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머슴 (문단 편집) == 역사 == 머슴은 [[중종(조선)|중종]] 대에 나온 최세진의 [[훈몽자회]]에서도 언급되는 등 그 역사가 오래되었는데, [[갑오개혁]] 이후 많아졌다. 갑오개혁으로 [[신분제도]]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면서 노비들이 [[해방]]되자, 양반가나 시골의 대지주들은 일을 시키기 위해 머슴을 고용했고, 많은 노비들도 머슴으로 전환되었다. 구한말~일제강점기에는 농업노동의 주요 원천이었으며[* 이 시대에는 전체 인구의 80%가 농민일 만큼 농촌 사회였다.] 1930년 통계로 보면 고용주 44만2908명에게 머슴 53만7432명이 고용되었다.[[http://encykorea.aks.ac.kr/Contents/SearchNavi?keyword=%EB%A8%B8%EC%8A%B4&ridx=0&tot=17|링크]]. 대개 [[대한민국]]의 산업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되기 전인 1960년대쯤까지 머슴을 흔히 볼수있었다. 광복 후에도 머슴은 존속되어 1950년에는 남한에 270,578명의 머슴이 있었다. 심지어 1960년에도 머슴의 수가 244,557명에 달할 만큼, 여전히 많았다.[[http://encykorea.aks.ac.kr/Contents/SearchNavi?keyword=%EB%A8%B8%EC%8A%B4&ridx=0&tot=17|링크]]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났던 무렵에도 여전히 시골에서는 머슴들이 많았다. 이 머슴들은 공교롭게도 토지 분배를 받지 못해서 불만이 높았는데, 때마침 [[북한군]]이 쳐들어와서 머슴들한테도 [[토지개혁|땅을 나눠준다]]고 약속하자 많은 수가 북한군에 [[부역자|협력]]하였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876418|링크]] 아울러 한국전쟁 무렵, 황해도 신천군에서도 빈민층과 머슴들이 북한군에게 협력했다고 한다. [[http://h21.hani.co.kr/arti/cover/cover_general/4951.html|링크]]. 1960년대를 전후해서 이촌향도 현상으로 도시로 노동력이 몰리면서 머슴들이 도시로 나가 취직하여 머슴의 수가 줄기 시작했다. 1970년대 후반에는 농업노동력 전체의 1% 남짓한 수준이 되었고, 1980년대에는 농업노동력 전체의 0.5% 이하로 줄어들면서 소멸했다. 마찬가지로 같은 계층의 [[식모]] 역시 80년대 초반까지 유입이 존재하였다가 현재는 소멸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