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말레이시아/역사 (문단 편집) == 이슬람 시대 == 인도양에서 활동한 이슬람 상인·선교사의 영향으로 인해 말레이 반도는 인접한 수마트라 북부·동부와 함께 12–15세기를 지나며 천천히 이슬람화되어 갔다. 지역에 따라 [[파사이 술탄국]]처럼 군주의 개종이 이른 시기[* 파사이는 13세기에 군주가 개종하였는데, 아체 지역의 일부 소규모 국가는 12세기에 군주가 개종한 경우도 있었을 수 있다. 말레이 반도에서는 크다의 군주가 12세기에 개종하였다는 지역 연대기 기록이 있지만 이는 주변 기록과 교차 검증되지 않고, 일반적으로 크다 군주의 개종은 15세기로 본다. 말레이 반도에서 가장 이른 믿을 만한 군주의 개종 기록은 14세기의 [[트렝가누 비문]]으로 입증되는 트렝가누의 것이다.]에 일어나는 경우도 있었다. 이 지역의 이슬람화는 전반적으로 도서부 동남아시아에서 오늘날 [[인도네시아]]에 속하는 기타 지역(자바, 술라웨시, 말루쿠 등)보다는 빠른 편이었으나, 수마트라 북서부 바탁 지역 및 수마트라 내륙, 말레이 반도 내륙은 끝내 이슬람화되지 않은 채 남은 지역도 있었다. 15세기에 말레이 반도 및 수마트라 북부·동부에서 [[말라카 해협]] 교역로를 장악하고 군사적, 상업적 패권을 획득한 것은 [[믈라카]]를 중심으로 한 믈라카 술탄국이었으며, 믈라카는 오늘날의 [[페락]], [[파항]], [[클란탄]], [[트렝가누]], [[슬랑오르]], [[느그리슴빌란]] 등지 및 수마트라 동부의 [[리아우]] 등지를 지배하거나 속령으로 두고 있었다. 북부의 [[파타니 왕국]], [[크다]] 술탄국 등은 지리적으로 떨어져 있어 믈라카의 지배를 받지는 않았다. 믈라카 술탄국이 포르투갈의 침입으로 붕괴한 후 믈라카의 잔당은 말레이 반도 남부의 [[조호르]]로 내려가 조호르 술탄국을 수립하였으나, 조호르는 이전의 믈라카처럼 압도적인 세력이 되지는 못하고 페락, 파항, 클란탄 등지에 있던 믈라카의 옛 봉신국들이 독립하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말레이 반도 북동부의 트렝가누와 서부의 슬랑오르는 17세기까지도 조호르 술탄국의 속령이었으나 트렝가누는 18세기 초[* 단, 트렝가누는 일반적으로 17세기 후반에 조호르의 속령이었던 것으로 보지만, 이때 트렝가누가 파타니 왕국의 영향권에 있었던 것으로 해석이 가능한 사료도 있다. 17세기 후반 파타니와 트렝가누의 역사는 사료 부족 및 상충으로 의문을 품을 만한 부분이 많은 편이다.], 슬랑오르는 18세기 중반 별도의 술탄을 갖춘 국가가 되었다. 느그리슴빌란은 14–15세기부터 믈라카와 조호르의 보호 하에 [[미낭카바우인]]들이 수마트라 서부에서 건너와 정착하던 지역이었는데, 18세기 중반까지도 지리적으로 인접한 조호르의 속령이었지만 18세기 후반에 독자적인 미낭카바우인들의 자치 정부를 갖추고 파가루융 왕조가 통치하는 지역이 되었다. 느그리슴빌란 지역의 통치자는 술탄이 아닌 라자(Raja)나 공식적으로 '위대해진 자'(Yang di-Pertuan Besar), 또는 간단히 '얌투안 브사르'(Yamtuan Besar)로 칭해졌으며, 지역 정부는 미낭카바우 관습의 강한 영향을 받아 비교적 수평적인 통치 체제를 구축하였다. 믈라카 술탄국의 붕괴 이후 16세기부터 18세기까지 말라카 해협에서는 이전의 믈라카에 견줄 정도로 압도적인 군사·상업 세력은 등장하지 못했고, 유럽인들의 직접 지배는 1786년 [[페낭]]이 [[영국 동인도 회사]]령이 되기 전까지는 말라카 및 인근과 화물 집산지로 쓰이는 말레이 반도 서부의 소규모 항구에 국한되었으며 조호르 술탄국, 파타니 왕국 및 수마트라의 신흥 세력 [[아체 술탄국]], 팔렘방 술탄국, [[잠비 술탄국]], [[시악 술탄국]] 등의 군소 세력들이 주도권을 쥐기 위해 활발하게 세력 경쟁을 벌였다. 특히 아체, 조호르, 시악은 한때 지역의 여러 국가를 굴복시키고 지역의 패권을 획득하기도 하였으나, 극심한 상호 견제로 최종적으로 지역을 완전히 통합한 세력은 다시 등장하지 못했다(17세기 전반의 아체가 이에 가장 근접하기는 하였다). 지역의 세력 지도는 기존 세력이 다른 세력에 흡수되거나 새로운 세력이 독립해서 생겨나면서 자주 바뀌었는데, 가령 믈라카 붕괴 이후 독립하였던 파항 술탄국(1470–1623)은 1623년, 아체에 의해 쫓겨났던 파항의 전 술탄(조호르 기준으로 압둘 잘릴 샤 3세)이 당시 패권국이었던 아체의 양해를 구하여 조호르의 술탄위를 계승하고 파항의 술탄위도 되찾음으로써 사실상 조호르에 합병되어 소멸하였다가, 18세기 중반 파항 영주의 독립성이 강해져 파항이 다시 반독립 상태로 조호르와 분리되었다. 네덜란드 세력은 18세기에 조호르를 비롯한 말레이 반도의 토착 세력에 영향력을 행사하였으나 이들을 직할령으로 합병하려 노력하지는 않았고, 지역 통치자와 좋은, 때로는 강압적인 관계를 유지하며 페락의 [[주석(원소)|주석]] 등 경제적 이권을 차지하는 데 만족하였다. 18세기 전반에는 남술라웨시에서 서쪽으로 이동한 해양 민족 [[부기스인]]의 세력이 말레이 반도와 수마트라에서 정치적 파란을 일으켰다. 부기스인들은 아체, 조호르, 클란탄, 슬랑오르 등지에서 18세기에 군주 또는 실권자로 집권에 성공하였고, 집권하지 않은 팔렘방 등지에서도 정치적으로 기존 정부에 반발하며 골칫거리가 되었다. 18세기 내내, 쉽사리 구슬려 이용하기 힘든 부기스인의 세력은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에 항구적인 위협 요인이었다. 1756–1757년 부기스 세력은 네덜란드 세력과 알력을 빚어 네덜란드령 말라카를 포위 공격하다 격퇴되기도 했다. 1781년에는 부기스 세력이 페락의 네덜란드 상관을 점령하였다. 네덜란드 세력은 여러 반네덜란드 군사 행동을 성공시킨 부기스인 부왕이자 장군인 [[라자 하지]](Raja Haji, 리아우 부왕 재위 1777–1784)가 틀룩크타팡(Teluk Ketapang)에서 전사한 1784년이 되어서야 부기스 세력을 간신히 저지하고, 부기스인 부왕이 실권자로 집권한 조호르 술탄국(조호르–리아우 술탄국)을 굴복시킬 수 있었다. 18세기 말까지 네덜란드 세력은 조호르, 페락, 슬랑오르를 정치적·군사적으로 간신히 굴복시키고 영향권에 편입하는 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이어진 [[나폴레옹 전쟁]] 및 네덜란드의 말레이 반도 영향권 포기로 인해 네덜란드 세력은 수마트라에 집중하게 되었으며, 19세기 초에는 영국 세력이 말레이 반도에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다. [[네덜란드]]와 [[영국]] 세력의 간섭으로 말라카 해협의 토착 세력들은 19세기에 거의 모두 유럽 세력에 종속되었다. 아체 술탄국만은 19세기 후반의 [[아체 전쟁]]을 장기전으로 끌고 가며 네덜란드 식민 세력에 많은 피해를 입혔으나, 결국 아체마저도 20세기 초에 [[네덜란드령 동인도]]로 불안정하게 통합되었다. 보르네오 북부에서는 [[브루나이 술탄국]]이 마자파힛이 약화하고 붕괴되는 시점에 독립 세력으로서의 입지를 다졌고, 이후 한때 보르네오 북부 전체를 지배했던 적도 있었으나, 최종적으로 19세기까지 영국이나 영국계 세력이 보르네오 북부를 대부분 차지하게 되었고 오늘날 [[브루나이]]는 수도 인근의 작은 영토만을 보유한 군소 국가가 되었다. 브루나이 술탄국은 17세기 중반 보르네오 북동부 [[사바(말레이시아)|사바]]의 일부 영토를 [[술루 술탄국]]에 양도하였으며, 이 지역은 술루가 19세기 중반까지 지배하기도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