이 만주족만 사는 지역이 아니기에 다소 어색하다는 반론도 무시하기는 어렵다. 비슷한 사례로는 자바이칼 지방을 다우르족들도 살았던 이유로 '다우리아(dauria)'라고 부르고, 시베리아 중북부 에벤키족 등 퉁구스 제족들이 사는 곳들을 '퉁구스카(tunguska)'라고 부르지만 자바이칼에는 다우르족만 살았던 곳은 아니었고, 퉁구스카 역시 퉁구스인들만 사는 지역은 아니다. 그래서 중국이 만주라는 명칭을 꺼리고 이곳을 '둥베이'라 부르는 것에 어떤 정치적 의도가 있든 간에, 국제적으로 외래지명의 사용을 최소화할 것이 권장되고 있다는 점에서, 만주라는 명칭이 부적절하다는 주장은 주목할 만 하다고 볼 수 있다. 이성시(李成市)는 중국과 전후 일본에서 기피된 만주라는 지명이 한국에서는 구애 받고 있지 않는 것은 고찰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하면서, 10세기 이후 한반도 북부나 압록강 이북의 주민에 대한 멸시와 무관심과 어떠한 연관성이 있는지 연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성시(2004), "동북아시아 변경의 역사 - 발해사의 배타적 점유를 둘러싸고", 《근대의 국경 역사의 변경 : 변경에 서서 역사를 바라보다》, p. 144.]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