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모더니즘 (문단 편집) === 세계 대전 === [[제1차 세계 대전]](1914-1918)과 [[제2차 세계 대전]](1939-1945)은 근대 유럽이 일궈놓은 사회구조의 부조리와 모순이 극단으로 치달은 사례라 할 수 있다. 유럽 각국 열강은 제국주의 질서에 편승하려고 세계 곳곳에 식민지를 만들려 했고, 이 과정에서 이미 식민지를 차지한 국가(영국, 프랑스 등)과 후발주자들(이탈리아, 독일 등) 사이에 갈등이 벌어졌다. 제1차 세계 대전이 벌어지게 된 자세한 배경은 [[제1차 세계 대전/배경]] 문서를 참고할 것. 즉, 이미 산업화를 이루고 식민지를 많이 확보한 영국과 프랑스에 제정 러시아가 가세한 삼국 협상 측과, 뒤늦게 식민지 경쟁에 뛰어든 독일제국과 오스트리아 연합 측이 서로 싸웠다. 세부적인 내용은 제외하고 보면, 전쟁은 기관총과 참호전으로 엄청난 인명 살상을 가져왔다. 그리고 이로 인해 유럽 국가들의 국력이 쇠약해진데 반해, 미국은 전쟁 물자를 팔아 세계질서에서 주요한 위치로 점차 부상하게 된다. 이는 당대 지식인들에게 큰 충격을 던져주었다. 야만에서 벗어난 문명국을 자처하던 유럽이 그 어떤 야만인들보다더 더 끔찍한 전쟁을 벌였던 것에 대해서 그들 스스로 엄청난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산업혁명 이후 [[벨 에포크|급속도로 발전하는 문명이 모든 것을 해결해줄 것으로 낙관하던 시대 분위기]]는 문명의 이기들을 이용해 서로 죽고 죽이는 전쟁을 통해 박살이 나고 만다. 낭만적인 생각을 가지고 전쟁에 자원하던 유럽의 젊은이들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생지옥이었으며, 1차 대전 이후로 유럽문화는 상당부분 비관적이고 염세적인 분위기가 흐른다. 허나, 그러한 반성에도 상황은 악화되고, 결국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만다.]] 제2차 세계 대전은 구체적으로 [[대공황]]이 원인이 되어 벌어졌다 할 수 있다. 대공황이 벌어지자 영국과 프랑스는 블록 경제를 가동시켜 식민지와 자국 안에서만 경제 활동을 벌이기 시작했고, 이는 상대적으로 식민지가 적었던 독일과 이탈리아에게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베니토 무솔리니|무솔리니]]는 파시스트당을 창당하고 이탈리아 정권을 장악했고, [[아돌프 히틀러|히틀러]]도 1차 세계 대전으로 막대한 배상금을 물어야 하는데 앙심을 품고 있던 독일 국민들을 선동해 [[나치 독일|나치 정권]]을 세운다. 이후 독일 제 3제국은 마지노선을 우회해 프랑스를 침공하고 괴뢰정권인 비시 정권을 세우지만, 이후 [[소련]]과 [[미국]] 양쪽과 싸우게 되면서 결국 GG. 한편 이 당시 추축국의 일원이었던 일제는 [[태평양 전쟁]]을 일으켰다. 이로 인한 결과는 해당되는 문서들을 보면 알 수 있겠지만 참혹함 그 자체였다. [[홀로코스트]]로 수백만의 유대인이 죽은 것만 봐도 그렇다. 아시아도 예외가 아닌데, 일제강점기 때 수많은 조선인들이 [[강제징용]], [[위안부|종군위안부]] 등으로 강제동원되면서 잔혹한 일을 겪었고, 베트남에서는 수백만명이 아사하는 참사가 벌어졌으며, 필리핀에서는 [[마닐라 대학살]], 중국에서는 [[난징 대학살]]이 벌어졌다. 이 시기 문화는 그야말로 광기와 우울 그 자체였다. 연합국 측이든 추축국 측이든 그 식민지국가들이든 상관없이 말이다. 대다수의 대중들, 국민들은 정부의 선동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따라 이 광기의 행렬에 동참하거나 방조했으며, 이 과정에서 이전에 이룬 풍부한 문화는 큰 손상을 입게 된다. 철학과 예술에 국한해 보면, 나치 같은 경우 아리아인의 우수성 운운하며 가부장적 질서 중심의 사회를 만들려 했다. 마초적인 형상의 조각상을 만들거나 남자는 근면하게 일하고 여자는 내조봉사해야한다는 식으로 이데올로기를 만들어 유포시켰다. 그리고 이에 반대되는 예술은 [[퇴폐미술]]로 낙인 찍어 파괴했다. 그러나 이렇게 탄압하면서 정작 괴링 같은 작자들은 예술작품을 약탈해 모으려 했다. 이로 인해, 이 시기에 수많은 철학자들, 특히 [[발터 베냐민]]이나 [[한나 아렌트]] 같은 유대계 철학자들은 미국으로 망명해야 할 처지였으며[* 다만 벤야민은 망명하지 못하고 자살했다.], 예술가들도 망명하거나 [[다다이즘]]의 경우처럼 현실과 상관없어 보이는 쪽만 버티는데 그쳤다. 유대계 예술가가 아니더라도, 이 시기 문화는 이전의 관용적이고 다양성을 허용하는 문화에서 퇴보해 매우 보수적으로 바뀌었으며, 이로 인해 [[파블로 피카소|피카소]] 같은 작가들도 이 시기에는 고전적인 그림을 그려야만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