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메카 (문단 편집) ==== [[카르마트]]의 습격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메카 흑석.jpg|width=100%]]}}}||{{{#!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메카 검은돌.png|width=100%]]}}}|| ||<-2> 카바의 흑석 (ٱلْحَجَرُ ٱلْأَسْوَد, 알 하자르 알 아스와드). 카르마트의 탈취 후 부서졌다. 1956년의 묘사 || 9세기 말엽 이미 아라비아 반도는 제국의 변방으로 여겨졌고, 소외된 베두인들은 저항적인 쉬아 사상에 경도되었다. 그 중에서도 [[일곱이맘파]] 극단주의에 속하는 [[카르마트]]가 9세기 말엽 동부 아라비아를 장악하였다. 그 지도자인 아부 타히르 술레이만 알 잔나비는 이라크 습격에 이어 929년 '카바의 흑석에 대한 쉬르크로 물든' 메카 원정에 나섰다.[* 19세기 사우드 왕국의 와하비 군대가 메카를 점령하고 무함마드의 옛 집 등 많은 성소들을 파괴한 것과 비슷한 이유이다.] 진입 시도가 거부되자 그는 모든 무슬림이 메카를 방문할 수 있다는 것을 내세워 평화적인 순례차 왔음을 서약한 후 입성하였다. 930년 1월, 메카에 들어선 카르마트 군대는 순례자들을 학살하였고 사람들이 도주하자 카바 내부까지 말을 타고 들어가 그들을 추격하였다. 알 잔나비는 순례객들을 죽이며 쿠란 구절이나 시구를 인용하며 그들을 조롱하는 기행을 선보였다. 카르마트 군대는 무슬림들에게 성수로 여겨지던 잠잠 샘물을 순례자들의 시체로 틀어막았고, 카바의 문을 부수었으며 그 덮개를 찢었다. 이렇게 17일간 메카에 대한 학살, 약탈, 방화 및 파괴를 자행하여 '도시들의 어머니'를 핏빛으로 물들인 카르마트 인들은 카바의 흑석과 함께 본거지인 알 하자르(현재의 알 하사)로 돌아갔다. 이슬람 이전 자힐리야 시대에조차 살인이 금기시되었던 카바에서 일어난 학살극과 성유물인 흑석의 탈취는 [[수니파|수니]], [[시아파|시아]]를 불문한 전 무슬림 공동체의 공분을 샀다. 파티마 조의 칼리파 [[압둘라 알 마흐디]]마저 알 잔나비에게 꾸짖는 서신을 보냈을 정도였다.[* 같은 이스마일파였지만 이맘 계승을 놓고 대립하던 카르마트는 다수의 무슬림들에게 파티마 조에 대한 부정적인 인상을 심어주기 위해 히자즈를 점령하는 동안 기존의 바그다드 칼리파 대신 파티마 칼리파 알 마흐디의 이름으로 쿠트바를 진행하였다. 이로써 대중들이 메카에 대한 자신들의 만행이 파티마 조의 지시에 의한 것이었다고 여기게 하려는 속셈이었다(고 이스마일파 측에서는 주장한다).] 이슬람 최고 성지가 훼손된 것에 대해 칼리파의 의무를 다하지 못한 압바스 조의 무능함에 대한 성토와 함께 종말론적 사상이 유행하게 되었다. 칼리파 알 라디는 935년 이집트 [[이흐시드 왕조]]의 무함마드 이븐 투그즈에게 메카와 메디나의 지배권을 넘겨 자신 대신 순례의 안전을 보장하도록 하였다. 다만 카르마트에 대적할 만한 세력은 없던 이흐시드 조는 순례단을 해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그들에게 보호세를 바쳤다. 한편 알 잔나비는 핫즈 순례객들을 메카에서 알 하자르로 끌어오려는 의도로 자신이 세운 알 디라르 사원에 흑석을 안치하였는데, 대다수의 순례객들은 여전히 카바로 모여들었기에 실패하였다. 바그다드 조정은 흑석 반환의 대가로 5만 디나르의 보상을 약속했으나 거절되었다. 944년 알 잔나비가 사망한 후, 카르마트의 지도자가 된 아흐마드 빈 만수르가 952년 압바스 조의 막대한 배상금을 수용한 후에야 검은 돌의 반환이 추진되었다. 카르마트 인들은 포대에 싸인 흑석을 쿠파의 금요 사원에 말 그대로 던져두고 떠났다. 동봉된 쪽지에는 '명령에 따라 가져갔고, 명령에 따라 돌려놓는다'고 적혀 있었다. 32년 만에 메카로 돌아온 흑석은 일곱 조각으로 부서져 있었고, 도시의 금 세공인에게 맡겨져 은으로 된 실로 봉합된 후 다시 카바에 안치되었다.[* 이후의 수난으로 흑석은 현재 8조각이고, 일부 파편이 [[이스탄불]]의 술탄 아흐멧에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그 후에도 966년 메카 순례에 나선 카라반을 습격하는 등 카르마트는 11세기까지 주류 이슬람권에 대한 테러를 지속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