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말레이시아/역사 (문단 편집) === [[해협 식민지]] === 네덜란드가 17세기에 말라카, 마나도, 암본 등지에서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세력권을 잠식하고 [[자바 섬|자바]]에도 거점 [[바타비아]]를 확보하자, 라이벌 해양 강국 영국도 뒤따라 도서부 동남아시아에 진입하려 했으나 17세기에는 네덜란드의 강력한 진입 방해로 식민지나 상관을 거의 확보하지 못했다. 영국인들은 일시적으로 진입에 성공하여 상관을 설치한 여러 지역에서도 네덜란드의 간섭으로 손을 털고 나와야 했고, 그나마 [[영국 동인도 회사]]가 18세기 말까지 네덜란드를 피해 안정적으로 획득한 곳은 경제적·지리적으로 비교적 매력이 떨어지는 [[수마트라 섬|수마트라]] 서남부의 [[븡쿨루]](British Bencoolen, 1685–1824) 정도였다. 그러나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의 식민 제국은 18세기 중반부터 [[인도양]]에서 세력이 정체되었고, 영국 동인도 회사는 반대로 [[인도]] 여러 지역에서 식민지 획득에 성공하였다. 이에 따라 인도를 교두보로 삼은 영국 세력은 동남아시아를 [[중국]]과의 무역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중계지로 고려하게 되었다. 최초로 말레이시아 지역에서 영국령이 된 것은 [[페낭]]이었다. 1786년에 프랜시스 라이트 장군은 크다 술탄에게 페낭에 영국군 주둔을 허용받아 실질적으로 지배하게 되었다. 1786년 대신 크다와 라이트는 크다가 침공받으면 [[영국 동인도 회사]]가 크다 측에 군사 원조를 제공한다는 조약을 체결했는데, 마침 남하한 시암 세력이 파타니를 점령하고 크다를 위협하자 크다는 영국 동인도 회사에 약속한 군사 원조를 요청했으나 동인도 회사는 거부하였다. 거부 사유는 군사 원조는 크다와 프랜시스 라이트 간의 약속이지 크다와 동인도 회사 간의 약속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크다 술탄은 어처구니없는 협잡에 당한 것을 알고 시악, 리아우, 슬랑오르 등의 도움을 받아 페낭에서 영국인들을 축출할 해군 함대를 준비하였으나, 1791년 영국 동인도 회사가 크다를 선제 공격하여 술탄을 굴복시키고 화평 조약으로 페낭을 공식적으로 합병하였다. 18세기가 저물어갈 무렵 [[나폴레옹 전쟁]]이 일어나자 [[영국]]의 동남아시아 진출은 급진전했다. 네덜란드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공격을 받아 정복당하고, 왕은 영국으로 망명해 [[큐 서한]](Kew letters)으로 아시아 지역에서의 네덜란드 식민지 지배권을 모두 영국에 위임했다(1795). 이에 따라 [[네덜란드령 인도]], 네덜란드령 수마트라, 네덜란드령 말라카, 암본은 영국령이 되었다. [[자바 섬|자바]] 등 일부 지역에서는 한동안 불안정한 상태가 지속되며 큐 서한 이후에도 프랑스 치하에서 네덜란드 통치 체제가 존속했으나, 영국은 동남아시아에서 더욱 공격적으로 식민지 경영에 착수하여 19세기 초 결국 마나도(1810)와 자바(1811)를 침공해 접수했으며, 나아가 향료 제도에 이르기까지의 제해권을 장악했다. 영국은 이때 독립국이었던 [[아체 술탄국]]에서도 정치 공작을 벌여 친영파 술탄을 잠시 집권시키는 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나폴레옹 전쟁]]이 종결된 후 영국은 자바, 수마트라, 말라카를 포함한 동남아시아의 기존 네덜란드령을 네덜란드로 돌려주었으며, 아체의 내정 개입을 포기하고 친영파 술탄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여 아체에서는 곧 기존 술탄이 복위하였다. 이 시기 영국은 [[페낭]]을 거점으로 1819년엔 [[토머스 스탬포드 래플스]]의 주도로 [[싱가포르]]를 건설하기까지 [[말레이 반도]] 지역에서의 영향력을 증대해 갔다. 동남아시아에서 당시 네덜란드와 영국의 세력권은 수마트라와 말레이 반도의 이곳저곳에 산재해 있었고, 말레이 반도에도 네덜란드령(말라카)이, 수마트라에도 영국령([[븡쿨루]])이 있는 상태였으므로 양 식민 제국의 세력권은 충돌의 여지가 많았다. 결국 양국의 협상으로 1824년 [[런던 협약]]이 체결되어 [[수마트라]], [[자바 섬]] 등 현재의 [[인도네시아]] 지역은 네덜란드가, [[말레이 반도]] 지역은 영국이 관할하기로 결정되었고, 말레이 반도의 말라카는 영국으로 양도되었으며 수마트라의 븡쿨루는 네덜란드로 양도되었다. 영국은 1826년에 말레이 반도에서 보유한 세 식민지 [[페낭]], [[말라카]], [[싱가포르]]를 한데 묶어 '[[해협 식민지]](Straits Settlements)'를 창설하였다. 그러나 아직 말레이 반도의 토착 국가를 직접 지배하려 하지는 않았다. 이때까지 영국의 관심은 무역로 장악이었을 뿐이고, 특히 중요한 것은 '중국으로의 길' 이었다. 해로상의 거점을 장악했으면 그걸로 충분했다. 당시까지는 말레이 반도에서 수익성 높은 자원이 생산되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