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메카 (문단 편집) ===== 예멘 카심 왕조의 침공 ===== 이후 마수드 이븐 이드리스가 옹립되었으나 1630년 9월 병사하였고, 그는 알 무알라 묘지의 카디자 영묘 한 켠에 안장되었다. 3달 후 아슈라프 회의는 아부 누마이 2세의 후손들 중 원로였던 압둘라 이븐 하산이 샤리프로 선출하였다. 하지만 고령이었던 압둘라는 1631년 아들 무함마드와 종손 자이드 이븐 무흐신을 공동 후계자로 임명하고 사임하였다. 이듬해 사망한 그는 부친 하산의 돔형 영묘에 합장되었다. 한편 예멘에서 오스만 제국을 축출하며 자신감을 얻은 자이디 이맘 알 무아야드 무함마드는 1632년 초엽 북쪽 방면 팽창을 위해 코르 마흐무드와 알리 베이 휘하의 1천 병력을 히자즈로 파견하였다.[* 혹은 예멘에서 내분을 겪고 축출된 병력이 정말로 이집트 망명을 위해 북상한 것이라고도 한다.] 메카에서 남동으로 2백여 ㎞ 떨어진 알 쿤푸다에서 샤리프위를 주장하던 나미 이븐 압둘 무탈립과 연합한 자이디 군대는 이집트로 향하는 길이라며 메카에 입성하려 하였고, 거부 당하자 공격해 점령하였다. 공동 샤리프 무함마드와 자이드는 오스만령 제다 총독 무스타파 베이와 반격에 나섰으나 3월 17일 와디 알 비야르에서 패배하였다. 수백에 달하는 전사자 중에는 무함마드와 무스타파 베이도 있었고, 자이드는 잔여 아슈라프와 함께 와디 마르 앗 자흐란으로 철수하였고 나미는 자이디 군대와 함께 메카에 입성하였다. 그 후 자이디 군대는 메카와 제다를 약탈하였다. 한편 메디나로 피신한 자이드로부터 비보를 전해들은 오스만령 이집트 총독 할릴 파샤는 수륙 양면으로 3500의 병력을 파견하였다. 자이드는 메디나의 외항인 얀부에서 이들과 합류하고 함께 남하하였다. 이에 6월 말엽 나미와 자이디 군대는 메카를 탈출해 동쪽 120㎞의 투르바 성채에 틀어박혔다. 자이드와 오스만 군대는 핫즈를 행한 후 투르바를 포위, 우물 근처에 복병을 설치하였고 물을 기르러 온 적군을 격파해 2백여 명을 전사시켰다. 투르바는 7월 29일 함락되었다. 일반 병사들은 예멘으로 돌려보내졌으나 나미, 코르 마흐무드 등의 주요 포로들은 메카로 압송되어 논의 끝에 알 무다아에서 교수형에 처해졌다. 한편 17세기 메카는 몇 차례 홍수에 시달렸다. 1630년의 홍수 때에는 카바가 붕괴되었고, 이는 6년 후에야 복구되었다. 1680년의 홍수 때에는 100명이 익사하는 피해를 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