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명당(영화) (문단 편집) == 줄거리 == * 전반부 : '''장동 김씨의 조선 왕가 능멸기'''[* 영화 내에서의 장동김씨 일가의 만행은 과장이 있는 편으로, 실제 역사가 작품 내에 그대로 반영된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왕릉에 자기 선친을 몰래 묻는 것. 이건 그냥 자기 가문 멸문시켜 달라고 비는 꼴이다. 그만큼 그런 짓은 장동김씨들 스스로가 자신들의 세도를 끝장 낼 빼도박도 못 할 명분을 만들어주는 짓이기 때문에 영화 진행을 위한 소재라고 봐야 한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참고.] 오프닝은 내의원에서 올린 탕약을 마신 [[효명세자]]가 피를 토하며 죽는 것으로 시작한다. ~~시작부터 조선 왕 독살설이...~~ 이후 [[순조]]가 대소신료들 및 지관들의 말에 따라 명당 자리에 효명세자의 능을 조성하려는데 지관 하나가 이곳은 흉지라며 강력히 반대한다. 그러나 나머지 신료들과 지관이 모두 명당이라 주장하여 결국 효명세자는 이 자리에 묻히게 된다. 장면이 바뀌고 간언을 올린 지관 박재상의 집에 친구 구용식이 찾아온다. 술을 주고받던 용식과 재상은 집에 변변한 화장실이 없어 뒷산에 올라 소변을 보고 있었는데 그 사이 장동 김씨가 보낸 사병들이 그의 집을 불태우고 가족들을 참살한다. 뒤늦게 달려온 재상은 크게 울부짖고... 13년이 흐른다. 박재상은 용식과 함께 지관일로 영업을 하며 돈을 벌고 있으면서도 그렇게 모은 돈을 활용해 장동 김씨의 묘 위치들을 알아내려 노력하였으나 성과가 없었다. 그리고 김좌근은 자신이 뒤를 봐주는 지관 정만인과 함께 자신의 가문이 천년만년 권세를 누릴 대명당을 찾는데[* 여기서 정만인이 지도로 [[내곡동(서울)|경기도 언주면 안골]], [[서초동|서리풀마을]], [[도곡동|독골]], [[양재동|말죽거리]]를 '''지금은 볼품없어 보이나, 후대에는 천년의 황금과 권력을 쌓을 땅'''이라고 지목하는데, 여기가 전부 지금의 강남 지역이다.], 문제는 그 명당자리가 왕릉을 비롯한 왕실의 땅이라는 점. 그래서 김좌근은 그 땅을 빙 둘러 자신의 땅으로 만들고 원래 살던 거주민들을 모조리 쫓아내지만, 왕은 분노만 할뿐 신하들이 모두 김좌근의 사람들이라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장동 김씨의 묫자리를 찾던 박재상은 기생집에서 돈을 쓰며 기생들에게 그 부탁을 했지만, 이를 알고 온 기생집 대방 초선이 '''김좌근 대감이 우리 집 최고의 단골인데 우리 애들 경 치게 만들 일 있느냐'''며 쫓아내기도 했다. 그러던 중 지관의 집에 찾아와 느닷없이 장동 김씨의 묫자리를 알려달라는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상갓집 개, 파락호인 몰락한 왕족 [[흥선대원군|흥선군]][* 초반부 흥선군이 김좌근의 생일잔치 때 집에 찾아가 먹을 걸 달라고 소란을 부릴 때, 초선이 음식을 땅에 던지며 핥아먹어보라고 능욕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사실 이 둘이 서로 짜고 의도한 것이었다.]. 둘은 타도 장동 김씨의 대의하에 서로 협력하고 친구사이가 된다. 박재상은 흥선군, 그리고 흥선군과 함께 온 왕족 이원경을 통해 국왕[* 선왕 순조의 세손으로서 왕위에 오른 헌종.]에게 장동 김씨의 수작으로 효명세자가 흉지에 묻혀 있다고 고하고, 바로 그 옆의 명당에 김좌근의 아버지 김조순이 묻혀 있을 것이라고 한다. 이를 들은 왕은 내금위 병사들을 대동하고 나아가 야밤에 부친의 묘를 파묘했는데, 관 안에 물이 차 있고 뱀들이 있었으며 시신이 물에 잠겨 썩어 있는 반면, 박재상이 명당이라 지목한 곳을 파보니 김조순이 묻혀 있었다. 이 사실을 궁녀를 통해 들은 김좌근은 자신에게 책임을 넘기며 발을 빼려는 다른 관료들을 모조리 숙청한 후 입궐하여 죄를 청하였는데, 말이 죄를 청하는 것이지 자신의 수족들을 모두 대동하여 사실상 [[반역|국왕을 협박하는 셈]]이었다. 결국 왕은 김좌근의 제안을 받아들여 조용히 아버지의 묘를 이장하는 데에 그쳐야 했다. 이후, 박재상과 흥선군은 단순히 김조순의 묘만이 아니라 장동 김씨의 가묘들을 모두 찾아야 한다고 결심했는데, 이때 김좌근의 집안 내부를 알려준 인물이 바로 기생집 대방 초선. 초선의 부모는 장동 김씨의 횡포에 땅은 물론 목숨까지 잃었고 갈 곳이 없는 그녀를 흥선군이 도와주어 오늘날 초선에 이르게 된 것. 초반부 박재상을 기생집에서 내쫓은 것도 박재상이 너무 티 나게 정보를 모으고 있어서였고, 그런 박재상을 눈여겨보고 흥선군에게 알려준 이도 그녀였다. 이후 박재상은 아버지의 새로운 묫자리를 찾으려는 김좌근의 시험에 일부러 응시한 다음, 숨겨진 보물고에서 묘도를 찾아내는 데에 성공한다. 그리고 충격적인 사실이 드러나는데, '''장동 김씨의 조상묘들은 왕릉이었다!''' 장동 김씨는 왕릉을 파묘한 다음 국왕의 관 위에 조상들의 관을 암장하고 다시 봉분을 덮은 것이다. 이 충격적인 사실에 박재상과 흥선군은 더더욱 장동 김씨를 파멸시키리라 다짐하고, 이 사실을 글로 써 화살에 묶어 국왕에게 전달한다. 분노한 국왕은 즉시 내금위 병력을 이끌고 백주대낮에 김좌근의 집으로 쳐들어간다.[* [[조모(삼국지)|조모]]와 [[우왕]]의 실화를 모티브 삼아 묘사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김좌근은 국왕에게 '''조카 왔는가?'''라며 빼도박도 못할 반역죄를 저지르는데, 국왕이 너의 왕이니 어서 무릎을 꿇으라고 호통을 치자 오히려 "병사들을 믿고 그리 까부는 것이냐? 너의 병사 같으냐?"라고 비웃는다.[* 이 장면에서 헌종을 맞이하는 김좌근은 일반적으로 신하가 단상에서 내려와 절을 해야함에도 그대로 대청 위에 뒷짐을 지고 서 있다. 자신을 왕이나 다름 없는 존재로 인지하고 있는 것은 김좌근의 비밀 서재를 들어갔을 때도 알 수 있는데, 그곳의 병풍이 일월오봉도이다. 역사 지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병풍이 현재 궁궐에 놓여 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 즉 왕의 권위를 상징하는 물건을 자신의 집에 놓은 것.] 그와 동시에 대동하고 온 내금위 병력들이 일제히 칼을 뽑아 '''국왕에게 겨눈다!''' 망연자실한 국왕은 결국 김좌근에게 무릎을 끓었고, 김좌근은 국왕이 미신에 미혹되어 나라를 망친다고 책망한 다음 왕비 뱃속 세자의 안위를 운운하며 협박을 한다. 결국 국왕은 이 협박에 굴하였고, 장동 김씨의 묘도를 훔친 죄를 홀로 진 이원경[* 묘도를 훔쳐 탈출하는 과정에서 안경(당대 표현으로는 애체)을 떨어트려 그것이 증거가 되었다.]이 고문을 받다 죽는다. * 후반부 : '''이대천자지지(二代天子之地)의 주인 싸움''' 한편, 장동 김씨에서도 김조순의 새로운 묫자리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때문에 장동 김씨가 극비로 보호하고 있던 지관 정만인에게 다시 연락하여 새로운 명당 자리를 달라 요구하는데 정만인은 '''이미 김조순의 시신은 파묘하여 다시 꺼냈기 때문에 부정을 탔다.'''며 그 부정을 덮을 강력한 기운을 지닌 명당 '''이대천자지지'''를 이야기한다. 이 사실은 초선을 통해 박재상과 흥선군 측에도 흘러 들어가고, 흥선군은 그게 사실이냐며 자신은 정확히 알아야겠다고 박재상을 채근한다. 그러나 재상은 '''전국을 둘러보았어도 이대천자지지는 없었다'''고 단언한다.[* 사실 어느 곳인지 이미 알고 있었으나 이 대 후에는 [[경술국치|나라가 망하는 흉지]]임을 알고 있었기에 이야기하지 않은 것.] 박재상은 뒤이어 초선과 김병기를 통해 직접 정만인을 만나러 간다. 정만인은 재차 방문한 김병기에게 '''김조순의 시신이 너무 부정을 타 이대천자지지에 매장해도 효과가 없다'''며 '''아예 새로운 인물을 매장'''하고 직접 왕이 되라고 권유한다. 즉, 김병기에게 패륜을 권한 것. 동시에 초선에게는 입을 조심하면 왕후가 될 상이라면서도 입 때문에 망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지관이라면서 관상도 볼 줄 아네~~[* 조선시대 설화를 보면 토정 [[이지함]]처럼 도인들이 관상이나 점복, 풍수지리 등 한가지에 국한되지 않고 여러 술수에 능하다는 설정은 하나의 클리셰이다. 아무튼 정만인이 왕실을 능멸한 김좌근의 죽음을 유도했다는 것을 들어 사실 얘가 진짜 충신이라는(...) 드립도 흥했다.] 김병기 일행이 떠난 직후, 초선을 미행하던 흥선군 일행은 전격적으로 정만인의 거처를 급습, 그를 납치한다. 정만인의 말을 따라 김좌근이 잠이 든 사이에 그를 목졸라 죽인 김병기도 정만인이 납치된 사실을 알고, 초선을 고문하였으나 초선은 자결을 택하고, 이를 바라보며 애써 모르는 체하던 흥선군은 돌아와 정만인을 다그친다. 여기서 밝혀지는 반전은 애시당초 흥선군의 목적은 장동 김씨 파멸이 아닌 '''자신의 권좌'''였다는 것이다.[* 이미 복선이 대놓고 등장했었다. 흥선군의 집을 방문한 박재상이 [[고종(대한제국)|자신의 아들]]에게 전하라고 부르며 용포와 익선관을 씌워준 흥선군을 목격했기 때문. 흥선군은 자신이 왕족 대우를 못 받은 게 한이 되어 자기 아들이라도 왕족의 품위를 잃지 말라며 애지중지하는 것이라고 둘러대지만 실제 역사를 아는 사람들 눈에는...] 물론 자신이 권좌를 차지하려면 현 권력자인 장동 김씨도 파멸시켜야 하긴 했으니 장동 김씨 파멸에 뜻을 둔 박재상과 손을 잡았던 것. 그리고 정만인은 '''이제야 말이 통하는 상대를 만났다'''면서 흥선군과 함께 이대천자지지로 향하고, 박재상은 이를 말리려다 실패하고 만다. 뒤늦게 이들이 있는 곳으로 온 김병기는 남아있던 박재상을 다그쳤고, 박재상은 말하지 않았으나 함께 있던 구용식이 살기 위해 이대천자지지의 위치를 실토한다.[* 관상에서 중대한 비밀이 지켜지지 않고 끝내 믿었던 내부 조력자의 발설로 일을 그르치게 된 장면의 오마주.] 이후 김병기와 함께 이대천자지지로 향한다. 이대천자지지는 바로 천년사찰 가야사. 땅의 강력한 기운을 막기 위해 과거 사찰을 지었던 것이다. 흥선군 일행은 승려들을 모두 내쫓은 다음 불을 지르려 하고,[* 야사에 따르면 사실 이렇게 막무가내로 방화한 건 아니고 값을 치러 땅을 샀다고 한다. 그리고 다른 설에 따르면 가야사가 아닌 묘암사라는 다른 절이라고도 한다.] 간발의 차로 도착한 김병기 일행이 이들을 막아서며 결전이 벌어진다. 그리고 김병기와의 대결에서 승리한 흥선군이 최종적으로 이대천자지지를 차지하고, 김병기는 '''그렇다면 현재 왕의 묘는 내 맘대로 하겠다'''고 하며 흥선군의 동의를 받아낸다. 바로 그 순간, 김병기의 사주를 받은 의관들에 의해 헌종이 독살되었고 이미 무력한 왕에 실망한 흥선군은 이를 묵인한다. 박재상은 친구라 믿은 흥선군에게 마지막으로 사정하며 '''[[고종(대한제국)|2대에 걸쳐]] [[순종(대한제국)|왕이 나오지만,]] [[경술국치|그 뒤엔 어떻게 될 것 같은가? 그곳은 나라를 망하게 할 흉지란 말일세!]]'''라 절규하지만 흥선군은 이를 귀담아듣지 않는다. * 에필로그 가야사를 불태운 흥선군이 그 자리에 [[남연군]]의 묘를 쓴다. 그 옆에서 땅과 묘에 대한 설명을 하던 정만인은[* 석 자보다 깊이 회반죽을 두르고 관을 묻었으니 아무도 묘를 해치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실제 역사에서도 회반죽 덕분에 [[오페르트 도굴 사건]]이 발생했을 때, 도굴꾼들이 남연군의 유해를 훔치는데 실패했다.] '''이제 제가 나리의 와룡봉추 아닙니까?''' 하며 말을 완전히 갈아탔음을 선언하지만, 흥선군은 정만인에게 '''자네의 조상님들 자리는 명당인가?'''라고 묻는다. 그 직후 천하장안이 휘두른 쇠몽둥이에 머리를 강타당한 정만인은 죽고 그 시체는 강에 버려진다. ~~기생 관상은 잘 보는 양반이 흥선이 관상은 볼 줄 모른다.~~ 그리고 훗날, ~~철종은 스킵하고~~ 새로운 임금이 즉위하고 흥선군은 [[대원군|그 아비]]로서 권좌에 오른다. 그러나 박재상의 말대로 2대만에 장손이 끊기고(자막이 나온다) [[경술국치|나라도 망했다]].[* 실제로 순종은 자신의 황후에게서 아들을 얻지 못했다. 그 대신 고종의 총애를 받던 엄귀비의 아들인 [[영친왕]] 이은이 황태제로서 훗날 순종의 뒤를 이어 이왕가의 수장이 된다. 그러나 실권은 전혀 없었고 일본 제국의 패망전까지 일본에서 거주해야만 했다.] 한편, 실의에 빠진 박재상의 집에 '''김병기가 찾아왔다.''' 담담하게 복수를 하고 싶다면 내 몸뚱이밖에 내 줄 게 없다는 박재상에게 김병기는 '''자네도 흥선군에게 복수를 해야 하지 않겠나?'''며[* 이런 제안이 가능했던건 김병기가 과거에 자기들이 조져놓은 말단 지관이 박재상이란 걸 몰랐기 때문이다. 효명세자 묘를 정할때 잠깐이나마 얼굴을 마주한 김좌근도 13년이나 지나서 기억해내진 못했는데 김병기는 멀찍한 산기슭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어 박재상의 얼굴을 아예 본적이 없다.] 아버지 묫자리를 알아봐달라 청하고 박재상이 정해준 곳에 김좌근을 모신다. 한편 재상과 용식은 이제 사람을 묻을 곳이 아니라 사람을 살릴 터를 찾으러 가자며 홀연히 떠난다. 십수 년 뒤, 하루가 다르게 기울어가는 가세에 김병기는 여러 지관들을 불어모아 아버지의 묫자리를 봐달라고 한다. 지관들은 묫자리를 보고 당황해하더니 묫자리는 '''물이 흘러 관이 부서지거나 심하면 시신이 유실될 곳'''이라고 말한다. 지관들의 말에 크게 놀란 김병기는 수하들을 시켜 묘를 파보았으나 지관들의 말처럼 관은 없어져있었다. 김병기는 더 깊게 땅을 파보라며 소리를 지르지만 이미 늦은 일이었고 이렇게 박재상은 장동 김씨에 대한 복수를 마무리한다. 다시 기나긴 세월이 흘러, 경술국치를 지나 [[일제 강점기]]가 흘러가고 있는 때 양복 차림의 젊은 [[이회영|남성]] [[이시영(정치인)|둘이]] 노년의 박재상을 찾는다. 이들은 '''[[신민회|잃어버린 나라를 되찾기 위해 젊은이들을 가르칠 학교]]'''를 세우려 한다며 명당 자리를 찾아봐달라 하고, 박재상은 지도에서 간도 땅을 가리키며 가장 적지라고 추천한다. 이때 박재상의 곁에 끝까지 옆에 있던 구용식은 이야기를 듣고서 그들에게 그동안 모은 재물과 땅문서를 학교 짓는 데 쓰라고 건네주며[* 재물과 자기 삶을 중시한 구용식의 변화된 인물상을 보여준다. 친구의 변화에 박재상도 미소를 지었다.] 학교 이름도 지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한다. 박재상은 '''새로운 기운이 흥하는 곳'''이라며 학교 이름을 [[신흥무관학교|'''신흥''']]이라고 지어준다. --이 영화의 에필로그는 [[경희대학교]]의 설립사였던 것이다--[* 다만 신흥무관학교의 후신인 경희대학교는 [[동대문구]] [[회기동]]에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