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매카시즘 (문단 편집) == 재평가? == 1995년 기밀해제로 공개된 미-영 간의 [[러시아어]] 암호 해독 프로젝트인 "베노나(VENONA)"에 의해 매카시가 공산주의자 및 [[소련]]의 [[간첩]]으로 지적한 이들[* 가령 [[뉴딜]] 정책의 발안자인 해리 화이트, 그리고 로젠버그 부부 등]이 당시 정말로 소련의 간첩으로 활약한 사실이 드러나 매카시 상원의원의 지적이 사실이라는 이야기가 돌기는 한다. 그러나 베노나 프로젝트에 의한다고 하더라도([[http://www.johnearlhaynes.org/page62.html|관련 글]]) 매카시의 '지적'이 [[재평가]] 운운할 정도로 [[미국]] [[안보]]를 공고히 하였는지는 참으로 의문이다. 실제로 베노나 프로젝트에 있는 명단과 매카시의 명단을 상호 비교해 보면 매카시가 지적한 사람들이 베노나 명단에 있는 경우는 극히 적다. 매카시가 1950년 2월 20일에 의회 [[https://en.wikipedia.org/wiki/Tydings_Committee|Tydings 위원회]][* 매카시의 고발을 검증하기 위해 美 의회에 설치된 위원회]에 고발한 국무부 직원 108인[* 108 List 또는 Lee List로 통칭 [[https://en.wikipedia.org/wiki/Tydings_Committee|참조]]], Tydings 위원회에 추가로 고발한 16인, 1950년부터 1952년까지 연설에서 개인적으로 지목한 기타 인물들을 합한 159인의 실명 명단을 역사학자 [[https://en.wikipedia.org/wiki/John_Earl_Haynes|존 얼 헤인즈]]가 VENONA, [[https://en.wikipedia.org/wiki/Elizabeth_Bentley|Elizabeth Bentley의 증언]][* 미국 공산당원으로서 소련 간첩들과 갈등을 겪다가 1945년에 FBI에 자수한 여성이다.], [[https://en.wikipedia.org/wiki/Anatoly_Gorsky|Gorsky memo]][* 영국, 미국에서 활동한 전설적인 고정간첩 Anatoly Gorsky가 작성하여 KGB에 보고한 Bentley가 FBI에 고발했을 것으로 판단되는 인사들의 명단.], [[https://en.wikipedia.org/wiki/Alexander_Vassiliev| The Haunted Wood]][* KGB의 후신 [[SVR]]이 조직의 존재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스탈린 시기 KGB의 미국 내 간첩활동을 정리한 책. 1995년에 검열된 초고가 완성되었으나 소련 말기에 KGB 요원으로 활동한 Alexander Vassiliev가 무검열본을 빼돌려 1999년에 미국에서 출간하였다.] 등과 비교해 본 결과 [[http://www.johnearlhaynes.org/page62.html|간첩혐의가 검증되는 인물은 159명중 10명에 불과하였다.]][* 조셉 매카시의 [[한국어 위키백과]] 문서에선 "존 얼 헤인즈는 실제로 159인중 상당수가 보안상 위험인물이었다고 주장하였다"고 서술되어 있지만 이는 그의 연구를 완전히 곡해한 것이다. 헤인즈는 "보안상의 위험이라는 표현은 소련의 스파이라는 뜻이 아니다. 그저 국가안보 업무의 민감성을 감안하였을 때 그러한 정보를 맡기기 부적합하다는 의미이. 위험요인은 이념적 동조뿐만 아니라 도박 빚, 적성국 거주 친인척의 존재 등 매우 다양하다."고 [[http://www.johnearlhaynes.org/page62.html|오히려 선을 분명히 그었다.]]][* 159인 중 상당수가 이념적 위험요인을 지녔지만 미국 공산당(CPUSA)과 청년조직에 소속되었던 인물은 소수에 불과하였다. 조직에 몸담았던 인사들조차도 대부분은 40,50년대에 들어서 공산주의 이념을 버렸다고 헤인즈는 판단하였다. 헤인즈가 든 대표적인 예로는 헝가리계 미국인 화학자 [[https://en.wikipedia.org/wiki/Stephen_Brunauer|Steven Brunauer]]가 있다. 1921년에 [[뉴욕시립대]]에 유학하여 1925년에 미국에 귀화한 Brunauer는 1920년대 말까지 CPUSA의 청년조직에 속하였다. 1942년의 [[진주만 공습]] 이후에는 해군 예비군에 입대하였다. 1943년엔 [[아인슈타인]] 망명작전을 주도하였고 1946년에는 공산화된 헝가리 내 과학자들의 미국 망명을 보조하는 업무를 부여받아 성공적으로 수행하였다. 이러한 예에서 볼 수 있듯이 [[매카시]]는 [[트루먼]] 행정부가 이미 검증한 인물조차도 냉전 발발 이전의 행적을 근거로 무차별적으로 고발한 것이다.] 매카시의 주장으로 [[1950년대]]의 미국 사회가 얼마나 [[공포]]에 감염되어 경직되었는지를 생각한다면 매카시즘을 재평가한다는 것은 황당한 일일 뿐이다. 대한민국에 [[재평가]] 운운하면서 나도는 [[떡밥]]은 모 교수의 주장과 그가 번역한 [[미국]]의 앤 콜터(Ann Coulter)[* [[미국]]의 대표적인 [[극우]] [[보수주의|보수]] 언론인이다.]라는 정치평론가의 저서, 그리고 그들을 소스로 한 모 [[극우]] 블로거의 포스팅들이 대부분으로 믿을 만한 게 못 된다. 그러한 [[극우]] 블로거들은 '누가 뭐라고 떠들든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다. 매카시 의원의 발언이 [[미국]] [[안보]]에 별 공헌을 못했다는 것은 결과론적인 이야기일 뿐이며 논점을 흐리는 주장에 불과하다' 면서 '더불어 역매카시즘 때문에 이후 거꾸로 반공주의에 대한 혐오가 미국에 팽배하게 되었고 소련 간첩을 열심히 잡고 신고하는 사람은 변태 취급을 받게 되어 오히려 미국의 방첩망에 큰 장애를 주었다'고 하면서 [[현대]] [[대한민국]]에 시사하는 바까지 들먹거리기도 한다. 물론 조금만 생각하면 인과관계를 혼동한 오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제로 [[미국]]의 방첩망이 악화되었다면 이는 매카시즘의 부작용이지 매카시즘을 진정시키려는 노력 때문이 아니다. 반공산주의에 대한 혐오를 불러 일으킨 이유가 매카시 의원의 [[삽질]]이었으니까. 당시 국무성에서 일하고 있었고 후이후[[존 F. 케네디]] 대통령의 각료가 되는 [[딘 러스크]][* [[러스크 서한]]을 작성한 사람이다.] 장관은 자서전에서 매카시즘으로 훌륭한 [[중국]] [[전문가]]들이 희생되었다고 비판했으며 그러면서도 국무성이 매카시즘으로 인해 위축된 적도 없다고 주장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