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말갈 (문단 편집) === 고구려/발해 === [[고구려]]에서도 비중이 컸고 특히 [[발해]]에서는 인구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민족이었는데 고구려의 경우 [[북한산성 전투]]의 말갈인 지휘관 생해(生偕)처럼 기록에 남은 자도 있으나 그 외에도 역사상 기록된 여러 '고구려인'들 중 종족 출신이 명시되지 않은 인물들 중에서 일부는 말갈 계통이었을 가능성이 더러 있다. 이후에는 고구려의 전성기 때 남진과 더불어 함께 나타나는 기록이 있는데 이것은 만주에 살던 말갈족을 고구려가 징병해서 남진에 동원했을 가능성이 높다. 비슷하게 예인(동예)을 [[백제]]와의 [[독성산성 전투]]에 동원하기도 했다. 심지어 [[의자왕]] 때도 655년 고구려-백제-말갈 연합군이 신라 북쪽 국경 33개의 성을 빼앗았다는 기록이 있다. 심지어 아예 고구려화된 말갈인들은 자신들이 고구려 복원을 내세우며 고구려를 재건하기도 하였다. [[고왕|대조영]]의 출신에 대해 논쟁이 많은데, 사실 [[고왕|대조영]]이나 [[발해]] 문서를 보면 알 수 있듯 외국 학자들은 말갈계 고구려인으로 이해하는 경우도 꽤 있다. 예를 들면 대영제국이 인도를 식민지로 만들면서 영국으로 귀화하게 된 영국령 인도 출신의 인도계 영국인에 비유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대조영의 출신에 대해 정확한 이해로 볼 수는 없다. 대조영은 속말말갈 내부 부여계 예맥인일 개연성이 높기 때문.[* 한편 한국 사학계에서는 '말갈'을 현재의 퉁구스계에 한정된 용어가 아닌 중국이 한국을 비롯한 동쪽의 민족들을 멸시적으로 총칭한 용어로 이해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기록이 짧아 대조영의 정확한 출자를 알기는 어렵다.] 반면에 아무르강과 연해주 일대에 살던 [[흑수말갈]]을 비롯한 상당수 다른 말갈 부족들은 복속과 이탈을 꾸준히 반복한 것으로 보아 끝끝내 발해에 동화되지는 않은 듯하다. 즉, 말갈 부족들은 의식적으로 고구려인에 상당히 동화되었고 예맥인 비중도 꽤 높은 말갈 부족(속말부, 백산부)들과 생활방식이 많이 달라 동화되지 않은 말갈(흑수부, 철리부, 월희부 등) 부족들로 크게 나누어 볼 수 있었을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