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메카 (문단 편집) === 초기 === 메카는 '잠잠((Zamzam)의 샘'이라는 수자원을 가지고 있는 [[오아시스]] 도시로 물이 부족한 [[아라비아]]에서 일찍부터 도시가 형성됐다. 고대부터 [[인도양]] 바다를 따라 전해져오는 남아라비아, 인도, 동아프리카의 물산이 [[홍해]] 연안을 따라 북상하면서 거쳐가는 교역 루트에 속해 있었다. 6세기 이슬람교가 퍼지기 직전의 상황을 보면 [[실크로드]] 등 유라시아 내륙의 교역로가 [[동로마 제국]]과 [[사산 왕조]]의 오랜 다툼으로 위협받자 비교적 안전한 메카 방향이 각광받는 중이었다. 도시 중심부에 있는 [[카바 신전]]은 그렇게 여기저기서 모여든 사람들이 믿었던 [[고대 아랍의 신들|다신교]]의 여러 신들을 모시는 장소였다. 메카에 얽힌 얘기로는 [[아브라함]] [* [[아랍어]]로는 이브라힘이다.]과 그 아들 [[이스마엘|이스마일]]이 유명하다. 아브라함의 장남이던 이스마일은 뒤늦게 아들을 얻은 아브라함의 첫 부인 사라의 질투로 어머니 하갈과 함께 파란의 광야에 버려졌다. 수 일간 물을 마시지 못해 죽어가는 이스마일을 살리기 위해 하갈은 샘을 찾아 사파와 마르와 언덕 사이를 7바퀴나 돌았고 노력을 가상히 여긴 하나님은 이스마일의 발 밑에서 잠잠 샘물을 솟게 하였다. 이후 모자는 그 부근에서 살았고, 후에 그들이 잘 지내고 있음을 확인한 아브라함은 [[사막]]에서 [[운석]]을 구해와 이스마일과 함께 제단을 쌓고 감사 예배를 올렸다. 이것이 오늘날 카바의 시작이라고 전해진다. 그 후로 이스마일은 아브라함과 같이 살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그 아들 이스마일을 제물로 바치라고 명했고, 이에 순종하는 아브라함을 본 하나님은 이스마일을 구한다. 이때 아브라함이 그 아들을 바치러 간 곳이 바로 메카라는 것이다.[* 기독교에서는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바치러 [[팔레스타인]]의 모리아 땅, 혹은 [[예루살렘 성전]]터로 향했다고 여긴다.] 이슬람 이전에도 메카의 카바는 [[아랍인]]들의 순례지였고, 그곳에서는 싸움이 금지되었다. 이스마일 시대 이후 메카는 그를 도왔던 [[예멘]]계 자르함 부족이 다스렸다. 하지만 자르함 부족이 순례로 인한 수익을 독점하면서도 카바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자 서기 2세기 중반 무렵 북부 아랍계인 쿠자아 부족이 그들을 축출하고 집권하였다. 자르함 부족은 예멘으로 떠나며 잠잠 샘물을 메우고 장신구 등을 묻었다고 한다. 한편 쿠자아 부족 역시 곧 [[시리아]]에서 들여온 후발 우상을 카바에 안치하고 아브라함과 이브라힘의 우상 및 초상화를 걸어놓았다. 이들은 630년 무함마드에 의해 예외 없이 파괴되었다. 5세기 중반 이스마일의 후손인 쿠라이쉬 부족의 쿠사이 이븐 킬랍이 쿠자아 부족의 지도자 할릴 이븐 하바쉬야의 딸과 결혼하였고, 장인의 사후 쿠데타를 일으켜 집권하였다. 다만 바크르 부족의 타협으로 쿠자아 부족은 쿠라이쉬 부족에 복속하는 대가로 메카 행정에 관여할 수 있었다. 쿠사이는 카바 북쪽에 다르 나드와(의사당)를 세우고 자신이 그 의장이 되었다. 그는 그 외에 군사령관, 대상 지휘, 카바 관리, 순례객 보급 등 전권을 장악하였다. 쿠사이의 사후 그의 차남 마나프가 계승하였다. 마나프의 사후 장남 하심, 동생 아브드 샴스, 다시 하심의 아들 압둘 무탈립이 집권하였다. 이 시기에 아랍인들은 의복이 부족할 시 남자는 알몸으로, 여자는 하체만 가린 채로 카바를 참배했다고 전해진다. 한편 쿠란에도 언급되었듯 523년 남부 아라비아의 나즈란에서는 [[유대인]] 군주 유수프 두누와스가 개종을 거부한 [[기독교]]도 2만 명을 학살하는 참극이 있었다. 그에 대응한 [[에티오피아]]의 악숨 왕국은 525년 예멘을 정복하였고 사나에 카바를 모방한 신전을 세워 순례객들을 끌어오려 시도하였다. 이에 일단의 메카인들이 '새로운 카바'에 잠입하여 용변을 봄으로써 그곳을 더럽혔다. 분노한 예멘 총독 아브라하는 570년 기존 카바를 파괴하기 위해 [[코끼리]] 부대를 앞세워 메카로 진군하였으나, 쿠란에서 기적으로 묘사된 폭풍과 역병으로 철수하였다. 같은 해 메카에서는 압둘 무탈립의 손자인 무함마드 이븐 압둘라가 탄생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