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매일유업 (문단 편집) == 역사 == [[파일:매일유업 구 CI.png]] 1994년부터 2008년까지 쓰인 ci 정부와 민간주주 진암 [[김복용]][* [[함경남도]] [[북청군]] 출신 실향민으로, 북청농업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1930년 3월 12일 생.]과의 50:50 분배 형식의 정부출자기관으로 시작해서 [[민영화]]된 기업이라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1969년]] 낙농 및 축산업 진흥을 위해 [[농어촌개발공사]]에 의해 자본금 1000만 원으로 '''한국낙농가공(약칭 한국낙농)'''으로 설립되었다. 1972년부터 일본 [[모리나가]] 사와 기술제휴를 맺어 이듬해부터 사명을 '''한국낙농유업'''으로 바꾸고 [[전라남도]] [[광산군]] [[송정동(광산구)|송정읍]] 운수리[* 현 [[광주광역시]] [[광산구]] 운수동. 1986년에 광주직할시 승격과 동시에 송정시가 되었다가 1988년에 현재의 영역에 통합되었다.]에 호남공장을 세워 '매일' 브랜드의 시초인 '매일우유'를, 1974년 [[경기도]] [[평택시|평택군]](현 평택시)에 중부공장을 세워 '매일분유'를 잇달아 출시하여 유제품 사업에 처음으로 진출하였다. 1975년에는 현 앱솔루트 맘스쿨의 전신인 '매일분유 어머니교실'을 세워 육아교육을 실시했으며 1978년 [[경상북도]] [[경산시|경산군]](현 경산시)에 영남공장 준공 후 '매일요구르트'를 출시하였다. 1980년에 현 사명인 '''매일유업'''으로 변경하여 1981년 본사를 장충동 태광빌딩으로 옮기고 네덜란드의 도모 사, 독일의 밀루파 사 등과 기술제휴하는 등 제품의 질 향상에 심혈을 기울여 1983년에 '매일맘마'와 함께 맘마밀의 전신인 '밀루파 매일'을 출시하고 1986년에는 중앙연구소를 세워 신제품 개발에 주력하여 1988년에는 과즙음료 '피크닉'을, 1989년에는 독일 스트로만과 사노피랑 기술제휴 맺고 요구르트 '비피더스'와 호상요구르트 '바이오거트'를 각각 내고, 뉴질랜드낙농공사 합작으로 '한국뉴질랜드치즈'(얼마 안 가 '매일뉴질랜드치즈'로 변경)를 세웠다. 1990년 '허쉬초콜릿 드링크', 1991년 '치즈피아'(매일뉴질랜드치즈), 1992년 '썬업', 1996년 '매일 1등급 우유' 등을 각각 출시하였으며, 1994년부터 'Maeil'이라고 쓰인 영문 로고를 썼다. 1997년 김복용 회장의 장남 김정완이 대표이사 사장에 취임한 뒤 2세 경영체제가 확립됐고, 1999년에 농수산물유통공사가 가진 35.7%의 지분을 대주주 김복용 회장 등 민간주주 25명에게 넘겨 민영화하면서 코스닥시장에 상장했다. 2001년부터는 기존의 젖소머리 CI를 버리고 영문 로고를 CI로 삼은 뒤 자회사 레뱅드매일을 세웠고, 2002년 뉴질랜드 측이 지닌 매일뉴질랜드치즈 지분 절반도 사들인 뒤 2005년 '소화가 잘되는 우유'를 출시하고 주한미군 군납자격을 취득했다. 2006년 김복용 회장 사후 김정완 사장이 가업을 이어 2010년 (주)상하를 합병했고, 2013년 폴바셋 사업부문을 분할해 엠즈씨드를 세웠다. 2016년 9월에는 그 동안 우유업계에서 1위 자리를 지켜오던 경쟁사 [[서울우유]]를 제치고 매출 1위를 기록하였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82&aid=0000632210|#]] 2017년 유제품가공부문이 '매일유업'이란 명칭으로 분사됐고, 구 법인은 지주사로 전환 후 '매일홀딩스'가 됐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