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메스암페타민 (문단 편집) === 군용으로 활용 === '''메스암페타민은 전쟁사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바로 [[제2차 세계대전]] 초기 [[나치 독일]]이 [[http://www.brcity.kr/news/articleView.html?idxno=657|미친듯한 속도를 내며 침공을 했는데 이를 가능하게 해준게 메스암페타민이었다.]] 이 약을 병사들에게 전투 전에 투여함으로써 병사들의 긴장감 및 전쟁과 살인에 대한 거부감을 없애고, 병사들로 하여금 자신이 초인과 같다는 자신감을 불어넣으며 피로를 느끼지 않게 만들어주고, 반사신경과 민첩함을 극도로 강화해 줄 수 있어 진영에 상관 없이 애용되었다. [[프랑스 침공]] 당시 [[독일군]] 장교들이 '페르비틴(pervitin)[* [[독일]]에서 생산한 메스암페타민 약물의 상표명.]의 제일 큰 문제는 병사들이 겁이 지나치게 없어지고 자신감과 육체적 능력이 극도로 충만해져서 명령과 상관 없이 위험한 곳으로 돌격하려 하고, 밤에도 쉬지 않고 [[프랑스군]]에게 계속 싸움을 거는 게 가장 큰 부작용'이라 말했을 정도였다. 일부 병사들은 매우 난폭해져 민간인을 상대로 [[전쟁범죄]]를 저지르거나 자기 상관을 공격했다고 한다. 약을 사용한 병사들은 그후 하루에서 이틀 가량 [[숙취|행오버]]에 시달리며 마치 [[좀비]]처럼 보였다고 한다. 이런 부작용들로 인하여 나치 독일도 작전대로 움직여야 할 군인들의 통제력을 상실하게 만드는 이 약의 사용량을 1940년부터는 통제하기 시작했고, 1941년부터는 군의관의 처방 없이는 사용을 금지했다고 한다. 병사들은 한 번에 딱 2알씩만 받을 수 있었고, 전투를 위해 마구 복용하는 것도 통제 받았다고 한다.[* 보통은 비마약성 각성제인 [[쇼카콜라]]를 먹도록 했는데, 이조차 하루에 1~2조각으로 통제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추축국]], [[연합국]] 가리지 않고 무분별하게 사용되었다. [[나치 독일]]의 경우 테믈러베르켄에서 [[https://www.spiegel.de/international/germany/crystal-meth-origins-link-back-to-nazi-germany-and-world-war-ii-a-901755.html|페르피틴(Pervitin)]]이라는 상품명으로 생산해 병사들에게 공급하였으며, "전차 [[초콜릿]](panzerschokolade),", "[[슈투카]] 알약(Stukatabletten)", [[헤르만 괴링]] 알약(Hermann-Göring-Pillen)"[* 다만 괴링은 [[모르핀]] 중독자였다. --그게 그거긴 하다.--] 등의 별명으로 불리며 각성제로 널리 이용되었다. [[프랑스 침공]]에서 선두에 섰던 [[에르빈 롬멜]] 지휘의 제7기갑사단의 경우 사단장 직할 군수참모가 직접 3만 정의 페르피틴을 관리/보급하면서 72시간 동안 잠을 자지 않고 강행군을 했다. [[태평양 전쟁]]에서 [[일본 제국]]이 막장으로 치닫을때, [[카미카제]] 조종사들에게 출격 전에 마지막 술이랍시고 한 사발씩 따라주는 [[정종(사케)|정종]]에도 [[암페타민]]을 넣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굳이 특공대원들에게만 준 것이 아니며 실제로는 대부분의 군인들에게 막 뿌렸다. 군인들 뿐만 아니라 군수공장 직원들에게도 뿌렸고, 시장에서 아무나 살 수 있었기 때문에 수많은 민간인들도 구입할 수 있었다. [[연합군]]의 경우에도 '벤제드린(Benzedrine)'이라는 상표로 [[미군]]과 [[영국군]] 사이에서 불티나게 남용되었다. 폭격기 승무원들이 장기간 비행과 전투를 수행하기 위해서 지급 받아서 복용했고, 보병도 전투 직전에 두려움을 잊기 위해 복용하였으며, 생존용 비상식량 키트에도 생존 욕구를 증진시킨다는 목적으로 [[https://www.youtube.com/watch?v=DykpMcrVtR0&t=2m42s|포함시켰다]]. 일종의 비상용 부스터 같은 개념으로, 예를 들어 영국군 비상식량 키트에는 'Energy Tablet'이라는 명칭으로 포함되어 있으며 작은 종이곽에 '정상 병력에게는 주지 마라, 부상자에게는 먹이지 마라, 기력이 남아있는 한은 마지막까지 아껴라, 한계에 부딪치면 여명 때, 정오 때, 황혼 때처럼 하루에 시간을 나눠 먹어라' 등의 주의사항이 적혀 있다. 전후 때까지 군용품으로 남아서 미 공군의 [[베트남 전쟁|베트남전]] 당시 파일럿용 비상용품 키트에도 위와 동일한 주의사항과 함께 [[https://www.youtube.com/watch?v=mpjWg_Na8NE&t=224s|포함되어있다]]. 말 그대로 극한 상황용 [[스팀팩]]. [[소련]]에는 [[보드카]]가 있어서 잘 사용하지 않았다는 얘기가 있지만 당시엔 메스암페타민을 술보다 안전하고 효율 좋은 약으로 여겼다. 술도 폭음했는데 약을 안 먹을 리가 없다. 마약 성분이나 중독 등에 대한 우려는 무지로 인하여 자연스레 무시 당했다. 양이 적으니(30mg) 위험하지 않으리라 여겼던 것. 도리어 [[전투 자극제|병사들이 피로를 잊고 겁이 없어진다]]는 이유로 사용이 권장되었다. 해군 함정에서 야간 견시원들에게 지급하기도 했으며, 군대 밖 군수공장 야근 때도 사용하였다.[* 모 밀리터리 만화에서 전후 폐기 처분되는 항공기를 보면서 "히로뽕 맞아가면서 만든 비행기"라는 대사가 이런 의미이다.] 민간에서도 맨 위 짤에서 볼 수 있듯이 신문에 광고까지 해가며 각성제로 판매되었다. 당연히 전후에도 중독 피해가 심했으며, 당시의 사회 상황 때문에 일반 대중에게도 퍼져나가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고 한다. 이는 필로폰이 1951년까지 사실상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은 채 피로회복제로서 판매되었기 때문이다. 이걸 일본 정부가 금지시킨 게 그나마 1951년의 일. [[히로시마·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히로시마 원폭]]과 전후 [[일본]]을 다룬 [[맨발의 겐]]에 대략의 상황이 묘사되어 있다. 전후 [[독일]]에서는 일본보다 더 오래 상용되었는데, [[서독]]의 연방군과 [[동독]]의 [[국가인민군]] 모두 1970년대까지 페르피틴을 비상약으로 계속 비축해두고 있었고 평시에는 주로 [[공수부대]]의 강하 훈련 때 장병들에게 [[고소공포증]] 억제용으로 지급했다. 하지만 서독 정부측은 중독성과 후유증이 예상 외로 심하다는 것을 뒤늦게야 인정하고 금지 약물로 지정했다. 동독은 1975년까지 쾨니히스브뤼케의 제약 공장에서 국가인민군용 페르피틴을 생산했고, 1988년까지 공군 비행사들을 위한 비상약으로 지급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