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말레이시아/역사 (문단 편집) === 싱가포르 축출 === [[싱가포르]]와 [[보르네오]] 섬의 [[사라왁]], [[사바(말레이시아)|사바]] 지역은 영국에서 독립한 후 말라야 가입을 저울질하고 있었다. 이 중에서 [[싱가포르]]가 특히 문제였는데 싱가포르는 [[중국계 싱가포르인]] 즉 [[화교]]가 압도적 다수였고 거기다가 싱가포르는 식민지 시절부터 [[말레이 반도]]의 압도적인 경제 중심지였기 때문에 말라야는 [[중국인]]이 다수인 싱가포르 사람들이 들어와서 경제를 휘어잡을까 우려했다. 어쨌든 싱가포르는 말레이시아와 잠시 합쳤다. 말라야에 싱가포르, 사라왁, 사바가 편입되면서 나라 이름도 말레이시아로 고쳤다. 당시 싱가포르 주의 총리였던 [[리콴유]]는 '''말레이시아인들의 말레이시아(Malaysian Malaysia)'''를 주창했다. 인종에 상관없이 '말레이시아인'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모든 말레이시아인에게는 똑같은 권리와 책임이 있다는 주장이었다. 말레이계의 입장에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정책이었다. 경제나 학업 면에서 말레이계가 너무 뒤쳐져 있으니 이대로 똑같이 평등하다면 말레이계는 말레이시아 사회에서 낙오될 수밖에 없다고 판단되었던 것이다. 물론 리콴유와 [[중국계 말레이시아인]]들의 주장도 충분히 이해할 만한 것이었다. 중국계라고는 해도 몇대째 말레이시아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이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이런 치열한 국가관의 차이는 신생 독립국의 존립을 흔드는 위험한 문제였다. 결국 [[1965년]] 8월 7일에 말레이시아 정부는 리콴유 총리와 그의 정부 각료들을 불러 싱가포르 주를 말레이시아 연방에서 축출한다고 통보했다. 그리고 싱가포르 주의 총리 리콴유는 울면서 독립을 선언했다. >"저에게는, 싱가포르의 독립은 아픔의 순간입니다. 저는 말레이와 싱가포르가 통합되어 말레이시아라는 한 나라가 될 것이라고 평생을 믿어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2015년 기밀해제되어 공개된, 리콴유가 고켕스위에게 보낸 편지와 고켕스위가 작성한 메모를 보면 말레이시아 연방 시절 리콴유는 본인이 내키든 내키지 않았던 결국 싱가포르가 독립하는 방법밖에는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으로 보인다. 기밀해제된 자료에 따르면 리콴유는 독립한다는 전제 하에 최대한 싱가포르가 이익을 얻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고 독립 이후에 발생할 충격을 최대한 완화하기 위해서 말레이시아 측과 상호 동의하에 축출당하는 것처럼 연출하기로 미리 합의했다고 한다. 리콴유 정부는 [[1965년]] [[7월]] 고켕스위를 말레이시아 중앙정부에 보내 최종적으로 분리 독립에 합의했으며, 기밀 해제된 문서를 볼때 이미 독립 이후에 어떻게 해야할지 대강의 계획은 세워뒀던 것으로 보인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