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메카 (문단 편집) ==== [[사우디아라비아]] ==== 1924년 9월 24일의 타이프 함락 이후 10월 6일 후세인은 유지들의 충고에 따라 메카를 떠나 제다로 피신, 아들 알리를 히자즈 국왕이자 샤리프로 선포하였다. 메카 진격을 망설이던 압둘 아지즈는 후세인의 양위 및 이후 마음을 굳혔다. 성지를 '해방'시키겠다는 종교적 열의로 무장된 이크완 부대를 앞세운 5천의 사우디 군대는 12월 5일 별 저항 없이 메카에 입성하였다. 당시 메카에는 1천의 병력과 5대의 무장 차량, 심지어 한 대뿐이긴 했지만 [[비행기]]까지 있었음에도 지도자가 없이 사기가 바닥에 떨어져 있던 수비대는 그대로 붕괴되었다. 사우디 군대는 키슐라 무기고를 접수하고 제다를 포위하였다. 1925년 12월, 10개월의 포위 끝에 영국의 중재로 제다마저 항복하였고, 샤리프 알리는 이라크로 떠나며 헤자즈 왕국(하심 칼리파국)은 9년 만에 멸망하였다. 그 후 압둘 아지즈는 히자즈의 왕을 칭하였고, 네지드 술탄국은 1926년 1월 히자즈-네지드 왕국으로 개편되었다. 당시 메카의 인구는 약 6만으로, 전쟁 전의 8만에 비해 크게 감소한 상태였다. 히자즈-네지드 왕국은 1932년 현재의 사우디아라비아 왕국으로 개편되어 오늘날에 이른다. 와하비 세력은 메카의 많은 이슬람 유적들을 파괴하였고, 동시에 시가지를 확장해 주변 마을들을 도시에 포함시켰다. 사우디 지배기 동안 카디자와 아부 바크르의 집, 무함마드의 탄생지, 오스만 시대의 아즈야드 성채 등 많은 유적들이 순례를 위한 시설 건설이란 미명 하에 파괴되었다. 1962년 메카에서는 공식적으로 노예제가 금지되었고, 1964년에는 하람 사원이 확장되었다. 같은 해 [[미국]]의 무슬림 흑인 민권운동가 [[말콤 엑스]]가 순례차 방문하여 화제가 되었다. 그러던 1973년 메카 도시 계획이 되며 비약적인 발전이 개시되었고, 이듬해 이구는 37만에 이르렀다. 한편 1979년 [[이란 혁명]]의 여파로 자칭 [[마흐디]]와 그 추종자들이 순례객들을 인질로 잡고 TV 방송 중단, 비무슬림 추방 등을 요구하며 하람 사원을 점거하는 사건이 있었다. 특수부대의 진압 끝에 수백 명이 사망하고 그때까지 생존한 마흐디 일당은 공개 처형 당했다. 1987년에도 시아 순례객들의 시위로 수백 명이 사상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