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메카 (문단 편집) ==== 9세기의 혼란 ==== 680년의 [[카르발라]] 전투 이래로 가장 많은 알리의 후손들이 살해된 786년 파크[* 그후 와디 파크는 앗 슈하다, 즉 순교자들이라 불리며 쉬아 무슬림들에게 성스럽게 여겨졌다.] 전투 이후 쉬아 준동은 한동안 메카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793년 칼리파 [[하룬 알 라시드]]가 순례하고 810년에는 식수 공급을 위한 수도교가 지어지는 등 압바스 조는 안정적으로 메카를 다스렸다. 그러나 9세기 중반 압바스 조의 쇠퇴와 함께 히자즈에 대한 그의 지배력도 약화되었다. 878년 아미르 알 핫즈로 임명된 하룬 이븐 무함마드 알 하쉬미는 도시와 순례자들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881/2년 메카는 아부 알 무기라 알 마크주미 휘하의 베두인 도적단의 공격에 직면하였다. 반격에 나선 하룬은 그를 격퇴하여 메카를 방어하는 데는 성공하였지만, 제다와 아인 무샤스 등이 파괴되는 것을 막지는 못하였다. 그로써 메카는 식수가 부족하게 되었고, 외부와 고립되어 빵값이 치솟게 되었다. 그와 함께 메카는 이집트의 툴룬 왕조와 이란의 사파르 왕조 간의 주도권 다툼의 장이 되었다. 이미 878년 압바스 조로부터 시리아를 장악한 이집트의 아흐마드 이븐 툴룬은 이슬람 세계에서 자신의 영향력을 키우고자 하였다. 동시에 그는 압바스 조로부터 이슬람 성지들을 관할하고 순례단을 보호하는 역할을 빼앗아 그와의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자 하였다. 881년 아흐마드는 메카에 이집트 기병대를 주둔시켜 자신의 이익을 대변하게 하였는데, 그들은 도착함과 동시에 사파르 왕조의 아미르 아므르에 충성하는 병력과 반목하였다. 양측은 하람 사원에 있는 선지자의 민바르 오른편에 각자 주군의 깃발을 두고자 경쟁하였고, 성지에서 칼까지 뽑아들었다. 전투가 벌어질 만한 일촉즉발의 상황에 총독 하룬이 자신의 잔즈 (흑인) 부대를 사파르 편에 배치하며 그들의 깃발이 민바르 옆에 계속 놓이게 되었다. 그 이듬해 칼리파 알 무타미드가 실권자인 동생 알 무와파크를 피해 툴룬 왕조령 이집트로 도피하려는 사건이 있었고, 그 후 아흐마드와 알 무와파크는 각자의 영토에서 서로를 공개 저주하는 신경전을 벌였다. 아흐마드는 더 나아가 알 무와파크에 대한 '[[지하드]]'를 선포하였고, 그와 함께 883년 재차 메카로 군대를 파병하였다. 무함마드 이븐 앗 사라즈와 알 가나위 휘하의 기병 5백과 보병 2천으로 구성된 툴룬 군대는 그 해 6월, 둘 힛자(순례의 달)가 시작되기 이틀 전에 메카에 당도하였다. 당시 총독 하룬은 부재하였고, 툴룬 군대는 여론의 지지를 얻기 위해 주민들에게 각각 2디나르(라이스들에겐 7디나르)씩 분배하였다. 5일 후, 압바스 장군 자파르 이븐 알 바가마르디가 2백의 기병과 메카에 입성하였다. 그는 비보를 접하고 돌아온 하룬과 합류하였다. 하룬은 120명의 기병과 2백의 잔즈 병력, 30명의 사파르 기병 및 친위대인 2백의 이라크 병력을 대동하였다. 이러한 750명의 압바스 군대는 [[호라산]] 출신 순례객들의 도움과 함께 전체적으로는 2배가 넘지만 기병 전력은 대동소이한 툴룬 군대를 향해 출격하였다. 메카 분지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툴룬 군대는 2백여 전사자를 내고 인근 언덕들로 도주하였다. 압바스 사령관 자파르는 적들이 남긴 20만 디나르 상당의 자금과 가축을 얻었고, 이후 이집트인들과 그에 동조한 메카 인들을 사면하였다. 전투 후 메카의 사원들에서는 아흐마드 이븐 툴룬에 대한 저주가 낭독되었고, 이 때문인지 아흐마드는 이듬해 병사하였다. 884/5년 메카에서는 하람 사원에 인접한 주바이다 빈트 자파르[* 알 만수르의 손녀이자 카이주란의 조카인 압바스 공주로, 바그다드-메디나-메카의 순례로에 인공 샘을 설치하여 존경 받았다.] 저택이 붕괴하며 카바를 덮쳤고, 순례객 10명이 사망하였다. 하룬과 카디 유수프 이븐 야쿠브는 바그다드에 이를 보고하였고, 섭정 알 무와파크는 보수를 명령하며 자금을 보내었다. 사원은 이듬해 복구되었고 하룬의 이름은 알 무와파크의 명패에 함께 기록되었다. 그러던 885년 3월 메디나 총독으로 부임한 아흐마드 이븐 무함마드 앗 타이는 굴람(맘루크) 바드르를 메카로 보내 순례를 감독하게 했는데, 도시에 도착한 바드르는 사파르 조의 대리인 유수프 이븐 아비 앗 사즈에게 감금되었다. 이에 순례객들과 현지 수비대가 바드르를 구출하고 유수프를 사로잡아 [[바그다드]]로 압송하였다. 이렇듯 불안정한 상황이 이어지던 중 891/2년 메카에서 벌어진 내분으로 총독 하룬은 --기존에 자신이 싸우던-- 이집트로 도주하였고, 그 후 메카는 사실상 [[무정부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