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이동문서 삭제토론 말레이시아/역사 (문단 편집) === 탐브랄링가 왕국 === 오늘날 태국 남부 [[나콘시탐마랏]] 지역은 스리위자야 및 다르마스라야의 최북단 변경이었으며, 이 지역에 존재하던 말레이계 탐브랄링가 왕국은 12세기까지 수마트라계 세력의 속령이었다. 탐브랄링가 왕국은 13세기 중반의 찬드라바누 왕(Chandrabhanu, 재위 1230–1263) 시대에 전성기를 맞아 [[스리랑카]] 북부로 진출하고 [[자프나 왕국]]을 한때 정복하고 영유하였다. 그러나 전성기는 짧았고, 탐브랄링가의 북스리랑카 지배는 1270년대 말 남인도 [[판디아 왕조]]의 마라와르만 쿨라세하라 1세(Maravarman Kulasekara Pandyan I, 재위 1268–1308)의 원정으로 탐브랄링가 세력이 축출되어 종식되었다. 그래도 이는 역사 시대 동남아시아에서 미얀마 일부 정복군주 및 [[마다가스카르]]로 이동해 정착한 [[말라가시인]]의 경우와 함께 지극히 예외적인 성공한 역외 원정 사례로서 주목할 만하다. 13세기 말에서 14세기 전반, 탐브랄링가 지역은 남하한 [[수코타이 왕국]] 또는 수코타이 휘하 타이계 세력의 원정군에 점령되어 수코타이의 속령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1293년의 [[람캄행]] 비문은 람캄행 왕이 시탐마랏(탐브랄링가) 지역을 점령했다고 명시적으로 언급하고 있으나, 람캄행 비문 자체는 후대의 조작이라는 설도 있어 수코타이의 탐브랄링가 복속은 완전히 확정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14세기 중반 자바 문헌 《[[나가라크르타가마]]》(1365)는 이와 독립적으로 탐브랄링가 지역이 시암에 속한다고 해석할 수 있는 기록을 남겼으므로, 몇 년에서 몇십 년 정도의 시차는 있을 수 있으나 늦어도 14세기 중반부터 탐브랄링가가 시암(적어도 [[아유타야 왕국]]) 산하에 있었음은 인정되고 있다. 시암 산하 탐브랄링가 지역에는 반독립적인 [[나콘시탐마랏 왕국]](13세기 말/14세기–1782)이 세워졌고, 이후 나콘시탐마랏은 아유타야와 [[톤부리 왕국|톤부리]]의 봉신국으로 점차 타이화되어 태국 왕조에 동화되어 가면서 역내 자치를 누렸다. 아유타야의 반독립적 나콘시탐마랏 지배가 안정화된 15세기 중반, 나콘시탐마랏은 보롬뜨라일록낫(Borommatrailokkanat, 재위 1448~1488) 국왕 시기 1468년 반포된 법령에서 아유타야의 여덟 주요 도시 중 하나로 꼽혔다. [[짜끄리 왕조]]가 개창된 1782년, [[라마 1세]]는 나콘시탐마랏의 자치권을 거두어 지역을 중앙 정부 관할의 주로 편입하였다. 이슬람화 이전 오늘날의 [[송클라]] 지역도 탐브랄링가 치하에서 항구로 번성하였다. 송클라 지역도 인접 지역들처럼 말레이계 인구가 많은 곳이었으며, 아유타야 세력이 영향을 미칠 때도 나콘시탐마랏 지역처럼 시암의 남부 변경으로서 반독립적 상태를 유지했다. 17세기에 송클라 지역에는 단명한 싱고라 술탄국(Sultanate of Singgora/Singora, 1605–1680)이 세워졌고 아유타야 산하 반독립 무역 국가로 일정한 부를 누렸다. 1642년, 싱고라의 술탄 술라이만 샤(Sultan Sulaiman Shah)가 시암에서 독립을 천명하고 이어 세 차례에 걸쳐 시암 원정군을 격퇴했다. 1668년 술라이만 샤를 계승한 장자 무스타파의 치세에는 인근 지역에서 약화된 파타니와 우세한 입장에서 전쟁을 벌이기도 했다. 그러나 1680년, 시암이 잘 준비된 병력으로 본격적인 원정을 오자 싱고라는 점령당했고, 도시는 약탈되고 파괴되었으며 독립국으로서의 싱고라 술탄국도 소멸하였다. 흥미롭게도 1685년 시암은 [[프랑스 동인도 회사]]에 싱고라 항구를 넘기려고 제안하기도 했는데, 당시 말레이 지역에서 점차 세력을 불려 가며 시암에도 위협적이었던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프랑스인들이 싱고라를 재건하고 완충 지대를 마련해줄 것을 기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프랑스는 이 지역에 흥미가 없어 싱고라 양도는 불발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