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모가디슈(영화) (문단 편집) == 실제 역사와의 비교 == [[강신성(외교관)|강신성]] 전 대사는 [[1991년]]까지 [[소말리아]]에서 대사로 근무하다가 남북한 대사 일행을 이끌고 [[모가디슈]]를 탈출한 경험을 바탕으로 장편 소설 <[[탈출(강신성)|탈출]]>을 집필했다. 해당 책의 1부 <소말리아 내전>은 저자가 1990년 당시 소말리아에서 외교관으로 근무하면서 겪었던 일 및 소말리아 내전의 배경을 다루고, 2부인 <소말리아 탈출>은 영화에서 묘사한 소말리아 내전 발발과 남북한 공관원들의 모가디슈 탈출 에피소드를 다룬다. 이 작품은 실존 인물들을 가명 처리하여 남북한 대사는 성만 바꾸고 이름은 그대로 기술했다. 실제로 일어난 일을 시간 순으로 기록한 르포르타주라 할 수 있으므로, 아래 기술할 내용은 책에서 나온 내용이 실화라는 전제 하에 영화와의 차이점을 기술한다. 강신성의 [[https://www.joongang.co.kr/article/24119982|신문 인터뷰 내용]]이라고 알려진 이야기들은 대부분 이 소설의 내용을 벗어나지 않는다. * 1990~91년 당시 소말리아 외교전에서 승기는 [[대한민국]] 쪽으로 기울어진 상태였다. 소말리아는 1989, 90년 연속으로 대한민국의 유엔 가입을 지지하는 발언을 하여 여타 아프리카 이웃 국가들의 지지를 이끄는 견인차 역할을 했다. 1983년 일어난 [[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 사건 및 1988 [[서울 올림픽]] 개최 이후 남북한의 국제적 위상 차이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벌어졌고 아프리카 대륙에서 북한의 영향력은 사그라들었다. 소말리아는 이미 사상적 기조보다는 남북한 중 어느 쪽이 경제적/군사적으로 원조를 해줄 수 있느냐에 초점을 맞추어 외교 전략을 구사하고 있었다. * 입지가 좁아진 북한에서 남한을 훼방 놓기 위해 여러 공작을 펼친 것은 사실이다. 남한 대사관에서 근무하던 소말리인 비서를 매수하여 내부 정보를 캔 적도 있었다고 한다. * 영국 주재 북한 외교관을 역임한 [[외교통일위원회|국회 외통위]] 소속 [[국민의힘]] 국회의원 [[태영호]]가 언론 인터뷰에서 실제 사건에 대해 증언했다. [[http://naver.me/xqfVa2L4|링크]] * 피격으로 사망한 북한 직원은 무전수였고, 사망 직후 극비문건인 [[코드북 암호|난수책]]이 든 가방을 분실했다고 한다. 가방을 누가 의도적으로 가져갔는지, 단순히 물건이 난리통에 유실된 것인지는 불분명하다고 한다. 북한으로 귀국한 김용수 대사는 처벌을 받을 각오를 하고 [[김정일]]에게 난수책 분실을 보고했으나, [[김정일]]은 "살아 돌아와서 다행"이라고만 반응하였고, 대한민국 공관의 도움을 받은 것에 대해서 문책성 조치를 내리지는 않았다. 그때 탈출했던 북한 외교관 중 한 명은 이후 이탈리아 대사까지 맡고 퇴임했다고 한다. 다만 이후 김용수는 퇴직했다고 하는데, 50대라는 연령대를 고려했을 때 이것이 자진 퇴임인지 강요된 퇴임인지는 알기 어렵다. 김정일이 괜찮다고 해도 현지 책임자가 인명 피해 입고 기밀자료까지 분실한 문제는 만만치 않으니 김용수 혼자 책임지는 선에서 물러났을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다른 관계자들은 딱히 처벌받지 않았으니. * 영화에서 등장하는 북한의 소말리아 반군 상대 무기 수출 의혹은 국내에서는 기사화 된 적이 없다. 하지만 실제로 소말리아 정부군이 반군을 털었더니 북한 무기가 나와서 시끄러웠던 적은 있다. 북한이 반군에 무기를 수출한 적이 없음에도 북한제 무기가 반군 무기고에서 튀어나온 이유는, 이전에 소말리아 정부군이 사들였다가 [[에티오피아]]와의 전쟁 중에 버려진 북한제 소총을 반군이 노획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북한은 1970년대부터 소말리아에 게릴라 훈련캠프를 설치해서 反에티오피아 게릴라나 소말리아군 특수부대 등을 훈련시키고 있었기 때문에 여기서 흘러나온 총기일 가능성이 높다. 영화에서도 북한 측 인물들도 이를 일일이 해명하자면 오가덴 전쟁에 대한 설명까지 나와야 해 길어지기 때문인지 "해명하면 믿어주긴 하냐?"는 대사로 넘어가버렸다. 이 때문에 소말리아 측에서도 소말리아가 [[1988 서울 올림픽]]에 참가한 것에 대해 북한이 보복한 것이 아니냐는 말까지 나왔다고 한다. * 소말리아 정부가 북한이 아닌 한국 대사관을 지켜준 이유는 당시 북한이 소말리아의 적국인 에티오피아와 가까워졌기 때문이다. 에티오피아에는 1970년대 들어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서서 주목할 여지가 있던 반면, 소말리아는 (소련과 쿠바의 지원을 받은) 에티오피아와의 전쟁에서 진 이후로 동구권으로부터 소외되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러던 와중 내전이 터졌는데도 동구권이 별다른 지원을 해주지 않자, 바레 정부는 이미 수교를 맺고 있던 대한민국을 포함한 서방 진영으로 눈을 돌렸다. * 주요 인물의 실명을 그대로 쓰지 않고 [[실제 인물이 모티브가 된 캐릭터|조금씩 바꾸었다]]. 당시 한국 대사의 실제 이름은 [[강신성(외교관)|강신성]]이고 [[탈출(강신성)|소설]]에서는 '장신성'으로 나오나 영화에서는 '한신성'으로 썼다. 그 외 사람들의 이름도 전부 가명. * 대사관에서 일하던 소말리인 운전수 소년 '솨마'가 반군으로 낙인 찍혀 경찰에 살해당했다는 부분은 영화 속 설정이다. 영화의 솨마는 소설 속의 대학생 솨마, 가정부 사라, 운전수 솨벨을 합쳐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캐릭터. 소설에 등장하는 솨마는 소말리아 대학에 다니는 인텔리 학생이다. 대사의 고용인이 아닌 지인이었고 소말리아 중부에서 막강한 세력을 지닌 하브예 씨족 소속[* 소말리아는 유목민 전통이 이어지고 있는 나라이기 때문에 개개인이 무슨 씨족 소속이냐가 사회 생활에 중요하게 작용한다. 이슬람교를 믿는 소말리인이 인구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국가 특성상 민족이나 종교는 오히려 중요하지 않다. 애초 소말리아 내전 자체도 반독재/반전체주의라는 명분을 걷어내고 보면 거대 씨족 간 권력 쟁탈전 성격이 강한 전쟁이다. 바레 정부가 다른 씨족을 적극적으로 탄압한 이유 중 하나도 바레의 오가덴 씨족이 힘이 약한 편이어서 타 거대 씨족(특히 이사크 씨족)에 대한 견제 의식이 매우 강했다는 점도 있다.] USC 반군 수장 '''모하메드 파라 아이디드 장군의 조카'''였다. 이후 군인 신분으로 반군에 합류한다. 바레 정부에 낙인이 찍힌 반골 젊은이[* 아버지가 원래 고위 공직자였지만 바레 정부에 찍혀서 강제로 낙향했고, 아들인 솨뫄도 연좌로 불이익을 받아서 장학금 수령도 못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바레 정권의 부패에 불만이 많았다고.]여서 정부군에 종종 쫓기곤 했는데, 솨마를 아낀 강 대사는 그가 관저로 도망 오면 종종 숨겨주었다. 이 인연으로 강 대사는 반군 세력에 피랍 당했을 때 아이디드 장군의 보호 아래 무사히 풀려났다. * 참사관이 클랙션 울려가며 경찰 간부와 싸운 것은 영화 속 설정. 실제 대한민국 대사관은 평소에 친하게 지내던 공항 수비 대장 겸 전 경찰국장에게 [[뇌물]]을 쥐어주고 경비 병력을 불러왔다. 남북한 사람들이 탈출하기 하루 전에 이 경비 병력이 해체되는데, 영화에선 이들이 돈을 받지 못해 멋대로 탈출한 것으로 묘사되는 반면 소설에선 남한 교민 이 씨가 자의적으로 그들을 내보냈다고 서술했다. * 모가디슈에 고립된 대한민국 대사관의 한국인은 7명(대사 + 사무원 부부 + 참사관 + 교민 3명)이었지만 영화에선 6명(대사 부부 + 서기관 부부 + 사무원 + 참사관)이 되었다. 사무원 부부의 아들과 대사관으로 피신한 대한민국 교민(이규우 씨 부부)의 존재가 생략되었고, 실제론 내전 발발 직전 서울로 돌아간[* 남편이 브뤼셀 EC 공사로 확정 발령이 났기 때문에 먼저 귀국해서 이사 준비를 하려고 했던 것. 이 발령은 사실상 좌천이어서 대사는 몹시 실망했다고 한다. 외교관들이 소말리아 같은 위험한 부임지에서 몇 년씩 근무하는 이유는 보통 미래에 있을 승진을 기대하기 때문인데, 강 대사는 승진은 커녕 소말리아에서 벌어진 외교적 분쟁에 대한 책임을 져서 아예 커리어에 빨간 줄을 긋게 된 상황이었다.] 대사 부인이 영화에선 남편과 함께 내전 발발 시점까지 현지에 체류한 것으로 나온다. * 북한 대사 림용수는 소말리아 내전 이전까지 부임한 장융화(가명)과 내전 발발 직전 부임한 김용수를 한데 섞어 만든 인물이다. 즉, 평소 남한 대사관과 사이가 나빴고 태도가 무뚝뚝했던 대사는 장융화, 비교적 중립적인 성정이고 남한 대사관과 힘을 합쳐 모가디슈 탈출을 기도한 대사는 김용수로, 둘은 각기 다른 시기에 다른 이유로 남한 대사관과 인연을 맺은 별개의 인간이다. 그러나 영화에선 둘을 합쳐서 림용수라는 한 인간이 내전이라는 큰 시간을 겪고 변화하는 것처럼 묘사했다. * 실제로는 [[루마니아]] 대사 대리 안드레아 게오르게도 남북한 사람들의 탈출에 동행했다. 당시 루마니아도 정치적 혼란기였기 때문에 해외 파견 공무원들에게 일일이 신경 쓸 여력이 없어 구조기를 보내주지 못한 듯 하다. 참고로 1989년 루마니아에서는 [[동유럽 혁명]]이 일어났고 [[차우셰스쿠]]가 처형되었다. 소말리아 내전 발발 당시 대한민국과 루마니아는 미수교 국가였으나, 차우셰스쿠 정권이 무너진 1990년 3월부터 공식적으로 수교 관계를 맺었다. * 강대진 참사관과 일대일 대응하는 실존 인물은 없다. 일단 모가디슈에 고립되었다가 탈출한 참사관은 이창우 씨(소설 속 가명: 계 참사관)뿐이지만, 그는 한국에서 온 안기부 요원이 아니라 본래부터 소말리아 대사관에서 근무한 직원이기에 강대진보다는 공수철 서기관에 가깝다. 강대진과 유사한 속성을 지닌 인물은 소설에 세 명 등장한다. '계 참사관'은 대사관에서 한신성 대사와 함께 근무한 참사관이며 북한 측 참사관과 종종 싸웠고, '김 사무원'은 한국에서 파견된 행정 직원이며 시위 발발 후 시내 관공서가 문을 닫았다는 걸 처음 알아차리는 인물이고, 소말리아 현지 교민 '이규수'(실명: 이규우)는 북한 대사관 일행을 돕겠다는 대사의 결정에 결사 반대를 하는 사람이다. 강대진은 위의 세 명을 섞어서 만든 캐릭터로 보인다. * 북한쪽 태준기는 보위부에서 파견한 김대전(가명) 참사관 겸 대사 대리와 박상일(실명: 한상렬) 3등 서기관을 합친 인물로 보인다. 김대전은 보위부 출신이었고 평소엔 대한민국 대사관 사람들만 보면 모욕적인 발언을 일삼아 참사관 뿐만 아니라 대사와도 직접 싸운 적이 있었다. 뿐만 아니라 북한 대사와 상의도 없이 남한 대사관을 견제하는 공작을 펼치는 등 북한 대사 입장에서 보기에도 튀는 행동을 일삼았던 모양. 그러나 케냐에서 헤어지기 직전엔 [[강신성(외교관)|강신성]]에게 열정적으로 감사를 표했다고 한다. 박상일은 아내와 아이가 있으며 소말리어에 능통한 직원이었고, 심장에 총을 맞은 상태에서 기적적으로 이탈리아 대사관까지 차를 몰고 온 후 숨을 거뒀다. 그가 만일 운전 중에 숨을 거두었다면 앞뒤로 가던 차량들이 줄줄이 추돌 사고를 일으켜 일행 전체가 다쳤을 수도 있다고 한다. * 대사관을 탈출할 때 사용한 차와 사람수가 다르다. 실제로는 차 6대, 인원 22명이었지만 영화에서는 4대, 21명으로 줄었다. 사용된 차량들도 극 중에선 [[벤츠 E클래스#s-4.5|벤츠 W123]]과 [[벤츠 E클래스#s-4.6|T124]], [[BMW 3시리즈/2세대|BMW E30]], [[볼보]] 260 인데 선두차가 벤츠인 건 재현이 되었지만 이탈리아 대사관에서 제공한 왜건은 영화에 나온 벤츠 E클래스(T124)가 아닌 [[미쓰비시 자동차|미쓰비시]]제 왜건이었다. * 실제로는 외교관 차라는 걸 알리기 위해 [[태극기]]'''만''' 매달고 갔으며 책과 모래주머니로 차에 방탄기능을 추가한 적은 없었다. 감독은 그 많은 인원이 이탈리아 대사관까지 방탄 장치 '''없이''' 갔는데 '''한 명'''만이 희생당했다는 게 너무 기적 같아서, 영화를 보는 사람들에게 최소한의 설득 장치(개연성)를 줘야겠다 싶어서 추가한 설정이라고 밝혔다. * 대한민국 대사관 사람들은 이탈리아 구조기를 놓친 적이 있다. 교신 도중에 오해가 생겨 착륙 지점을 잘못 알았던 것. 1991년 1월 9일 대한민국 일행은 이탈리아 군용기가 공항에 내릴 줄 알고 공항에서 기다렸지만, 실제 군용기는 군사기지에 착륙해서 이탈리아 교민만 태우고 떠났다. 당시 상황이 너무 위험해서 군용기도 오래 대기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이때 [[강신성(외교관)|강신성]] 일행이 허탕치고 공항에서 발길을 돌리려다 맞닥뜨린 사람들이 북한의 김용수 일행이다. 실제로는 이 때 강신성 대사가 위험한 공항에 머물러 있는 북한 대사관 일행을 딱하게 여겨 먼저 관저에 머무는 것을 제안했지만, 영화에서는 북한 대사관 일행이 관저로 직접 찾아오는 것으로 묘사되었다. * 남북한 공관원들은 실제로는 12일 동안 관저에서 지냈지만 영화에서는 고립 기간이 2박 3일로 축소됐다. * 강신성과 김용수는 공항에서 만나기 전에는 개인적으로 교류를 한 적이 없다. 당시 북한의 김용수는 부임한지 얼마 안 된 사람이었기 때문에, [[강신성(외교관)|강신성]]은 그를 먼 발치서 한 번 본 게 전부였다고 한다. 다만 남북한 외교관들끼리 외국에서 대화를 나누는 일 자체가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남한 대사는 김용수의 전임자인 장융화에게 자주 말을 걸었지만 대부분 무시당했고, 반대로 남한에 모욕적인 언동을 자주 일삼은 북측 참사관과는 종종 싸웠다. * 김용수가 [[강신성(외교관)|강신성]]을 처음 만나자마자 한 말은 엉뚱하게도 "이 난리통에 여유 만만하십니다. 넥타이까지 매시고[* 후진국에서는 정장 착용이 개인의 권위 유지에 꽤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강 대사는 정장을 항시 착용했다고 한다.]." 였다고. 이때 관저로 갈 수 없어서 공항에서 머물러야 하는 북한 대사관 일행을 딱하게 여긴 강신성은 김용수에게 대한민국 대사관에서 머물 것을 제안했다. 즉 도움의 손길을 먼저 내민 건 한국 측이다. 영화에서는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된 북한 대사관 사람들이 대한민국 대사관으로 직접 이동해 구조를 요청하는 것으로 각색했다. * 영화에서는 소말리아 공항 관제탑을 이용하게 해달라는 요청이 거절되었고 나중에 이탈리아 대사관의 전화를 통해 케냐 대사관과 통화를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관제탑을 통해 케냐 나이로비와 교신하는데 성공했고, 한국 정부가 보낸 구조기가 도착할 거라는 답변까지 들었다. 그러나 이는 사실 이탈리아 구조기가 도착할 거라는 소리를 잘못 전달한 것이었기에 한국 구조기는 오지 않았다. * 영화에선 남북한 식구들끼리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밤을 새우고, 참사관 간에 몸싸움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화목한 분위기 속에서 12일이 흘러갔다. 아이들은 잘 웃고 놀았으며, 실내에 에어컨을 틀고 TV로 만화 영화를 보여주니 좋아했다고. 북한 여성들은 자기들이 갖고 있던 쌀을 전부 내놓았고 북한 대사관 텃밭에서 기른 열무를 가져와 [[김치]]를 담가주었다. 자가발전기로 필요한 전기를 만들어낼 수 있었기 때문에 영화에서처럼 내내 촛불 켜고 고생한 것도 아니었다. 김용수는 남자들은 몰라도 여자와 아이들이 위험에 처하는 건 견딜 수가 없어서 대한민국 관저로 오게 되었다고 털어놓았는데, 이 때 [[강신성(외교관)|강신성]]은 그 역시 이데올로기를 떠나 평범한 한 인간일 뿐이라는 걸 깨달았다고 한다. * [[이탈리아]] 대사관 앞에서 흔든 깃발은 [[백기]]가 아니라 '''태극기'''였다. 심지어 북한 대사관 직원이 대사 손에서 국기를 빼앗아서 흔들었다고. * [[이탈리아]] 마리오 시카 대사는 영화와 소설에서 본명 그대로 등장하는 몇 안되는 실존인물이다. 이 사람에 대해 서술하는 [[https://en.wikipedia.org/wiki/Mario_Sica|위키피디아 페이지]]도 존재한다. 은퇴 후 이탈리아 스카우트 발전에 기여했다. 2022년 [[https://www.kobiz.or.kr/new/kor/02_overseas/festival/festivalView.jsp?cd=20060946&seq=3490|우디네 극동영화제]](이탈리아의 동아시아 영화 페스티벌)에 직접 참석해 이 영화를 [[https://www.fareastfilm.com/notizie/escape-from-mogadishu/|소개]]했다. [[https://www.facebook.com/UdineFarEastFilm/videos/far-east-film-festival-2022/314919534095834/|영상]]. 이 사람을 설득한 계기가 영화와 실제가 다른데, 실제로는 뻔히 죽을 걸 아는 자리에 북한 동포들만 두고 갈 수는 없다며 동포애로 호소했지만 영화에서는 북한 대사관 일행이 전향자라고 거짓말을 한다. * 영화에선 북한 대사관이 한 번 털리지만, 실제 북한 대사관은 여덟 차례 [[강도죄|강도]]를 당했다. 몽당 숟가락까지 털리고 부녀자들이 위협당하는 것을 못 견딘 끝에 대사관 일행은 건물을 버리고 모가디슈 공항으로 피신했고, 그 때 우연히 대한민국 대사관 사람들과 만나게 된 것이다. 당시 대사관마다 강도 습격이 극심하게 찾아와 [[영국]], [[독일]] 대사관 사람들이 [[해병대]]가 지키는 미국 대사관으로 도망치는 일도 벌어졌다고 한다. 그리고 그 미국 대사관은 내전이 벌어지기 전 짐을 싸서 본국으로 철수했다. 본래 강 대사도 미국 대사관에 도움을 요청할까 고민했지만, 외국에 외교관들의 신변을 의탁하는 건 국가적 자존심이 걸린 문제이거니와 개인 판단으로 관저를 통째로 버리기는 어렵다는 이유로 용단을 못 내리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내전이 터졌고 서방 국가들은 이탈리아를 제외하곤 대부분 모가디슈에서 공관을 빼서 대한민국 대사관 일행은 발을 동동 구르게 된다. 반서방 국가 쪽 상황 역시 여의치 않아서 중국 대사관도 오래 전 남부로 도망간 상태였다. 감독은 실제로는 더 참혹했지만 당시 전쟁 상황을 자극적으로 이용하는 것처럼 될까봐 다 넣을 순 없어 많이 뺐다고 밝혔다. * [[케냐]]에 도착한 남북한 일행이 당/안기부의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해 서로 모르는 척하며 헤어졌다는 건 결말을 슬프게 만들기 위한 각색이다. 실제로는 몸바사 공항에서 안기부 요원이 아닌 케냐의 한국 교민들이 나와서 남북한 대사관 일행을 기다렸고, 북한 조선로동당 사람들은 나오지 않았다. [[강신성(외교관)|강신성]]은 북한 대사관 일행들에게 미리 마련된 호텔에서 함께 머물면서 회포를 풀자고 제안했으나 김용수가 이를 단호하게 거절했다. 탈출 후에도 대한민국에 의지했다는 소문이 새어나가면 후에 당에 추궁당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듯하다. 남북한 공관원들은 서로를 껴안고 수송기 앞에서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고 한다. * 이후 [[강신성(외교관)|강신성]]은 귀국 직후부터[* 처음으로 자세한 상황이 보도된 것은 탈출 성공 12일 후인 1991년 1월 24일자 중앙일보 기사.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9889#home|“떼죽음 말자” 손잡은 남과 북/강신성대사가 밝힌 소말리아 탈출기]]] 남북한 합동 탈출 이야기를 언론 인터뷰를 통해 여러 번 공개했지만 커리어에 전혀 지장을 받지 않았다. 강신성은 소말리아 철수 이후로도 외교통상부 재외국민영사국장, 주 EC([[유럽연합]]의 전신인 유럽 공동체) 대표부 공사, 주 [[칠레]] 대사, [[호놀룰루]] 총영사 등의 직위를 거쳐 1997년 퇴임했다. 이후 그가 소설가로 데뷔하여 집필한 것이 소말리아에서 외교관으로 지냈을 때의 경험을 담은 책 <탈출>이다. * 이 때는 [[노태우]] 대통령 재임기(1988-1993)였다. 노태우가 신군부 출신이라곤 해도 당시는 이미 [[6월 민주항쟁]]과 [[6.29 선언]]을 거쳐 직선제로 선출된 대통령이기에 완전한 민주화는 아니라도 [[박정희]], [[전두환]] 재임기에 비해서는 확실히 유화적인 분위기였다. 특히 [[노태우 정부]]는 외교 정책에서 [[북방정책|공산권 국가와의 관계 개선을 추구]]하는 모습을 보였다. 남북관계도 1989년 [[민족 자존과 통일 번영을 위한 대통령 특별선언|7·7 선언]]을 시작으로, 영화 배경 직전인 1990년 10월에는 남북통일축구대회란 이름으로 [[경평전]]도 열렸고, 1991년 9월에는 남북 동시 UN 가입, 동년 12월에는 [[남북기본합의서]]도 체결되는 등 좋아졌을 때라 영화처럼 생존을 위한 협조를 쉬쉬해야할 정도의 시국은 아니었다. * [[강신성(외교관)|강신성]] 대사는 이후로도 통일이 되면 꼭 그 때의 북한 공관 사람들을 다시 찾아보고 싶다고 회고했다. * 용어 사용에 일부 오류가 있다. 우선 북한 측이 이집트를 '이집트'라고 부르는데, 1991년 당시 북한에서는 이집트를 '애급'이라고 불렀다.(1998년부터는 '에짚트'로 표기). 마찬가지로 '[[케냐]]'도 '케니아'로, '[[인슐린]]'도 '인술린'으로 부른다. 태준기는 '[[간나새끼]]'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데, 북한 욕의 대명사처럼 쓰이긴 하지만 '간나'는 함경도나 평북 지역에서 주로 쓰는 말로, 최근에는 평양에서도 종종 쓰인다고 하나 세련된(?) 문화어를 구사하는 보위부 출신 태준기가 1990년에 즐겨 쓰는 것은 어색한 부분이다. 또한 북한 측은 대한민국을 가리켜 초반 기싸움을 벌일 때만 '남조선'이라고 부르고 대한민국 대사관으로 피신한 이후로는 '남측'이라고 호칭하는 데 반해, 한국 측은 상대를 시종일관 '북한'이라고 칭한다. 남북 간에는 공식적으로 상대방을 '남/북측'이나 '남/북쪽', 혹은 '귀측'으로 칭하는 것이 관례이며, '남조선'이나 '북한' 등으로 부르는 것은 거의 도발 수준의 결례로 치부되어 즉각 항의가 들어오고도 남는다. 물론 북한은 이를 역이용해 남북회담장에서 수틀리면 '남조선'이니 '그쪽'이니 하는 결례로 대한민국에 대한 도발을 즐기곤 한다.그리고 영화 진행상 강대진은 처음부터 북측을 고깝게 보고 있었고 하는 행동도 싫어하는 티를 팍팍 내고 태준기와의 감정이 안 좋아질 대로 안 좋아진 터라 그냥 필터링 없이 북한이라고 했을 가능성도 있다. 1990년이면 7.4 공동성명 이후 제5공화국을 거쳐 남북간 대화 경험이 제법 축적되어있던 상황인데 남북 외교전의 각축장인 아프리카 근무인원들이 이런 기본적인 사항을 숙지하지 못했을 리는 없다. 영화 내 북한 측 인물들의 문화어 구사 수준이 상당함에 비추면 아쉬운 부분이다. * 주요 인물들의 영어 구사 능력이 실제와는 다소 차이가 있다. * 극중에서 북한의 림용수는 나름 한신성보다도 괜찮은 영어를 구사하는데, 정작 당시 북한 외교관들의 영어 실력은 매우 처참했다.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6070400239111006&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96-07-04&officeId=00023&pageNo=11&printNo=23417&publishType=00010|북한 최대의 외교공관인 주중북한대사관에 영어가 가능한 인원이 1~2명 뿐이고]], 그 중요한 대미협상장에 나온 외교관들조차 프리토킹이 안되어 90% 이상을 통역에 의존하는 수준이었다.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6071500239109006&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96-07-15&officeId=00023&pageNo=9&printNo=23426&publishType=00010|#]] * 평양 외대 출신 [[고영환]], [[강명도]]에 따르면 북한의 엘리트들인 [[평양외국어대학]]에서는 외국어 영재들을 7~80년대 한학년에 100여명만 선발하여 교육 시켰는데 그중에서도 해외 유학파는 20% 미만에 불과했다. 그 중에서도 영어과의 경우 영미권은 적대국이라 원어민 강사들 조차 제3세계에서 영어를 제 2언어로 쓰는 나라 사람이 더 많았고, 상위 20%에 뽑혀 유학을 보낸 곳도 남미의 가이아나, 아프리카의 탄자니아로 비행기도 아니고 배를 타고 유학을 시킬정도로 교육수준이 높다고 보기 어려웠다. 이들 중에서도 탑으로 뽑혀서 특별히 지중해의 몰타로 남녀 두명씩 4명을 유학 보낸 경우가 있었는데, 당시 외교부장 김영남의 아들, 김일성의 친척 만경대 김씨 출신 여학생과, 나머지 두명은 현재 외무상 최선희, 나머지 한명은 [[태영호]] 였다고 한다. * 반면 대한민국 인원들은 박지은 사무원을 제외한 공관 식구들의 영어 실력이 몹시 나쁜데, 나름대로 재현을 잘 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극중에서 한신성 대사는 그나마 어떻게든 의사소통이 되는데 강대진은 아무리 흥분했다지만 행정관(Administrator)이란 단어도 생각이 안 나서 헤매는 수준. 김윤석에 의하면, 류승완 감독이 일부러 주연들에게 딱딱한 한국식 영어(문법 중심)를 구사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1990년대 초까지 해외 여행이 자유화되지 않았던 시절임을 감안한 묘사라는데, 실제 1990년대까지도 한국 외무부 직원들의 영어 실력은 외무부 자체 평가로도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었다. 영화 배경인 1991년 당시 서기관 이상급(참고로 참사관이 외교부 국장~과장급)에서 전문 국제회의에 자유롭게 참석할 수 있을 정도의 인원이 5% 수준에 불과할 지경이었다.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1062100209219004&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91-06-21&officeId=00020&pageNo=19&printNo=21510&publishType=00020|#]] 한국에서 1980년대부터 나름 영어 교육에 공을 들인다고 들인 게 이 모양이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게 주 6일 중 2일은 미국인 강사에게 수업 받고 나머지는 한국인 직원들끼리 토론하는 수준의 커리큘럼이었으니 결과는 안봐도....[[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3080200239103005&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83-08-02&officeId=00023&pageNo=3&printNo=19176&publishType=00010|#]] 당시 한국 외무부 직원들의 영어 교육과 관련한 칼럼도 참고해보자. [[https://www.sisa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110397|#]] 지금도 한국 외교관들의 어학능력에 대해 지속적으로 문제제기가 나오고 있는 판인데[[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9/13/2018091300351.html|#]] 이 시절은 말 할 것도 없었다. 그래도 영어권 국가에 근무하면 영어가 느는 것 아니냐 싶겠지만, 실제로 해외 근무 경력이 오래되었다고 주재국 언어 실력이 일취월장하는 것은 아니다. 영어권 주재 공관의 직원들이 처참한 영어 실력으로 교민들에게 까이는 경우는 부지기수고, 좀 극단적인 사례로 CIS권 국가들만 10년이 넘게 돌아다닌 참사관이 러시아어 한마디도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실제 외교관들의 활동에서 어학실력이 차지하는 비중은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많이 다르다. 어학실력보다 더 중요한 것이 그 나라의 국제적 위치다. 한 해군 무관은 이를 두고 '''행사장의 사람들은 필리핀 대사의 유창한 영어보다 일본 대사의 어눌한 한마디에 더 귀를 기울였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 다만 이 영화의 한신성의 모델이 된 [[강신성(외교관)|강신성]] 대사는 그 시대 외교관 중에서는 영어 실력이 준수한 라인에 해당했다. 일단 커리어를 보면 1970년대에 영국 옥스퍼드 학위를 취득한 적이 있고, 영어를 안 하면 절대로 버틸 수 없는 곳(제네바/브뤼셀 EC 대표부/밴쿠버/호놀룰루)에 대사급으로 파견된 적이 많다. 덧붙여 소말리아라는 나라 자체도, 현지어인 소말리어나 이탈리아어를 할 줄 모르는 이상 제2언어인 영어로만 현지 생활과 외교전을 다 떠맡아야 하는 곳이다. * [[고영환]]에 의하면 1991년이면 남북한의 아프리카 외교전이 이미 남한의 경제적 성장과 서울 올림픽 개최로 인해 남한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난 상태였다. 북한이 김영남을 내세워 아프리카에 서울올림픽 보이콧을 하려했지만 돈만 받아 먹고 미국과 남한의 요구대로 참가해서 큰 손해만 보았으며, 1988년 헝가리와 남한의 수교이후 1991년까지 북방정책으로 김일성의 말대로 '''조선 외교의 후방이 유린'''당하면서 [[북한 외무성]]은 초상집 분위기였고 1990년 이후 북한 외교의 중심은 김일성이 소련과 중국의 압력으로 그리고 노태우의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이 '남북간의 특수 관계를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는 친서로 명분을 삼아 '하나의 조선 원칙'을 폐기하고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을 현실적으로 인정하고, 북한의 외교 전략이 아프리카 등 제3세계 중심에서[* 김일성은 유엔 회원국 과반수의 지지를 얻어내어 주한미군에 얻힌 유엔군 모자를 걷어내고 주한미군 철수 명분을 얻어내려는 외교 전략을 폈다.] 북미 직접협상으로 노선을 바꿨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