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만주국 (문단 편집) == 학술적 연구의 대상으로서 == 학술적 연구의 대상으로서 만주국은 1930년대부터 1940년대까지의 동북 아시아 지역의 국제 정세를 파악할 수 있는 유용한 지점이다. 하지만 국내에서 접근할 수 있는 사료의 최대 범위는 인터넷에서 검색 가능한 자료의 범위와 동일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사료가 부족하다. 문헌 자료를 보아도, 정보의 양이 상당히 적고 그 정보라는 것도 굉장히 단편적이어서 깊이 있는 연구의 대상이 되기 어렵다. 이는 만주국의 패망과 해체 과정과 관련이 있다. 소련군은 만주국에 진입하면서, 만주국의 국가기관들을 적성 세력으로 규정하고, 그 종사자들을 모두 포로로 잡아들였다. 이는 교육기관도 마찬가지여서 만주국의 국공립 교육기관의 교직원은 물론, 상당수의 학생들까지도 포로로 잡아가고 말았다. 이 과정에서 만주국과 관련된 여러 자료들이 방치되고, 망실되었다. 또한, 중국의 국민당과 공산당 역시 만주국을 자국의 역사에서 '최대의 수치'로 규정하고, 만주국과 관련된 것이면 무엇이든 지워버리는 작업에 들어갔다. 국민당 정부 때는 만주국의 국가기관이나 학교들을 타 지역으로 강제 이전하거나 통폐합하면서 만주국 지우기[* 예를 들어, 법원으로 쓰던 건물을 병원으로 쓰고, 은행으로 쓰던 건물은 극장으로 개수하는 등의 작업이 이뤄졌다. 각 지역의 대학들도 타 지역으로 강제 이전되거나 다른 대학과 통폐합시키는 등의 작업이 이뤄졌다.]를 시도했고, 공산당 정부 이후 [[문화대혁명]] 시기 때는 만주국에 부역했거나, 만주국의 국공립 대학을 졸업한 이들을 탄압했다. 또한, 만주국과 관련된 사료는 싸그리 모아 폐기처분하고 말았다. 그래서 정작 만주국이 존재했던 중국에는 관련 사료가 거의 없다. 만주국을 실질적으로 통치했던 일본 본토에는 만주국과 관련된 사료가 풍부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일본 내에서 역사가 오래된 대학, 도서관, 박물관들은 만주국 관련 사료를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 사학계에서도 만주국은 '금기' 사항이나 다름 없어서 2020년대까지도 초보적인 사료 조사는 커녕 자료 리스트도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나마 국공립 기관에서는 관련 자료 리스트를 제공하는데, 온라인으로 검색할 수 있는 경우는 거의 없고 해당 기관에 방문해야 확인이 가능하다. 특히, 일본 국회도서관의 경우엔 만주국에서 발행된 신문 일체가 소장돼 있는데, 원본은 열람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고 마이크로 필름 형태로 열람할 수 있는데 사진 촬영을 하는 것도 별도 허가가 필요하다. 이러한 것과 관련된 가장 대표적인 사항이 [[박정희/일생/진위 논란|박정희 혈서 논란]]인데, 사료 접근의 어려움으로 거의 50년 동안 소문과 타인의 회고록으로만 전해지다가, 2009년 11월에서야 일본 국회도서관에서 관련 사료(당시 신문 기사)가 확인되었다. 신문 리스트도 날짜 일별만 되어 있기 때문에 특정 시기의 모든 신문들 다 뒤져서 겨우 찾은 것이라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