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말린체 (문단 편집) === 이후 === 이후 말린체는 코르테스와 가까워져 그의 애인이 되었는데 이때 코르테스의 서장남 돈 마르틴 코르테스를 낳게 되었다.[* 마르틴은 코르테스의 아버지 이름이다. 1529년 코르테스는 교황 클레멘스 7세에게 청원해 마르틴 등 사생아 4명을 적자로 인정받는 칙서를 받아냈다. 아버지의 모국 스페인에서 유년시절을 보내고 청년기에 신대륙으로 돌아왔다. 대우가 그리 나쁘진 않아서 기사 서임도 받고, 펠리페 2세의 종자가 되어 전장에 종군하기도 했다. 코르테스의 적장남이자 이복동생인 마르틴 코르테스 수니가와는 사이가 나쁘지 않았는지 1562년 형제간에 작당하여 부왕을 축출할 음모를 꾸민 혐의로 체포되고 본국으로 추방되어 여생을 보냈다.] 그 후 얼마간은 코르테스의 비공식적인 부인으로 행세했으나, 코르테스가 스페인으로 돌아간 1529년 이후의 자세한 행적은 매우 불분명하다. 사망 연대도 기록에 따라 1529년과 1550/1551년으로 엇갈리고 있다. 확실한 것은 코르테스가 떠나고 나서 1526년과 1527년 무렵에 후안 하라미요(Juan Jaramillo)라는 콩키스타도르와 결혼한 것이다. 남편 후안 하라미요와의 사이에서는 마리아 하라미요(Maria Jaramillo)라는 [[딸]]을 낳는다. 말린체와 코르테스의 아들인 돈 마르틴 코르테스와 정식 남편인 후안 하라미요의 딸인 마리아 하라미요는 라틴아메리카 역사상 공식적으론 최초의 생물학적인 '[[메스티소]](백인+원주민 혼혈)'로[* 다만 라틴 아메리카 쪽에선 마르틴 코르테스보다는 순수 백인이면서도 원주민들에 동화되어 살다가 [[콩키스타도르]]에 맞서 싸웠던 [[곤살로 게레로]](정신적으로)와 그 아들(혈통적으로)을 최초의 메스티소로 인식하는 의견도 많다. 둘 다 비슷한 시기긴 하다만.] 기록되었다. 코르테스는 말린체와의 사이에서 난 사생아들을 적자로 인정받게 하려고 [[교황청]]에게 탄원하기도 했다고 하며, 이들 중 네 명은 적자로서 상속권을 허락받았다고 한다. 코르테스는 [[유언]]에서도 이들과 이들의 어머니를 보필하라고 했으며 묘지도 멕시코 일대였다. 때문에 코르테스는 오늘날 [[메스티소]]의 아버지 중 한명으로 불린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