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말레이시아/역사 (문단 편집) == 고대 == 기원후에는 여러 왕국이 이 지역에 존재했다. 남인도 촐라 왕국의 상인들이 정착하여 인도 문화가 전파됨으로써 국가의 기틀을 다진 것으로 추정 중이다. [[중국인]]들이 남긴 기록으로 존재 여부와 위치가 확인되는 국가들은 [[랑카수카 왕국]](Langkasuka, 2세기?–15세기[* 한자 표기는 출전에 따라 '랑가수郎伽戍', '릉아사가凌牙斯加', '룡아서각龍牙犀角', '랑서가狼西加' 등 다양하다. 이후 랑카수카가 존재하던 위치에는 [[파타니 왕국]]이 세워졌다. 6세기 전반 [[양(육조)|양나라]]의 [[양직공도]]에 랑카수카 사신의 모습이 그려져 있는 등, 말레이 반도 지역 고대 왕국 가운데 그나마 관련 문헌 기록이 많은 편이다. 말레이시아가 독립할 때 국호를 정하는 논의에서도 '랑카수카'를 신생국의 국호로 하자는 의견이 있었다.]), 적토(赤土, [[말레이어]]: Tanah Merah, 2세기?–7세기?[* 중국 측 기록에 따르면 지배층은 몬크메르계였던 것으로 보이며, '적토'는 단순 음차가 아니라 정말로 '나라의 땅이 붉다'는 의미로 쓰였다. 클란탄 지역의 기록과 대조해볼 때 락타마리티카(Raktamaritika, [[산스크리트어]] 명칭)와 동일시된다.]), 단단(丹丹) 등으로서, 각각 파타니, 클란탄, 트렝가누 등지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Andaua 2001: 22] 반반(盘盘)이라는 국가도 클란탄 혹은 트렝가누 지역에 있었는데, 이 역시 8세기 후반에 [[스리위자야]]에 정복당했고, 중국에 6–7세기에 여러 차례 공물을 보냈다는 정도 외에는 알려진 바가 없다. 이 국가들은 대략 6세기부터 중국 사서에 나타나는데, 중국 남조 국가들이 남방과의 교류에 관심이 많았던 덕분이라고 여겨진다. 말레이 반도 북서부의 [[크다 주|크다]] 지역과 [[페락]] 지역은 고대 인도양 무역로와 가까운 관계로 고대부터 중계 무역지로 번성하였으며[* 인도와 중국을 잇는 무역로에서는 [[말레이 반도]] 아래를 돌아가는 해로를 이용할 수도 있지만, 말레이 반도 북서부에 해로로 도달한 후 [[크라 지협]]을 육로로 가로질러 말레이 반도 북동부에서 다시 해로를 이용할 수도 있다. 어떠한 경로를 이용하든 말레이 반도 북서부를 경유하는 경우가 많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관련 [[고고학]] 연구가 활발하여 많은 관련 유물이 발굴되고 있다. 페락 지역에 약 2세기부터 11세기 초까지 존재하였던 강가 왕국(Gangga Negara, 성립 시기는 확실하지 않음)은 19세기부터 고고학 연구의 대상이 되었는데, 특히 브루아스(Beruas)에서 발굴된 다양한 유물(그릇, 항아리, 주화, 대포, 도검 등)은 중국과 이 지역의 무역에 대한 직접 증거가 되며, 가장 오래된 유물은 제작 연도가 5–6세기까지 거슬러올라간다. 그러나 말레이 반도의 인도화된 고대 국가들과 현 말레이시아 사회와의 연계성을 확립하기에는 증거가 너무 부족하다. 무엇보다도 역사에 있어 가장 핵심인 '사람' 과 '사람의 활동' 에 대한 문서 기록의 부재 내지 파편화는 말레이시아 고대사를 다룸에 있어 가장 큰 걸림돌이 된다. 말레이시아 고대 국가 형성에 영향을 준 남인도인들도 동아시아, 유럽, 서아시아 등의 문화권보다 역사 기록 전통이 빈약한 편이었으며, 제지술이 크게 발달하지 못한 고대에는 흔히 구할수있는 [[패엽]]에다가 기록해놓았는데 재료를 구하기 쉬웠지만 보존성이 나쁘기 때문에 이들이 남긴 서적과 문서는 다수 소실되어 버렸다.[* 출처: 최병욱, 『동남아시아사』와 이원복, 『먼나라 이웃나라 시즌2』 17권 p133.]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