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만화방 (문단 편집) === 1950년대: 초창기 === 사실 만화방은 처음부터 위에서 말하는 바와 같은 형태가 아니었다. 손상익 선생은 1950년대의 초기형 만화방에 대해 두 가지 가설을 설명하였는데, 전자는 서울의 시장판 등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길 한복판에 좌판을 차려 만화책을 읽게 했다는 설과, 후자로는 문구점 또는 완구점에서 매상을 올리기 위해 아이들에게 싼값을 받아 만화책을 읽게 했다는 설이다. 노점식 만화대여에 대한 주장으로는 초창기 국내 만화방 확산기에 유통을 담당했던 이국전 씨의 증언이 있는데, 이씨는 6.25 전쟁 때 북한군으로 참전했다가 반공포로로 석방되어 서울 아현동에 헌책방을 차려 정착한 바 있었다. 그는 1957년에 만화 전문 출판사 '독수리문고' 설립에 참여하여 한국만화 총판의 초창기를 개척한 바 있었다. 증언은 아래와 같다. >1955~6년을 전후한 시기에 시장통 등에서 만화책을 좌판에 놓고 오가는 사람들에게 싼 값을 받고 만화책을 읽게 하는 곳이 있었다, 당시 가장 유명했던 곳은 서울 남대문시장의 현재 지하도 입구 부근 쯤에서 한 중년 여인이 벌였던 만화책 대여 좌판이었다. 이 좌판 부근에는 늘 어린이, 청소년들이 옹기종기 쪼그리고 앉아 만화책을 보기에 여념이 없었다. 이때 만화책의 구입은 서울의 덕홍서점을 비롯한 대형 서점을 통해 이루어졌는데, 좌판 만화방 주인들은 도매값으로 만화책을 사갔다. 1957년 우리나라 최초의 만화책 총판이랄 수 있는 '서울총판'을 서울 아현동 경기공전 앞에 세웠다. > >이때 총판은 만화책을 리어카에 싣고 서울시내의 만화방을 찾아다니며 일일이 낱권을 파는 형태였다. 당시 서울시내 만화방은 약 2백개소 정도였으며, 남대문시장의 좌판 아주머니에게도 책을 팔았다. 일손이 모자랄 때면 사과장수하는 사람들을 오후에만 동원, 책을 팔기도 했다. 당시 오학운씨(1959년 부엉이문고 설립)도 만화책을 팔러 다녔다. 서울총판 시절 한 달에 약 7~8종의 만화가 새로 나왔다. 이때 만화방들은 만화책을 빌려주지는 않았고, 현장에서 보고 반환케 하는 방법으로 영업을 했다. > >만화책의 총판시스템은 자금회전이 빨랐고 이에 따라 만화시장이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1959년 이후에는 부산을 비롯한 대구 등 대도시에 만화총판이 생겨났다. 이 시기에 '어린이서점'이란 만화총판을 직접 설립, 운영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만화방은 만화총판이 본격적으로 생겨났던 1959년을 전후로 폭발적인 증가추세를 나타냈다. 이 때 인기 있었던 만화는 3~4천 부씩을 찍어냈는데 박기준의 <두통이 시리즈>, 김경언의 <칠성이 시리즈>, 신동우의 <날쌘돌이>, 이종진의 <철인 28호>등이 그것이다. 신광서점을 인수한 오학운씨가 설립한 부엉이문고가 처음 발간한 산호의 <라이파이>는 1960년대 초기까지 인기가 지속, 최대 판매부수를 기록했다. 그러나 한국의 초기 만화방 형태를 '문구점에서 만화책 판매와 동시에 실비로 현장구독케 한 영업행위'라고 간주하여 만화방의 역사를 해방 전후 시기부터 거슬러 올라간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1950년대를 대표한 만화가였던 박진우 전 만화진흥공동협의위원회(만진협) 회장의 증언도 이를 입증한다. 증언은 아래와 같다. >만화방이 생겨나기 전인 1947~8년경에도 <홍길동>이란 만화책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서점에서 본 걸로 생각되는데 4X6배판에 두꺼운 종이로 제책된 만화였다. 만화책을 현장에서 대여받아 읽게 하는 만화방의 형태는 1957~8년경에 본격적으로 생겨났으며, 당시 문방구점에는 일반 대중잡지, 만화잡지 등이 진열되어 있었다. > >그러나 언제부턴가 만화책들도 함께 진열되기 시작했다. 문방구의 손님들이 만화책을 사지는 않고 공짜로 슬쩍슬쩍 읽는 것을 보고 주인들은 '못 보게 말릴 것이 아니라 차라리 실비를 받고 현장에서 구독케 하자'는 생각을 해냈던 것 같다. 이때부터 문방구점들은 천장에 고무줄을 쳐 놓고 그 줄에 빨래를 널 듯 만화책을 걸쳐놓고 대여영업을 했다. 당시 만화책 한 권은 2~3백 환 정도였으나 빌려보는 데에는 30~1백 환을 받았다. 만화방이 생기기 전에도 잡지를 빌려주는 곳이 있었는데, 조직적인 유통망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서점에서 개별적으로 잡지를 구입해와 동네사람들에게 빌려주는 정도였다. 당대 기록이나 문헌상에는 나타나지 않지만, 당시의 정황을 참작해 보면 한국에서 초기 형태의 만화방이 출현한 시기는 1950년대 초~중반으로 볼 수 있다. 만화방 시대가 급속히 진전된 이유로는 당시 서점판매용 만화책이 서민가정에서 감당키 어려운 고가였던 것이 큰 원인으로 보인다. 이런 만화방의 폭발적 증가는 소위 만화총판이 전국적 배급망을 갖추는 것과 비례해 주택가 골목 구석구석까지 자리잡게 된다. 1960년대에는 한국 만화사에서 만화방 문화가 확산/정착된 연대로 기록된다. 또 손상익의 분석에 의하면, 초기 만화방의 숫자는 1958~9년 사이 전국에 걸쳐 약 1~2천여 개소가 영업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숫자는 당대 대형 만화전문 출판사가 한 번에 찍어낸 만화책이 보통 2천 권에서 인기만화의 경우 3~4천여 권을 낸 기록을 토대로 한 것이다. 이 만화책 역시 거의 총판을 통해 만화방으로 납품된 것이다. 또 전국의 만화방 중 절반 이상은 만화 출판사들이 몰려있던 서울에 영업한 것으로 보인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