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말레이시아/역사 (문단 편집) === 독립 === 1930년대부터 민족별로 각자의 정치조직이 만들어졌는데, 말레이인은 범이슬람조직을 만든 반면 화교들은 본국 공산당의 영향을 받아 1930년에 '말레이 공산당'을 조직하는가 하면 인도계도 본국의 독립운동에 영향을 받아 반영 조직을 만들었다. 1941년 12월 8일에 [[일본군]]이 [[태평양 전쟁]]을 진행하여 소수 병력으로 영국군을 빠르게 무력화해 [[일본령 말라야|군정 체제]]를 수립했다. 일제는 민족 이간정책을 실시해 말레이인들에게 민족주의를 선동했으나 먹혀들지 않았고, 화교들을 혹독히 탄압하여 민족 갈등을 더욱 부추겼다. 이에 화교들은 좌익 무장투쟁을 한 반면, 인도계는 일본과 손을 잡았다. 1945년 8월 15일에 일제가 항복하자 영국이 돌아왔으나 말레이인들은 오히려 자치, 나아가 독립을 더 크게 요구했다. 1946년에 말레이계 각 정파가 '[[통일말레이국민조직]](UMNO)'을 결성하자 인도계는 동년도에 '말레이시아인도회의(MIC)'를, 화교들은 1949년에 '말레이시아화인협회(MCA)'를 각각 결성했다. 1948년 2월 1일에 [[말라야 연방]]이 수립되긴 했으나 말라야 공산당은 1948년부터 좌익혁명을 일으켜 공산화하려 했다. 이에 영국은 비상사태를 선포하여 모든 집회/시위와 공산당 활동을 억눌렀다. 이른바 말라야 비상사태.[* 말라야 공산당의 사병(私兵)인 말라야 민족해방군은 이 전쟁을 반영 민족해방전쟁이라 자칭했다.] 이때부터 1960년까지 말라야 공산당의 무장 단체인 말라야 민족해방군과 영국군 사이에서 게릴라전이 일어났다. 전쟁이라는 표현을 썼다면, 런던로이즈가 손해에 보상하지 않았기 때문에 고무 플랜테이션과 통조림 제조 산업자들이 [[반란]]을 일으켰다고 본 것이다. 1957년 8월 31일에는 UMNO와 MCA, MIC 3개 정당을 주축으로 독립을 인정받았다. 1960년에 비상조치가 해제된 후 1963년 9월 16일에 영국 보호령인 [[브루나이]]가 불참한 가운데 말레이시아 정부가 수립됐다. 1960년 공산주의자들이 패배했으나 친 펭(陳平)[* 본명 Ong Boon Hua (王文華)]은 1968년부터 [[말레이시아]]에서 새로운 반란을 일으켰고, 이 반란은 1989년까지 이어졌으나 실패하였고, 친 펭은 태국으로 망명하여 2013년 9월 16일 그곳에서 사망했다. 영국은 말라야의 여러 술탄국들이 한 나라가 되어 말레이계, 중국계, 인도계가 같이 말라야인으로서 살게 된다는 이상을 가지고 독립을 시킨 것이었다. 그러나 말레이인들은 불만을 품었다. 굴러들어온 돌이나 다름없는 중국계가 말레이시아의 경제를 점령하게 되니 말레이인들은 당연히 참지 못한 것이다. 그럼에도 영국, 말레이계, 중국계 지도자들의 합심으로 독립은 해냈다. 말레이계가 [[군인]]과 [[경찰]], 공무원 쪽을 차지하게 되고, 국교는 이슬람에 공용어는 말레이어로, 교육과 경제정책은 말레이계를 우대하는 한편, [[중국계 말레이시아인]]이나 [[인도계 말레이시아인]]도 말라야 국민으로서 그대로 말라야에서 살 수 있었다. 거기에 경제적 기득권도 빼앗지 않고 계속 인정해 준다는 것이 요지이다. 또 [[양 디페르투안 아공|국왕]]은 9개 지역 술탄들이 왕을 5년씩 선출토록 하고 국정 시스템은 영국식 내각제를 따랐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