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메이헴(밴드) (문단 편집) === 사타닉 서클의 결성과 [[유로니무스 살인사건]] === ||[[파일:count and euronymous.jpg|width=400]]|| || 카운트 그리쉬니크와 유로니무스 || 데드의 자살을 통해 자신과 블랙 메탈에 대한 악명이 높아지자 유로니무스는 전부터 준비하던 블랙 메탈 전용 레코드점을 [[1991년]] [[6월]], Helvete(노르웨이어로 '지옥'이라는 뜻)라는 이름으로 개장하는[* 유로니무스 사후, Helvete가 위치했던 공간은 한동안 빈터로 남아있다가 빵집이 자리잡았고 2013년부터는 일종의 관광 명소로 사용한다며 Helvete의 모습으로 다시 재건되었다. 현재는 Nosebleed 레코드점으로 운영 중.] 동시에 자신을 따르는 무리들을 규합해서 《사타닉 서클》이라는 조직을 결성, 본격적으로 절도, 묘지 훼손, 자신들과 방향성이 다른 뮤지션들에 대한 테러 행위 등의 [[범죄]]를 저지르기 시작했다. 헬해머가 회고하기를 평상시 유로니무스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를 믿게 만들고 조종하는 카리스마가 있었으며 특히, 사타닉 서클을 결성할 즈음에는 마치 ‘작은 폭군’ 같았다고 한다. 당시 헬해머는 검은 가죽 자켓을 입고 허리에는 총알 벨트를 두른 채 나이프를 차고 있는 유로니무스의 모습을 보며 "젠장 일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거야?"라고 생각했다 한다. 한편, 그전부터 유로니무스는 Old Funeral이라는 데스 메탈 밴드의 기타리스트이자 [[네오 나치]][* 1987년부터 스킨해드 패션과 [[네오 나치]] 활동을 시작한 카운트는 블랙 메탈씬에 나치즘을 제대로 도입한 인물 중 한 사람이었다. 1992년 발행된 네오 나치 단체 블러드 앤 호너(Blood & Honour)의 정규 잡지에서는 카운트가 존 88(Zorn's 88) 소속의 네오 나치이며 화이트 아리안 레지스탕스 (White Arian Resistance)에도 소속되어 있다고 밝히고 있다.]활동을 하던 [[바르그 비케르네스|카운트 그리쉬니크]]라는 10대 소년과 친했는데 Old Funeral에서 탈퇴하고 《사타닉 서클》에 가입한 것을 계기로 원맨 밴드 [[버줌]]을 결성한 카운트는 특유의 호전적인 성격을 바탕으로 유로니무스의 명령을 충실히 받들어서 범죄 행위를 가장 많이 저지르는 조직의 행동대장 역할을 수행했다. 사타닉 서클에는 일종의 계급제도가 있어서 범죄 행위를 많이 저지를수록 계급이 올라갔는데 행동대장 역할을 맡았던 카운트는 곧, 유로니무스에 이은 2인자가 되었다. [[1992년]]부터 유로니무스는 카운트의 영향을 받아 [[네오 나치]]가 되었고 카운트의 원맨 밴드 [[버줌]]이 앨범 녹음을 할 수 있게 카운트를 지원하며[* 버줌 1집에 수록된 의 후반부 기타 솔로는 유로니무스의 연주이다.] 카운트를 아예 자신의 오른팔로 키울려는 모습도 보이기 시작한다. [[1992년]]부터 사타닉 서클의 멤버들은 본격적으로 교회 방화를 시작했고 그 중심에는 유로니무스와 카운트가 있었다. 1992년 한해에만 무려 8건의 교회 방화가 일어났으며 노르웨이의 국보로 지정된 대형 교회들이 방화로 연이어 소실되었다. 이즈음 유로니무스와 카운트는 사타닉 서클의 일원인 기타리스트 Blackthorn(Snorre Ruch), 가끔 연락을 주고받던 [[헬해머]], 평소 유로니무스가 좋아하던 [[헝가리]]의 메탈 밴드 Tormentor의 보컬리스트로 활동했던 아틸라의 도움을 받아서 베르겐의 [[그리그]]홀에서 [[1992년]] [[6월 22일]]부터 [[6월 29일]]까지 메이헴의 데뷔 앨범 [[De Mysteriis Dom Sathanas]] 레코딩을 진행한다. [[1992년]] [[8월]]에는 [[Emperor|엠퍼러]]의 드러머이자 사타닉 서클의 멤버로서 유로니무스의 레코드점에서 점원으로 일하던 파우스트가 [[릴레함메르]](Lillehammer)의 한 술집에서 자신을 유혹한 [[게이]] Magne Andreassen을 공원으로 불러내어 무려 37번의 칼질로 무참히 살해했다. [[1993년]] [[1월]], 카운트는 블랙 메탈과 앞으로 발매될 메이헴의 데뷔 앨범을 홍보하기 위해 노르웨이의 대형 언론사인 Bergens Tidende지 기자와 인터뷰를 하게되는데 그는 인터뷰에서 "자신이 현재 진행되고 있는 교회 방화 사건의 용의자 중 한명이며 1993년 4월에 메이헴의 데뷔 앨범을 발표한 뒤, 앨범 표지처럼 노르웨이의 국보인 니다로스 대성당 (Nidaros Cathedral)을 폭파시킬 것"이라는 계획을 자랑스럽게 말했다. 이 내용을 들은 기자는 깜짝 놀라서 인터뷰를 마친 다음날 경찰에 카운트를 신고하였고 카운트는 경찰에 잡혀서 구치소에 수감된다. 카운트가 잡히자 유로니무스는 편지나 전화 등을 통해 "카운트에 대한 것이나 교회 방화 등에 대해 진술을 한다면 사타닉 서클로부터 피의 복수가 있을 것"이라고 동료 뮤지션들을 협박했다고 한다. ||[[파일:external/c1.staticflickr.com/6371963111_518bbcd373_b.jpg|width=450]]|| || Helvete를 찾은 유로니무스의 아버지. || || 왼쪽부터 아틸라의 부인 노라, 핼헤머, 유로니무스, 유로니무스의 아버지 || 카운트의 인터뷰를 통해서 그제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노르웨이의 각종 언론들은 본격적으로 사타닉 서클에 대해 취재를 시작하여 기사들을 내보내기 시작했다. 유로니무스의 아버지[* 유로니무스의 아버지 Helge Aarseth는 [[NRK]] 등 여러 미디어에 출연하였던 저명한 [[변호사]]이다. 그는 데드의 유족들이 인터넷에 올려져있는 데드의 시체 사진을 삭제하려고 시도했을 때 유족들을 직접 만나서 법적인 부분 등 자신이 도와줄 수 있는 부분에 한해서 아무런 사례금도 받지 않고 그들을 도와줬다고 한다.]는 사타닉 서클의 두목으로 지목된 유로니무스의 얼굴과 아들의 얼굴이 닮았다는 것을 발견하고 아들이 경영하고 있다는 레코드점을 직접 방문했고 유로니무스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서 아들에게 블랙 메탈 및 이와 관련된 것들을 그만두라고 설득했으나 유로니무스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자 자신의 아들이 테러리스트라며 경찰에 신고했다.[* 2012년에 노르웨이의 한 저가 항공사가 승객들에게 '노르웨이하면 떠오르는 유명한 인물'이라는 주제로 설문조사를 하고 1등을 한 인물을 자사의 비행기에 그려 넣겠다는 이벤트를 열었는데 유로니무스가 1등으로 선정되자 유로니무스 부모님의 요청으로 이벤트가 중지된 적도 있었다.] 그러자 유로니무스는 경찰의 수사망을 피하기 위해 Helvete를 폐쇄한 후 다른 사람들과의 연락을 끊고 잠적했다. [[1993년]] [[3월]] 카운트 그리쉬니크가 증거 불충분으로 구치소에서 풀려나자 유로니무스는 카운트가 전에 방화한, 노르웨이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인 판토프트 목조 교회(무려 12세기에 건축된 교회이다.)가 불에 탄 모습을 앨범 자켓으로 쓴 버줌의 새 EP인 Aske를 발매한다.[* 해당 교회는 12세기 교회 자체로서 의미도 있었던 건물이지만 세계대전의 화염 속에서 살아남은 건축물로도 의미가 있으며 목조 건축 양식을 찾아볼 수 있는 몇 남지 않은 노르웨이 건축물이었다.(다른 목조교회들은 세계대전 중 많은 수가 전소, 파괴되었다.) 우리나라에 비교하자면 반불교 세력들이 부석사 무량수전에 불을 지른 것으로 비유할 수 있다. 그 뒤 해당 교회는 1997년에 복원되었다.] 그러나 카운트는 구치소에서 풀려난 후 부터 "유로니무스는 단지 입으로만 블랙 메탈의 정신을 떠들뿐 행동으로 보여준 것이 전혀 없는 사이비"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고 자신이 블랙 메탈 씬을 이끄는 새로운 리더가 되어야한다고 판단했다. 그 결과 카운트는 유로니무스와의 연락을 일방적으로 끊은 후 본명을 크리스티안에서 Varg Qisling Larssøn Vikernes[* Varg(바르그)는 노르드어로 늑대(Wolf), 그 중에서도 특히 북유럽 신화에 나오는 펜리르나 스콜, 하티와 같은 마수에 가까운 괴물 늑대를 말하며(일반적인 늑대는 ulfr라고 한다) Qisling은 [[비드쿤 크비슬링]]의 이름을 본 딴 것이라고 한다. 바드쿤 크비슬링은 노르웨이 판 [[이완용]]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한마디로 노르웨이의 대표적인 [[매국노]].]로 개명한 뒤 새로운 레이블 Cymophane Productions을 창설하고 "나는 범죄행위에 직접적으로 가담하기는 두려워하고 동료 뮤지션들에게 이념을 주입시키기만 했던 겁쟁이 유로니무스와는 다르다. 나는 감옥까지 다녀온 행동파다."라고 주장하면서 노르웨이의 블랙 메탈 밴드들을 자신의 새 레이블로 데려가려는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이런 카운트의 행동을 본 유로니무스는 주변 동료들에게 "카운트를 납치해서 [[전기 고문]]하고 죽여버릴 것"이라는 등 카운트에 대한 분노를 표했고 노르웨이 내에서 카운트를 따르는 무리들이 점점 늘어나자 스웨덴의 블랙 메탈 밴드 [[Dissection]]이나 일본의 블랙 메탈 밴드 [[Sigh]] 등 카운트가 싫어하던 노르웨이 밖에서 활동 중인 블랙 메탈 뮤지션들을 적극적으로 밀어주며 카운트에게 대항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카운트는 자신과 같이 메이헴의 데뷔 앨범 제작에 참여했던 기타리스트 Blackthorn에게 유로니무스가 살고있는 Tøyen가(街)에 위치한 공동주택의 위치를 알아낸다음 [[1993년]] [[8월 10일]], 그곳에 찾아가 유로니무스를 무참히 살해했다. 당시 현장에서 발견된 유로니무스의 시체에는 '''칼로 찌른 자국이 23군데'''나 있었다고 한다. 게다가 카운트의 증언에 따르면 살려달라며 도망치는 유로니무스를 계속 찌르고 또 찔렀다고 한다. 일주일 후, 카운트는 [[노르웨이 경찰]]에게 붙잡혀서 살인, 방화, 강도 등의 혐의로 기소되었다. 노르웨이 사법부는 범행의 잔혹성을 고려하여 노르웨이 법정 유기징역 최고형량인 징역 21년을 선고했다. [* 훗날 [[노르웨이 연쇄 테러]]의 범인 브레이빅 또한 징역 21년을 선고받았다. 다만 카운트가 잡혔을 당시에는 무기징역이 있었기 때문에 예방적 구금 처분은 받지 않았다.] 카운트는 법정에서 묵비권을 행사하였고 모든 혐의도 인정되었지만 2년 뒤 교도소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갑자기 자신의 행위에 대한 정당성을 주장하며 유로니무스가 전화로 자신을 포함한 주위 사람들에게 살해협박을 자주 했으며 이에 따른 보복을 했을 뿐이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후 카운트의 인터뷰들을 보면 그 뿐만 아니라 자신이 교회를 방화했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하면서 자신의 범죄 행위에 대해 모두 정당방위를 주장하고 있어서 그의 주장이 어디까지 사실인지 알 수 없으며 노르웨이 법은 오히려 그의 주장을 가중 사유로 적용했다. 그러나 노르웨이 사회 특성상 일부 위험인물을 제외하면 징역형을 만기까지 채우거나 형기를 연장하지 않는 관행 때문인지 카운트는 16년 만인 [[2009년]] [[5월 24일]] 가석방으로 출소했다. 2014년 가석방 기간 종료 예정. 다만 범죄의 동기가 극도로 불순했던데다가 살인 방식의 잔혹함, 그리고 그 전의 국보급의 교회 방화, 사보타주 등의 혐의도 있어 전세계에서 입국 금지 블랙리스트에 올렸기 때문에 그 뒤에도 해외 입국은 불가능할 전망이라 지금까지도 유럽을 벗어나지 못하고있다. 이렇게 해서 블랙 메탈계의 구심점 역할을 했지만 인성이 엉망이었던 유로니무스의 생애는 25세로 끝나고, 각종 범죄 행위를 실천할만큼 호전적인 인성을 지닌 카운트는 20세라는 어린 나이에 살인자로 전락하여 사회에서 영구 추방당하게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