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모문룡 (문단 편집) == 개요 == ||||[youtube(fgG5JM0Pjdc)]|||| || [특별전] 삼국의 앓던 이, 명나라 장수 모문룡 || [[명나라]] 말기의 무장으로 현재 [[중국]] 북동부의 [[랴오닝성]] 지역과 [[조선]] 북부인 현재의 [[평안북도]]에서 활동하면서 [[후금]]에 대항했다. 그가 이끌던 부대는 지상전 병력도 있었으나 주력은 수군이었기 때문에 해군 사령관으로 평가하는 경우가 많다. 동강진 병력은 애초 함대가 주 구성원이었으며 함대에 딸린 일종의 [[해병대]], 즉 해군 육전대와 같은 지상전 병력인 [[기병]], [[보병]], [[포병]] 등이 같이 있었다. 후금이 [[요동]]을 정복한 이후 사실상 둥베이 일대의 [[명나라]] 수군을 이끄는 인물이었다. 그는 조선 철산 가도에 주둔하며, 후금을 배후에서 견제했다. 사실 이 당시 모문룡은 본국에서의 보급이 거의 단절되었기 때문에 후금이 점령한 [[요동반도]] 뿐만 아니라 조선에 대한 해적질로 보급을 했으며, 조선에 대한 워낙 민폐가 심했기 때문에 일부 역덕들은 후금 견제에 "전혀 도움이 안되었다"는 주장을 하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조선을 발판으로 후금이 차지한 요동반도에 자주 상륙작전을 폈으며, 요동반도 해안지방의 일부를 수복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후금은 산해관 공략을 일단 유보하고 [[정묘호란|조선부터 치게 된다.]] 그가 [[원숭환]]에게 처형당한 이후, 그의 부하들은 후금의 뒤를 이은 [[청나라]]에 귀순했고, 결과적으로 청나라는 [[조총]], [[홍이포]], [[불랑기포]] 등 화약무기와 막강한 수군을 거저 얻게 되었다. 그것으로 [[병자호란]]에서 [[강화도]]를 쉽게 공략할 수 있었고, 이후 [[명나라]]와의 화력전에서도 대등하게 싸울 수 있게 되었다. 군자금 모금을 명목으로 조선에 대한 엄청난 피해를 끼치고, 독립 [[군벌]]처럼 자신의 영향력 아래 있는 요동의 여러지역에서 전횡을 일삼았으나, 어쨌든 후금의 배후를 견제해서 후금이 대명전선에 올인하지 못하도록 일정 역할을 했기 때문에, 명나라의 대후금 전선의 압력을 덜게 한 것도 사실이다. 그리하여 당대나 현대에도 논란의 대상이 되는 인물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