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만주사변 (문단 편집) === [[만보산 사건]]과 [[나카무라 사건]] === 그 와중에 [[이시와라 간지]]는 만주에 대한 떡밥을 뿌리기 위해 수면 밑에서 열심히 움직였다. 이 과정에서 발생한 사건들이 바로 1931년 6월의 [[나카무라 사건]]과 7월의 [[만보산 사건]]이었는데, 이시와라는 각각의 사건을 통해 만주 침공 명분 축적과 조중의 관계 악화를 유도했다. 하지만 의외로 장쉐량은 화북 확보에 중점을 두느라 본진인 만주에서 일본군이 벌이는 획책을 무시하고 일본의 모든 요구에 승낙했다. 동북정무위원회 주석 겸 동북변방군 사령관 [[장쭤샹]]과 난징 정부의 외교부장인 [[구웨이쥔]]이 군대를 물려 만주를 지켜야 한다는 조언과 경고를 모두 묵살하고 일본의 어떤 트집에도 침략 구실을 제공하지 말란 명령을 내린 것이다. 장쉐량이 이렇게 나오자 와카쓰키 내각도 외무부도 일본이 만주에 출병할 이유는 없다고 판단했으나, 문제는 '''관동군의 생각이 달랐다는 것이다.''' 이시와라 간지는 참모장 이타가키 세이시로와 결탁하여 유약한 본국 정부의 대처를 무시하고 독자적으로 만주를 장악하자는 계략을 꾸미게 된다. 만약 정부가 이를 끝까지 막을 시에는 '''쿠데타도 불사할 계획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