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명예살인 (문단 편집) == 토착문화의 잔재 == 깊게 살펴보면 명예살인은 그 지방의 토착 문화가 원인으로, 명예살인이 가장 심각한 나라는 바로 [[유럽]]의 [[알바니아]]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명예살인은 탈리오다. 여성에 대한 명예살인은 아래의 지도가 보여주듯이 극도로 반대하는 편이다. [[알바니아]]는 기본적으로 무슬림의 비중이 높고 이슬람의 종교적 영향이 강하지만 이슬람권에서는 가장 종교색이 옅은 국가에 속한다. 대대적인 세속주의 정책을 폈던 현대 [[알바니아]]의 유일한 군주인 [[조구 1세]][* 세속주의 정책을 확실하게 추진하고자 왕명도 [[이슬람]]스러운 이름인 아메드(=아흐메트)라는 본명 대신 성씨인 조그에서 따온 [[조구 1세]]로 정했고, [[헝가리]] 태생의 [[가톨릭]] 신자를 왕비로 맞았을 정도였다. 더욱이 조구 1세는 전직 총리의 딸과 한 약혼을 깼다가 본인이 살해 위협에 시달렸다. '''왕인데도.''']와 공산화와 함께 집권한 후에 강력한 [[국가 무신론]] 정책을 폈던 [[엔베르 호자]] 때문이다. 알바니아에 사는 비무슬림인 기독교인들도 명예살인을 저지르는데, 이것이 '[[카눈]]'이라고 불리는 악습이다. 이러한 행위의 원칙의 가장 기본 골자가 '''모욕은 피로, 피는 피로'''다. 그 덕분에 한 집안이 몰살당하는 사태도 벌어지기도 하며, 아직도 만여 세대에 달하는 알바니아의 집안이 카눈 때문에 [[현실]]에서 FPS를 찍는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를 소재로 [[영화]]도 만들어졌다. [[https://munjang.or.kr/archives/167896|이스마일 카다레의 부서진 4월]]. [[http://imbbs.imbc.com/view.mbc?type=prev&list_id=1742482&bid=w_bodo&page=3|카눈의 유래]]. 더 황당한 건 이 사건의 원인 중 적지 않은 수가 '''사소한 다툼'''에서 시작한다는 것이다. 알바니아에서 서로 다른 집안의 남자 둘이 가볍게 말다툼을 하다가, 한쪽이 다른 쪽을 '''살짝 밀쳤다.''' 그 때 받은 수모를 못 잊겠다고 그 남자의 형제 '''둘을 죽였다.''' 거기에 말리던 [[경찰]]까지 쏴 죽여서 그 경찰의 아들이 와서 가해자와 식구까지 여럿 살해하면서 그야말로 [[복수]]가 여러 곳으로 퍼졌다. '''원수를 갚기 전에 죽을까봐''' 가족들을 집에 감금하고 원수가 돌아오길 기다리는 집도 있다고 한다. 명예살인의 가장 극단적인 예다. 명예살인의 양태도 그 문명화 정도에 따라 차이가 있다. 문명화의 정도는 인권의 보장과 밀접한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파키스탄]]이나 [[아프가니스탄]]과 같이 사람들이 작은 단위로 나뉘어 제대로 통제되지 않는 소규모 조직 사회를 갖추고 있는 경우 명예살인은 매우 음험하고 폐쇄적으로 자행된다. '''[[동성애]]자 혹은 성폭행을 당한 여성은 [[자살]]해야 하며 자살하지 않을 경우 가족이 죽이는 것이 불문율'''로 되어 있는 파키스탄이 그 예. 심지어는 부모의 허락도 없이 외간 남성을 만났다거나 외간 남성에게 말을 걸었다던지 타 종교로 [[개종]]했다는 이유만으로도 명예살인을 당하는 경우도 자주 있다. 비슷한 예로 무크타르 마이라는 한 파키스탄 여성의 사례가 있다. 무크타르의 남동생이 유부녀와 놀아났다는 이유로 그 유부녀의 남편이 자기 가족과 친구들을 대동하고 집에 쳐들어와서 도망친 남동생의 행방을 묻다가 무크타르를 [[윤간]]하는 끔찍한 사건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 일은 당시 그 지방에서 매우 흔했고(!), 당시 그 지방에서는 그런 일을 당한 여성은 자살하는 것이 거의 100%였으나, 무크타르 마이는 꿋꿋이 살아남아 여성교육을 위해 헌신하고 법까지 바꿨다고 한다. 그녀가 공동으로 쓴 책 [[https://blog.naver.com/assllan/221147039394|무크타르 마이의 고백]]은 국내에서도 정식 발매된 바 있다. 다만 '''[[조선]] 시대에''' 간통 소문으로 [[명예훼손]]을 당한 여성이 '''직접 그 헛소문의 유포자를 처단'''한 사건도 있었다. 자신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 '살인'을 벌였으니 명예살인이란 정의엔 정확히 부합하겠지만 이 문서에서 언급되는 대부분의 명예살인과는 정반대로 진행되었다. [[은애전]]이라고 하여, [[정조(조선)|정조]] 시대 때 왕명으로 출판까지 된 사건.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